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은 이렇게 말한다.
둘 중에 하나다. 살든지 죽든지...밑져야 본적이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라이언은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가?
감독은 라이온을 돌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인물로 설정한다. 그리고 묻는 것이다.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지, 그러니까 이 물음은 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해야만 하는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의미한다.
그녀는 혼자다. 어린 딸은 학교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아주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인간의 삶이 어쩌면 그렇듯이.
딸이 죽을 때, 그녀는 운전 중이었다. 그 후로도 그녀는 늘 운전중이었다.집과 회사 사이를.
인간은 왜 살아가는가?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던져진 존재being thrown이다.
그러니 왜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딱히 알맞는 답을 찾기 어렵다.
영화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가기로 마음먹었으면 가야 한다."
(라이언의 생명을 구해준 맷의 말을 통해서, 맷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그녀의 생명을 구해준다)
이 대사는 이렇게 해석되지 않을까.
이왕 살아 있으니 살기로 하자.
살든 죽든 밑져야 본전이니 그냥 살기로 하자.
이와 같은 결정 뒤엔 이런 결심이 뒤따를 것이다.
이왕 사는 거 잘 살기로 하자.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지만 또한 던져진 그 순간부터 고유한 의지를 갖는다. 그래서 던져진 곳에 멈춰있지 않고 앞으로 걸어간다. 갈 곳이 없어도.그러다보면 갈 곳도 생겨난다.
또 맷은 그녀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전해준다.
(죽기로 결심하고 산소를 끊고 눈을 감고 있는 라이언에게 이미 죽은 맷의 영혼이 찾아와)
"착륙은 발사다."
연료가 바닥난 기체에 착륙을 위한 에너지가 남아 있던 것이다. 그것을 발사를 위한 연료로 쓰라는 조언인데...
죽음과 삶, 죽음충동과 삶충동의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은가(신형철)
인생은 이처럼 역설적이다.
"두 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맷 영혼이 라이언에게)
두 번째 보는 영화인데, 몇몇 장면 외에는 낯설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돌아보며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삶을 잠시 떠나서 삶을 내려다봐야 한다.
그렇다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밖으로 갈 수는 없다.
우주로 날아갈 수는 없지만 우주적 관점을 가질 수는 있다.
우주적 관점이라...
신형철은 스페이스 휴머니즘과 스페이스 니힐리즘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 둘은 막 버무리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지구에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라이온은 두 발로 버티고 자신의 일신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진 의미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래서 좀 싫다.
현실보다는 작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빠져들기보다는 끝까지 봐야한다는 의지 때문에 봤다.
좋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마'가 훨씬 좋다.
적잖은 나이에도 건강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산드라 블록
그리고 두 발로 딱 버티기에 충분한 허벅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만약 이 영화를 본다면 그녀의 허벅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알폰소가 특별히 주문하지 않았을까 싶다.
허벅지를 키우라고
할 얘기는 더 많이 있지만 졸리다.
왜 살아야하는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gravity 중력
라이온을 타고 있던 비행선과 거기에서 떨어져나온 잔해들이
중력에 의해 떨어지면 불빛을 발했다.
중력???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있을 수밖에 없다. 중력 때문에
우주 어딘가에서 기인했지만
이 지구에 떨어져 생을 살고 있다.
중력이란 삶에 무게를 부여하는 것...
무게가 없다면 더 이상은 삶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