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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 후선 Dec 19. 2024

마음이 아픈 사람들

 가끔 ‘어떻게 저런 성격이 있을까? 도저히 내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네’ 하며 의아해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단순한 상식을 넘어서는 깊은 내면의 문제일 수 있다.

 성격에도 성격유형만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마음이 아플 때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격유형을 파악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깊은 내면의 문제에는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루는 차를 마시며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나운서가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 같은 데이트 폭력사건을 저질렀습니다” 한다. 남편이 혀를 끌끌 차며 얘기한다. 

“점점 험악한 사건들이 늘어가는구나! 저런 사람들은 마음의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아니겠나. 점점 육체적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인이 늘어나네!”     

 우리 앞집에는 지적 장애 아이가 산다. 지적 장애인 친구들은 행동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 잠깐만 함께 해도 ‘이 친구는 지적 장애를 지니고 있구나!’ 금방 알 수 있다. 천재와 영재만이 아니라 지적 장애도 흔히들 알고 있는 IQ(지능)를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인가 IQ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나는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IQ 검사한 것을 기억한다. 학교에서는 공공연한 기밀이었는데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본인의 IQ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상처받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돌고래보다 지능이 낮네. 이를 우짜노. 이래가 우째 살아가노?”

 IQ가 85 이상을 정상적 지능으로 보기에 IQ가 90 전후에 있는 친구들이 많은 걱정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육체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면 1등급에서 6등급까지 장애 등급을 받는다. 하지만 정신적인 장애는 육체적 장애와는 달리 쉽게 알기 어렵다. 그런데 육체적 장애도 아니고 정신적 장애도 아닌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장애는 육체나 정신적 장애와는 달리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의 질과 행복 그리고 원만한 인간관계엔 마음의 건강이 더 큰 영향을 준다. 그런데도 우리는 잘 알 수 없다고 이를 간과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몸이 아픈 사람들보다 더 힘든 삶을 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모임에서 총무인 선희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몇 달 전, 화려한 외모의 한 회원이 독서모임에 새롭게 들어왔다. 현재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신입 회원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드리 햅번이라 불린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외모에 관심이 없기에 남들이 오드리 햅번이라 부르는 것이 싫다고 한다. 그녀는 아침에 거울을 보고 나면 종일 거울을 보지 않는다며, 자신이 외모에 관심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늘 부풀린 머리 스타일과 화려한 손톱 네일 그리고 명품 의상과 백을 한 그녀를 보면 본인의 말과 대치된다는 생각을 가진다.

 우연히 아는 지인을 만나 얘기하던 중, 그녀의 실제 상황에 대해 듣게 된다. 그녀는 건설회사를 운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장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녀의 옷과 백은 모두 짝퉁이고 이런 그녀의 행동 탓으로 그녀와 자녀는 주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이중적인 행동과 말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가끔은 화가 난다.          

 나는 모든 얘기를 듣고서는 선희에게 말했다. 

 “얘길 들어보니 아마 그 친구는 지금 마음이 좋지 않아 보여. 지금 마음이 아픈 상태인 것 같은데. 그러니 그녀의 말을 합리적인지 아닌지 따지려 하지 말고 그냥 아파서 그렇구나 하며, 측은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계속 이어 얘기했다.

 “육체가 아픈 것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거든. 만약 우리가 다리가 아픈 사람과 함께 걸어간다면 그 사람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맞추어 걷겠지. “왜 그렇게 늦게 걷는 거야?”라며 건강한 사람과 같은 잣대로 대하지는 않는단 말이야. 그렇듯 ‘마음이 아프구나’ 하고 조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않을 것 같은데”     


 이처럼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을 보면 ‘저 사람 몸이 불편하구나. 나보다 힘들겠는걸’하는 생각을 가지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여기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장님과 앉은뱅이가 한마을에 살았다. 어쩌다 둘은 알게 되었다. 앉은뱅이에겐 장님의 다리가 필요했고 장님에겐 앉은뱅이의 눈이 필요했다. 서로의 생각이 같았기에 둘은 함께 하기로 했다. 

 앉은뱅이는 너무나 행복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를 금방 갈 수 있었기에.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게 너무도 행복하여 사는 게 룰루랄라 즐거웠다. 장님 역시도 몇 미터도 가기 어려웠는데 스스럼없이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둘은 이렇게 한동안 행복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루는 앉은뱅이가 이런 생각을 했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손해인 것 같아. 내 눈이 저 친구의 다리보다 더 큰 일을 한다고 생각해. 내 눈이 없으면 동네 구경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를걸’ 

 장님도 이런 생각을 했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더 손해인 것 같아. 내 다리가 저 친구의 눈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잖아. 내 다리가 없으면 어떻게 저렇게 마을을 한 바퀴 휙 빠르게 돌 수 있겠어?’

 이렇게 하루하루가 그리도 기다려지던 두 사람은 만나면 불평불만인 사이로 바뀌었다. 

 마음은 참으로 얄팍하고 교활하기에 서서히 본인도 모르게 찾아온다.

 이렇게 서서히 찾아와 마음을 병들게 한다. 그런데 요즘 마음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마음의 장애는 치료하는 약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가 ‘아! 내가 마음이 아프구나!’를 알아차리고 본인 스스로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주위에서 또 이를 알아차리고 도와야 한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하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구나’ 하며 이해하고 따뜻한 대화 한마디, 작은 웃음 하나를 보내야 한다.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보면서 ‘몸이 불편하구나!’ 하며 그들의 불편한 몸에 진도를 맞추듯,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마음에 진도를 맞추어야 한다.     

 지난 주말엔 가을 체육대회와 트래킹이 있어 주말 내내 몸이 바빴다. 그렇게 주말 이틀을 고공 행진하고선 월요일 스크린 모임이 있어 나가려니 남편이 한마디 한다.

“몸살 난다. 마 오늘은 집에서 쉬라. 어디 그래가 몸이 남아나겠나?”

“걱정하지 마라. 내가 좋아서 하기에 몸살 안 난다”

 남편은 모른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병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이 아무리 편해도 마음이 불편하면 병이 난다는 것을.


 우리는 육체적 건강을 위해 매번 건강검진도 받고, 영양제도 챙기고, 운동도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마음은 잘 돌보지 않는다. 이제부터 나는 물론 이웃의 마음이 힘들지 않은지? 살펴보자. 그렇게 마음에도 영양제를 챙기고 운동도 해보자.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웃음 하나를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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