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함께 다닌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조용하고 차분하며 배려심이 깊다. 일 처리도 깔끔하고 외모도 단정하다. 전형적인 현모양처 같은 이미지로 나와는 반대의 성향이다.
한 번은 나에게 질문한다.
“선생님. 어제 수업시간에 정미 선생님이 우리한테 자리 있냐고 물어볼 때. 어떤 느낌 받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일이 생각나지 않기에
“글쎄. 난 별생각 없었는데. 왜 무슨 일 있었나?”
“그래. 내가 너무 예민한가? 괜히···”하며 더는 말하지 않는다.
한 번씩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 얘기인데 이 친구는 혼자 끙끙 앓기도 한다. 어쩌다 그 사정을 알고 보면 나는 별 의미 없이 한 얘기를 이 친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 골머리를 앓은 것이다.
“선생님. 난 별 의미 없이 한 얘기였는데. 왜, 나한테 얘기하지?”
“어떻게 그걸 얘기해. 그냥 나만 참으면 되는데”
이처럼 같은 장소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하다 헤어졌지만, 유독 예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 있다.
미국 성격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는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란 책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HSP)'에 대한 이론을 도입했다. HSP는 ‘매우 예민한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의 약자로, 예민한 중추신경계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즉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자극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아론 박사가 발표한 바로는 인구의 15~20%가 매우 예민한 사람(HSP; Highly Sensitive Person)이다. 그만큼 예민한 성격은 특이한 성격이 아니라 흔히 접할 수 있는 성격유형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 분석에 따르면, 예민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주변의 자극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주의력, 감정, 행동 계획, 의사결정 등 내면과 관련된 뇌 영역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창의적이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지만, 감정 소모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는 정도로 넘어갈 일도 매우 예민한 사람에게는 과도한 생각에 빠지게 하는 '큰일'이 된다.
흔히들 조용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이 예민할 것으로 생각 들겠지만, 사회적이고 활기찬 성향이 있는 외향적인 사람들도 예민한 기질을 보일 수 있다.
10개의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정도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성격을 나누면, 네 가지 성격유형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10개라는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첫째 유형(보통 유형)
이들은 10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가정할 때, 받은 양과 같은 10개의 반응을 보인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이 유형에 속한다.
둘째 유형(둔감한 유형, 곰 유형)
이들은 스트레스에 아주 무덤덤하여 10개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2~5개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눈치가 없는 건지 마음이 태평양인지 별로 주위 스트레스에 반응하지 않는다. 주위에 사람들이야 속이 문드러지든 말든 본인은 천하태평이다. 이런 사람들은 10개의 스트레스가 와도 2~5개 정도만 반응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통 ‘곰’이라 부른다. 그래서 나는 이해를 쉽게 하기위해 이들을 곰 유형이라 부른다.
셋째 유형과 넷째 유형, 이 두 유형은 유독 예민한 사람들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토끼와 사자 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셋째 유형(예민하고 온순한 유형, 토끼 유형)
나는 이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토끼 유형이라 부른다. 토끼 유형은 흔히들 착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이다. 앞에서 얘기한 친구와 같은 성향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격이 부드럽고 온순하다.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기에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좋다.
토끼 유형은 하고 싶은 말이나 싫은 소리를 하기 힘들어하며, 주위의 도움이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한다.
이러한 토끼 유형은 주변 사람들이 예민한 사람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항상 성격 좋은 사람이라 불리다 보니 예민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주다 보니 정작 본인은 힘이 든다. 심할 경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다른 신체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토끼가 여러 동물과 어울려 있다고 생각해보자. 다른 동물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본인의 속은 문드러진다. 왜? 호랑이, 여우, 늑대들 눈치 봐야지, 다람쥐 병아리 햄스터 도와줘야지. 그러니 토끼는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이런 힘든 마음을 주위에선 잘 알지 못한다.
넷째 유형(예민하고 강한 유형, 사자 유형)
나는 이들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사자 유형이라 부른다. 보통 주위에서 한 주장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자 유형은 성격이 강하고 세다. 이들은 살아가는데 나만의 원칙이나 규칙이 있다. 그리고 이런 본인만의 규칙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강요한다.
이들은 하루 일정이 머릿속에 꽉 차게 정해져 있는데, 그 와중에 계획이 꼬이면 화를 낸다. 스스로 정의의 사도로 여기는 사람들로 공공질서나 규범을 잘 지키며, 또한 주변 사람들도 지키길 강요한다.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니 자고로 사람이라면 말이야 그러면 안 되지. 법이 아니더라도 상식과 도덕이란 게 있는데···”
사자가 여러 동물과 무리에 함께 있다고 생각해보자. 사자는 모르겠지만, 주위 동물들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겠는가? 본인은 그냥 '아이 참나'하고 살짝 짜증 냈지만 주위 동물들은 오금이 저릴 것이다.
나와 남편, 언니 셋 모두 네 번째인 사자 유형에 해당한다. 내향적인 남편 그리고 외향적인 언니와 나지만 여기서는 모두 같은 유형이다. 우리 셋은 모두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 성격이 다르다 보니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도 다르다. 늘 이 기준 때문에 싸운다.
사자 세 마리가 한 우리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배부르고 편할 땐 아무 일 없겠지만, 어쩌다 권력다툼이라도 벌어지면 어찌 되겠는가? 온 산이 떠들썩할 것이다. 우리 세 사람에게 가끔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주위에선 무서워 말리지도 못한다.
나는 ‘예민한 사람’을 공부하기 전엔 늘 밝고 한 주장 하는 언니와 내가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민한 사람 자가 테스트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아론 박사가 정립한 HSP 이론에 몇 개가 해당하는지 확인해보자.
아래 항목 중 14개 이상에 ‘네’라고 답한다면, 나는 예민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1. 다른 사람의 기분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2. 통증에 예민한 편이다.
3. 강한 감각 정보에 쉽게 당황한다.
4. 주변의 미묘한 세부사항들을 잘 인지한다.
5. 바쁜 날에는 침대나 어두운 방처럼 사적인 공간으로 몸을 피한다.
6. 카페인에 민감하다.
7. 밝은 빛, 강한 냄새, 거친 직물, 사이렌 소리 등에 쉽게 압도된다.
8. 풍부하고 복잡한 내면을 갖고 있다.
9.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불편해진다.
10. 음악이나 미술 등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11. 종종 기진맥진해서 폭발하고 만다.
12. 양심적인 편이다.
13. 쉽게 깜짝 놀란다.
14. 짧은 시간 해야 할 일이 많으면 겁을 먹는다.
15. 불편해하는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16. 상대방이 한꺼번에 많은 일을 요구하면 짜증이 난다.
17. 실수나 망각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18. 폭력적인 영화나 TV쇼 등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 주변에 여러 일이 벌어지면 불쾌한 감정이 일어난다.
20. 배가 고프면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기분이 바뀐다.
21. 인생에 변화가 생기면 전반적인 일상이 뒤흔들린다.
22. 좋은 냄새, 맛, 소리, 예술 작품들을 쉽게 알아채고 즐기는 편이다.
23. 한꺼번에 많은 일이 발생하면 기분이 나빠진다.
24. 속상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피하는 것이 인생의 일 순위다.
25. 경쟁 중이거나 관찰의 대상이 되면 긴장되거나 떨려 수행능력이 떨어진다.
26.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나를 수줍은 아이로 평가했다.
출처 : 일레인, N. 아론.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