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통'을 청산했다, 나도 돈이란 걸 모아본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후, 카드사에서 '마이너스 통장'이란 걸 뚫었다. 대학 입학한 새내기들이 옷이랑 가방, 노트북 사면서 돈 쓰듯이 처음 입사한 신입사원으로서 비슷한 데 돈을 썼던 것 같다. 더구나 그때 막 카메라에 취미가 붙어 재미 붙일 때였다.
3개월간 받았던 수습사원 급여로는 도무지 남는 게 없던 시기였다. 매달 초 월급이 들어오면 매달 말쯤 탕진하는 진풍경을 이어가고 있던 와중에 마통이란 걸 찾아보게 됐다.
대학생 때와 달리 직장인에게는 돈 빌려준다는 곳이 많았다. 시중은행에서는 오프라인 창구를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비대면으로도 일정금액 마통을 뚫어줬다. 휴대전화 어플로 신분증 촬영하고, 본인 얼굴 촬영하고, 구비서류 이것저것 촬영하고. 또 뭉텅이 대출서류에 동의하고 사인하면 끝이었다. 수백만 원이 즉시 수중에 들어왔다.
아마 제2금융권이었다면 절차가 더 간소했으리라. 아무튼, 마통을 뚫은 이후 본인 주사용카드 잔액은 줄곧 마이너스였다. 한 1년 6개월쯤 그렇게 살았다. '0원'이 아닌 '-0,000,000원'이 내 통장의 기본값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돈 공부 시작하고 4달 차였나, 본인 주사용카드 잔액이 드디어 음수(-)를 탈출했다. 마통이라는 걸 청산한 것이었다. 통장 잔액이 '-0,000,000원'까지 다다르는 데는 1달이 채 안 걸렸는데, 이걸 청산하고 다시금 '0원'으로 되돌리는 데 4개월쯤 걸렸다.
왜 돈 빌리는 절차가 그렇게 간소했는지, 돈 갚는 과정에서 이자로 얼마나 나갔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종국에 '앞으로 내 인생에 마통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돈 공부가 본인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이전에는 '선소비 후저축'의 삶을 살았다. 월급날 본인을 감싸는 자본주의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 마구 질러댔던 거다. 남은 돈은 생활비로 썼는데 월말쯤 되면 저축은커녕 잔고 부족으로 허리띠 졸라 매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선저축 후소비'의 삶을 채택하니, 일단 씀씀이가 대폭 줄었다. 월급 받자마자 일정 부분을 뚝 떼서 저금통장에 봉인해 버리니, 본인 소비통장이 곤궁하다는 착시효과가 일어난 데 따른 것이다. 본인처럼 중증 지름신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특효였다. 이 방식에 기초해 조금씩이나마 차곡차곡 돈을 모아가 보고 있다.
학자금 대출 완납은 아직 까마득한 목표 같아 보이지만...
모 머니트레이너는 '사회초년생 시절은 비록 월급이 적더라도 돈 모으기에 가장 적기다. 저축률을 50~60%로 유지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 이야기 듣자마자 엥, 절댓값 자체가 작은 상황인데요? 엥겔계수 모르시나요? 등등의 반론이 떠올랐다.
근데 설명을 계속 들어보니, 그 전문가의 이야기에 납득이 됐다. 경제활동인구가 된 이후 사회초년생/신혼 시기를 제외하고는 돈 모을 만한 시기가 많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생긴다면 그에 수반될 경제적 비용 때문이었다.
연애도 안 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거 말고는 딱히 취미도 없는 본인... 가끔 해외여행 욕구가 생기지만 안 가려면 또 안 갈 수 있어서. 지금 이 시기가 돈 모으기 최적기가 맞는 것 같다. 잠깐 기회 줄테니, 얼른 학자금 대출 갚으렴 하는 계시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법정스님은 "행복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다"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게 본인 생각이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명목하에 나열된 숫자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도외시하고 행복 운운하기에는 너무 소시민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