이불

by sepr

이불은 하루의 끝에 찾아오는 가장 포근한 안식처다 학교에서 일상에서 사람 사이에서 지친 마음도 이불 속에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잠시 멈춘다 얇은 천 한 장일뿐인데 그 안에서는 세상이 조금은 덜 차갑게 느껴진다


밤이 길게 이어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차가운 공기와 나를 분리해 주는 벽이 된다 손끝과 발끝이 천천히 따뜻해지는 순간 마치 세상이 내 편이 되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반대로 여름밤엔 이불을 살짝 걸치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 더위에 필요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얇은 무게가 주는 안도감은 어떤 말보다 든든하다


어린 시절 이불은 장난감이자 비밀 공간이었다 머리까지 푹 덮고 작은 손전등을 켜 책을 읽거나 괜히 숨바꼭질처럼 숨었던 기억 그 속은 세상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우주였다 시간이 흘러서는 기쁨보다 슬픔을 더 많이 품어내기도 한다 혼자 이불을 꼭 끌어안고 울 때 말없이 감싸주던 포근함은 그 어떤 위로보다 진심 같았다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의 체온이 스며든 이불이 되기도 한다 그 향기와 온기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덮는 순간 다시 마음을 설레게 한다 또 오래 사용해 조금 낡아진 이불조차도 낯설지 않다 그 안에는 내가 쌓아온 수많은 밤과 기억이 함께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불은 단순한 천이 아니다 하루의 피로를 덮어주고 내 마음을 감싸주는 가장 가까운 위로다 세상에 치이고 지쳐도 이불속에서만큼은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하루의 끝에 이불을 찾고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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