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언론'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 이를 구체화하려는 선배님들께
선배님 안녕하세요,
지난해 6월 27일 오전으로 기억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한국 정치권이 시끌벅적할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오전 발제거리 처리하던 와중이었는데요. 부장님께서 제게 기사 두 편을 공유하셨습니다. 각각 인터넷매체발 기사였습니다. 부장님께서는 그러면서 '인용기사 작성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의 흥미, 99%의 짜증을 안고 해당 기사를 읽어봤습니다. 과학용어와 축약어, 영어 등이 뒤섞여 있더라고요. '아침부터 이게 뭔...'이라는 생각과 함께 머리를 싸맸습니다.
기사 골자는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100만 유로 이상 '정치 헌금'을 건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IAEA 보고서에 '절대안전' 결론을 미리 받았다는 것입니다. 읽고 나서 '보도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사에 문건 사진이 공개되는 등 정황이 구체적이었습니다. 또한, 기사에는 당시 관계자들 간 짬짜미가 대화록 형식으로 기록돼 있었는데 ALPS(다핵종제거설비)나 스트론튬 등 내부 관계자나 쓸 법한 이야기들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줄곧 오염수 관련 뉴스를 다뤘던 기자조차 머리가 지끈지끈한 용어들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자초년병은 인용기사 작성을 망설였습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문제였습니다. 언론사 입사준비생 시절 마르고 닳도록 일간지/방송뉴스를 챙겨본 바, 인터넷 매체는 주로 '정치적인 선동꾼'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였습니다.
부장님께 '꼭 인용기사 작성해야 할까요'라고 되물었습니다. 해당 매체들을 인용하기에는 신뢰성이 부족하지 않느냐, 다른 언론사들도 관련 기사를 안 쓰고 있지 않다, 뭐 그런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부장님께서 거듭 기사 작성을 지시하셨습니다. 그 반응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수습기간 중에도 데스크가 이렇게 단호하게 업무 지시를 한 적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속는 셈 치고, 약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인용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느닷없던 것은 해당 기사에 대해 독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는 점입니다. 평소 뉴스포털에 게재되는 본인 기사에는 많아야 수십여 개의 댓글이 달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기사에는 금세 수백여 개 댓글이 모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해당 기사를 모니터링해보니 시민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 각지로 기사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뉴스 소비자들이 능동적인 주체라는 사실을 절감케 한 경험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알아야 할 사실에 있어서, 그리고 알고 싶은 진실에 대해서 호응을 보였습니다.
음모론이라는 지적과 메신저 신뢰성에 기반한 질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상 여론은 대부분 걱정과 우려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국민 대부분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우려한다고 답했다는 사실과 맥락이 닿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제도권 언론, 그러니까 레거시 미디어는 해당 의혹을 굉장히 소극적으로 다뤘습니다. 의혹 제기에는 '입꾹닫' 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정부/여당 측에서 "가짜뉴스"라고 부인하자 실시간으로 뉴스를 쏟아낸 것입니다.
한국 언론이 외면하는 와중에 중국 정부 측에서 공식적으로 해당 뉴스를 거론했습니다. 당시 CCTV 기자가 "ROK Media"를 직접적으로 짚으며 마오닝 대변인에게 해당 내용을 질의했고, 마오 대변인이 "serious attention" 등의 반응을 담은 공식 논평을 낸 겁니다.
이때부터 기성 언론에 대한 의구심이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언론은 '시민의 알 권리'를 전가의 보도 삼는 집단 아닙니까. 그런데 그 알 권리 운운이 진짜 시민들을 위한 건지, 자기 자신들을 위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업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시민으로서 요즘 와닿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검찰의 힘은 무엇을 기소할지 결정하는 데서 나오고, 언론의 힘은 무엇을 보도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며 '대안언론'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를 맞닥뜨리곤 했습니다. 당시 본인은 당연히 '메이저리그'에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크게 관심 없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마이너리그' 소속으로 정치뉴스를 다루다 보니 대안언론이라는 그 단어를 다시금 곱씹게 됩니다.
언론사 입사준비생 시절에는 한국 공론장 패러다임이 '조중동' 대 '한경오' 정도로 나뉘는 줄 알았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종편 등이 존재하니 약간은 보수진영 쪽에 기울었겠거니 짐작까지는 해봤습니다.
정작 몸담아 보니, 괜히 현 언론계를 겨냥해 "기득권을 위한 언론사" "기자들을 위한 언론사"만 남았다는 지적(유시민 작가)이 나오는 게 아니구나 느낍니다. 모든 언론인들을 이렇게 싸잡아 매도해선 안 될 것이고, 현장기자들과 데스크 사이 간격이 있다는 점 등 복합적인 문제가 결부돼 있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경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군소 인터넷매체, 유튜브 저널리즘 등에 특히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제가 마이너 소속이라 그런 경향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한국 공론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시도는 굉~~~~~~~장히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대안언론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돼야 할 듯합니다.
선배님, 술 한잔 사주십시오!
라는 한마디 꺼내는데 서론이 너무 구구절절이었습니다.
국회 출입기자 생활 1년 6개월 차입니다. 인터넷매체 소속인 덕분에 일선 경찰서 돌지도 않고 국회에 불시착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정치뉴스를 다루면서 본인 고정관념이 깨지는 듯한 경험들을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뉴스포털 내 기사들은 십중팔구 '우라까이'로 재생산된다거나 기자들은 생각보다 현장취재를 잘 안 한다는 점, 언론계는 제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인터넷매체 소속인 만큼 레거시 미디어 소속 기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유력매체 소속 기자들은 매체파워를 바탕으로 취재력이 보장됩니다. 반면 군소매체 소속 기자로서는 매번 취재력이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이에 대해 자격지심까지 있었는데, '포기하면 편해' 마인드를 가지니 상당히 누그러졌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인터넷매체 소속이기에 가질 수 있는 관점이 있다고 위안 삼고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이 시민권력을 대변해 권력자들을 감시/비판해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만. 이쪽 동네에서 "권력화된 언론을 감시/비판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이러니하죠.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 갈대가 돼야 하는 신세입니다만, 제게도 '믿을맨'은 있습니다. 서적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통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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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고민할 때 "내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것은 국가나 애국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강조하는 기자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인터뷰해야 할까 고민할 때는 방송 그만둔 지 수년이 됐지만 아직도 언론인 신뢰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앵커의 자서전을 챙겨봅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괜히 욕심은 많아서 혼자 궁여지책들을 꾸려보는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선배기자 없는 후배기자는 외롭습니다. 그래서 선배님께 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저와 같은 연차에 어떤 고민을 갖고 계셨는지, 제 푸념들과 맥락이 닿은 부분은 없었는지, 지금은 어떤 현상에 주목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선배님께서 제 핸드폰 번호로 문자 한 통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특히 막걸리에 진심입니다!
*해당 글은 필자가 모 인터넷매체 기자에게 보낸 메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