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이 스스로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이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오랫동안 리더의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서 쉽사리 그 자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이유는 제 각각일 것이다.
본인이 창업자로서 자신과 조직을 동일시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거나,
후계자가 못 미덥거나,
자신의 리더로서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오는 권력의 단 맛에 잔뜩 취했거나.
(물러난 뒤의 생업이 막막해 버티는 경우는 이 이야기에서 제외하겠다)
어느 쪽이든 그다지 아름다운 이유는 못 된다.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후배에게 뒤를 물려줘야 한다.
그 자리를 놓지 못해 점점 추해지는 모습을 그들 역시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막상 그 자리에 오래 있다가 내려놓을 때가 되니 결단하지 못하는 것일 뿐.
그만한 자리에 올라가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을만큼 유능했던 그들이 왜 정작 떠나야 할 때는 알지 못할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볼 때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충분히 먹고 살만큼 벌어 뒀을텐데, 이제 그 돈으로 유유자적 즐기며 살 수 있을텐데 대체 왜?’
‘이제 후배에게 뒤를 물려주고 뒤에서 충분히 존경 받을 수도 있을텐데 대체 왜?’
문제는, 물러날 때를 놓친 이들의 말로가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개인 만의 불행이 아니라, 그들이 속했던 조직 전체가 쇠퇴의 길에 접어들 수 있다는 점이 섬뜩하다.
중국 최초의 통일을 일궈냈던 진시황이나, 그에 수백 년 앞 선 춘추시대 때 최초이자 최고의 ‘패자(覇者)’로 군림했던 제(齊)나라 환공의 끝이 그토록 똑 닮았다.
진시황은 중국 전토를 다섯 번이나 순행하다가 그만 도성에서 천 리나 떨어진 수레 속에서 객사했다. 생전 정정할 때 후계자를 지명해두고 공표했으면 좋았으련만, 죽음의 문 턱에 이르러서야 측근에게 간신히 장남 부소를 지명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에 그 자리에 있던 진시황의 18번째 아들 호해, 승상 이사와 간신 조고가 짜고 황제의 유언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부소의 황제 즉위는 곧 그들에게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선 도성에 돌아가기 전까지 황제의 죽음을 숨기기로 하고, 그 여름날 수레에서 썩어가는 시황제의 시취(시체 썩는 내)를 덮기 위해 소금에 절인 물고기까지 동원한다. 그렇게 간신히 도성에 돌아온 뒤에야 호해를 2세 황제 삼겠다는 황제의 거짓 유언을 공개하고, 본래 올바른 후계자였던 부소에게는 자결을 명한다.
효심 깊고 고지식했던 시황제의 장남 부소는, 이것이 분명 간신들이 조작한 거짓 명령일 것이란 몽염 등 주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결했다.
그리고 무난히 2세 황제가 된 폭군 호해와 간신 조고로 인해 진나라는 중국을 통일한지 불과 15년, 진시황 사후 4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한다. 아마 본래대로 부소가 2세 황제가 되었더라면 그런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제환공은 진시황보다도 400년 전의 인물로, 비록 천하통일을 하진 못했으나 그에 준하는 춘추오패(춘추시대 각기 한 시절의 최강자였던 제나라 등 다섯 국가의 지도자를 일컫는 표현)의 첫 번째로 꼽히는 명군이었다.
그는 무려 43년 간이나 제나라를 훌륭히 다스렸으나 명재상이었던 관중이 죽은 뒤엔 총기를 잃고 역아, 수초, 개방이라는 간신 셋을 총애하기 시작했다.
역아는 환공의 요리사로, 환공이 세상의 진미는 다 먹어봤지만 사람고기만은 먹어보지 못했다고 하자, 자신의 친아들을 죽여 요리한 뒤에 환공에게 바칠 정도로 권력욕에 미친 인간이었다.
수초는 본래 미남자로 환공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고 내시가 된 인물이었으며, 개방은 위나라의 태자였으나 부강한 제나라에서 성공하고자 나라를 버린 반역자였다.
셋 모두 가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생전 관중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자 간신 셋을 가까이 한 환공은 결국 큰 대가를 치른다.
환공 본인이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저 셋은 환공을 밀실에 가두고 권력 다툼을 한다.
이내 환공이 숨을 거뒀지만,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저희들끼리 권력 다툼을 하느냐 환공은 침상 위에서 그대로 67일 동안이나 방치된 채 썩어갔다. 환공의 아들 효공이 간신히 혼란을 수습했지만,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패자라기엔 너무나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리고 제나라 역시 그 이후 최강국의 지위를 빠르게 잃어 간다.
