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린 20대의 두 남녀가 원나잇으로 임신을 했다. 차마 아이를 지울 수가 없었던 이들은 결혼을 결심했다. 서로 좋아했고 임신이라는 이른 결혼의 핑계도 생겼으니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다.
아직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어린 부부는 시댁에 얹혀살 수밖에 없었다. 시부모는 어린 부부를 못 마땅해했고, 어린 손주마저 미워했다. 자연스레 부부도, 아이도 눈칫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결혼생활이 팍팍하자, 부부는 다투는 날이 잦아졌다. 20대의 찬란한 시기를 놓치기 싫어 시부모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각자 클럽에 가기도 했다. 결국 부부는 이혼을 결심했다.
문제는 아직 두 돌이 갓 지난 아이였다. 일반적으로는 서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싸우지만, 이 부부는 서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싸웠다.
가정법원은 아직까지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우리 의뢰인은 엄마였고, 양육권이 자신에게 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변호사님, 저는 일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해요. 애는 꼭 남편이 데려가게 해 주세요."
우여곡절 끝에 아이는 남편이 데려가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판결 선고가 나던 날 전화로 결과를 전했더니 양육권을 뺏긴(?) 의뢰인은 뛸 듯이 기뻐했다.
나는 양육권을 뺏겼으니 패소한 것인가.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승소한 것인가.
엄마의 부재 속에서 자라게 될 아직 어린 이 아이는 부모가 서로 본인을 키우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알게 될까.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의뢰인이 원하던 결과를 가져왔으니 승소라고 볼 수 있지만, 내 생각에 이 사건에서는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그 누구도 승자는 없었다.
도저히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성공보수를 받지 않았다. 아이를 생각하니 차마 받을 수가 없었다. 철없는 의뢰인은 승소했는데도 변호사가 성공보수도 안 받겠다니 감사하다면서 기뻐했다. 내 속도 모르고.
변호사에게는 가끔 승소하고도 이렇게 슬픈 사건이 있다.
* 의뢰인의 신상 보호를 위해 사건 내용을 다소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