절대 권력, 최강자라는 지위를 가졌었음에도 물러날 때 물러나지 못하고, 물려줄 사람에게 제 때 물려주지 못한 자의 최후가 이렇듯 비참할 수 있다.
물론 진시황이나 제환공은 과거 왕조 시절 종신(終身)의 권력자로, 한시적인 지위를 가지는 현대의 대통령이나 기업의 경영인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온전할 때 올바른 후계자에게 뒤를 물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판단력과 체력, 열정이 예전만 못한 때가 찾아온다.
즉, 지도자로서의 유능함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 점이 과거 왕조 시절에는 비효율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종신제인 왕위는, 왕 자신이 죽기 전까지 그 권리와 지위가 유지됐다. 국가로서는 왕의 유능함이 절정에 달하는 기간만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쇠퇴기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성기 시절 어렵사리 벌어놨던 것들을 쇠퇴기 때 다 까먹은 왕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동양과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런 비효율을 감내했다.
어쩌면 당시 대중들은 그런 비효율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체 국가 지도자의 형태가, 종신제인 왕이나 황제 외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한 번 왕은 영원한 왕 아닌가?'
(물론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 시절 일찌감치 공화정이 존재했었으나, 공화정의 한계로 자연스레 정치 체계가 제정(帝政)으로 변환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제정과 왕정과 같은 군주제가 지속됐다)
그렇다면, 순수히 국가 차원에서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가정해보자.
왕족과 같은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순전히 그 국가에서 가장 유능한 이를 대중이 선택하고, 그가 부패하거나 무능해지지 않도록 한시적으로 지위와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매우 이상적인 국가 지도자의 형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대통령제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제도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기업의 전문 경영인 제도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꼭 창업주 본인이나 창업주의 가계에 구애받지 않고 유능한 이에게 이사회를 통해 한시적인 귄리를 부여하여 경영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국가의 대통령제나 기업의 전문 경영인 제도의 핵심은 약속된 기간 내에만 집권한다는 것이다. 기간이 무기한이라면 왕이나 진배없다.
대통령제가 본래의 취지대로 기능할 수 있게 된 것, 즉 한시적인 권력만 행사했던 것은 첫 번째 대통령이 그렇게 한 덕분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인류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대통령이기에 앞서, 본래 영국의 군인이었다.
미국이(정확히는 영국의 식민지 13개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자 미국 대륙회의의 임명을 받아 대륙군 총사령관에 취임하고 수 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사령관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뒤에 미련없이 고향인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논으로 가 지냈다. 역사상 많은 전쟁 영웅들이 난이 끝난 뒤에 자연스레 최고 지도자가 되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그러나 대중들이 조지 워싱턴을 가만 두지 않았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장일치로써 선출된 대통령에 취임하며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단 한 번만 연임한 후에, 완전히 낙향해버렸다.
당시 그가 마음먹고자 한다면 충분히 종신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미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으로서 그만한 지지를 얻고 있었고, 당시 대중들의 인식 속에 오히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상황이 생소하게 보였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왕위를 포기한 셈이다.
일설에는 그가 유럽의 왕들과 같은 고급스러운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충치를 앓을 정도로 고급 와인 중독자였다고 한다), 자신을 일컬을 때도 3인칭으로 하는 등 스스로 왕과 다름없이 행동했다고 하지만 시대상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될만한 처신이었다고 본다.
조지 워싱턴이 그렇게 처신한 덕에,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은 조지 워싱턴과 같이 최대 한 번만 연임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누군가 그 이상 연임하려 해도, '당신이 감히 건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보다 위대하단 말인가?'라는 명분을 넘어서지 못했다.
물론 먼 훗날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무려 3회 연임을 하게 되지만, 그의 집권기에 세계 대공황과 제 2차 세계대전이 연이어 벌어진 특수한 상황 임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에 미국 대통령은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다고 아예 명문화 되기에 이른다.
누군가는 조지 워싱턴이 당시 열악했던 대통령 관저보다 훨씬 안락하고 거대한 마운트 버논의 농장을 소유했고, 거느린 노예만 수 천명을 헤아리는 갑부였기에 대통령 직에 미련이 없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앞서 말했듯, 이미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부와 명예를 일궈냈음에도 그 자리에 집착하는 리더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내려 놓아야 할 때에도 그것을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이 더 채우기 위한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 그 자체에 중독된 탓인지 명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도 언젠가는 진시황과 제환공의 길, 아니면 조지 워싱턴의 길 중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하게 남느냐, 위대하게 사라질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