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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이 Aug 26. 2024

꼭 새롭게 바꾸는 게 최선인가?

조참(曹參)이 일은 안하고 계속 술만 마셨던 이유.

  새로운 조직장이 온다고 하면 어떤 것들이 그려지는가?


  일단 현황 파악한다고 이것저것 자료를 작성하고, 부서나 담당 파트별로 보고 하느냐 정신이 없다. 그리고 어렵사리 보고를 마치면, 좋은 피드백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왠지 새로 온 조직장은 칭찬보다는 비난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 비춰질 첫 이미지가 중요하니, 보고를 반드시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든다.


  얼추 현황 파악이 끝난 조직장은, 본인의 조직에 대한 비전을 야심차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대개 확신에 차 있고, 그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조직원들을 강하게 몰아 부치려 한다.

  지금까지 본인이 살펴본 조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모든 것을 바꾸라, 나는 이전 리더들과 다를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말로서 과시하려 든다.

 (언제부터인가 故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멘트를 닮아가는 리더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그가 새로운 과제라고 보여준 것들 중에는 이미 과거에 시도 했었으나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섞여있다. 리더 본인은 새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존 조직원들이 생각할 때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높은 확률로 이 시도가 별다른 소득없이 ‘삽질’로 끝날 것만 같아 골치가 아프다.

  그 새로운 리더도 머잖아 교체되어 또 다시 새로운 리더가 온다면 이 지겨운 패턴은 계속된다.


  너무 솔직했나?

 

  새로운 리더 중에 분명 조직의 성과에 기여하는 올바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리더십에도 여러 형태가 있기에 때로는 아래를 강하게 푸시하는 게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조금 좋지 못한 상황을 가정해본 것이다.

한국 50대 임원을 거만한 모습으로 그려달라 했더니..


  새롭게 조직에 합류한 사람, 특히 일반 담당자보다 조직 영향력이 훨씬 큰 리더의 경우 어떤 강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정 조직이 위기에 빠져 그것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든,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든 결국 구원투수 역할로 왔을 것이다. 물론 조직의 위기가 아니라, 리더 본인이 좌천과 같은 위기를 맞아 마지막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왔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뭔가 보여줘야 된다’는 강한 동기에 사로잡혀 있는 점은 동일하다.


  그치만 이럴 때 무리수가 나올 수 있다.

  변화 자체에 집착하여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될 것까지 바꾸는 우를 범하는 경우다.


  조직의 과거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개선하고 바꿀 것만 짚어줘야 하는데, 선행학습이 부족해 기존의 좋은 요소들까지 무턱대고 바꿔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면 정말 최악이다.


  여기서 그 리더를 지배하는 의식은 사실 일종의 변명이다.

  ‘그래도 나는 바꿔 보려 노력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든 하는 편이 낫다’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면, 일단 해보자’

 

  이것을 심리학에서 ‘행동 편향(Action Bias)’라고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똑같거나 더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게 낫다는 믿음’이다.

  이를 통해 리더 본인이 Lesson Learn을 얻어 향후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가 학습하기까지 조직이 치러야 할 대가가 클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무언가 ‘행동’에 옮기는 것이 결국은 옳은 일일까?


  여기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있다.


  흔히 한나라 고조(漢高祖)로 불리는 유방이 숙적 항우를 제압하고 진시황에 이어 천하를 두 번째로 통일했을 때,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재상 소하(蕭何)였다.

  소하는 ‘전설의 관직’이라 할 수 있는 ‘상국(재상으로서 최고위직인 승상을 뛰어넘는 관직으로 한나라 400년 역사상 소하를 포함해 정식으로 임명된 것은 단 두 명 뿐. 세 번째인 동탁은 강압적으로 상국에 올라서 제외했다)’에 최초로 임명될 정도로 유능한 관료였다. 그런 그가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진 뒤에 유방과 엇비슷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미 소하 생전에 친구이자 같은 개국공신인 ‘조참(曹參)’을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한 바 있기에 유방의 아들인 2세 황제 혜제는 조참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조참이 승상으로서 승상부를 맡게 된 뒤에 우선 관리들을 물갈이 하기 시작했다.

  유능하지만 욕심이 많은 이들보다, 다소 의욕은 부족한 듯 하지만 조용하고 성실한 이들로 승상부를 채워 나갔다. 그리곤 이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술만 마셔댔다.


  2세 황제인 혜제로서는, 진나라 말기~초한쟁패기의 혼란을 수습하여 나라를 건국한 아버지 고조의 뒤를 이어 제국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진나라 2세 황제 호해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국공신들과 더불어 나라를 차분히 다스리고 싶었다.

 그런데 듣자하니, 재상인 조참이 관청에 등청(출근)도 하지 않고 거의 매일 술자리를 열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데 정신이 팔렸다는 것이다. 


  혜제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차분히 조참의 아들을 불러 조참이 승상으로서 근면히 일할 것을 당부케 했다. 혜제의 성품이 본래 인자하기도 했지만, 그로서는 개국공신이자 아버지의 친우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셈이다. 

  조참의 아들도 황제에게 아버지의 일을 전해 들은 뒤 황망함을 이기지 못했다. 술에 취해 잠에 곯아 떨어진 조참을 찾아가 정신차리고 일 좀 하시라 쓴소리를 올렸다. 이에 조참이 불같이 분노하며 ‘너 따위가 무엇을 안다고 어지러운 소리를 지껄이느냐!’하고 매질을 해댔다.


  혜제도 측근들을 통해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우선 화가 나기보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직접 조참을 불러 옳은 말을 한 아들에게 왜 그리 모질게 대했는지, 대체 왜 일을 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조참이 민망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황제에게 되물었다.

  “폐하께서는, 선제(한고조 유방)와 견주어 폐하의 기량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감히 짐이 선제와 견줄 수 있겠소. 짐이 한없이 부족하오.”

  혜제의 대답에 조참이 이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소하와 비교하여 저의 기량은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미안하지만, 그대가 전임자인 소상국보다는 아래인 듯 하오.”

  그러자 조참이 혜제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신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신 또한 폐하께서 선제 만 못하시다 생각합니다. 또한, 폐하께서 보신 것처럼 신 역시 소하에 비해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즉, 폐하와 신 모두 앞선 이들에 비해 부족한 것입니다.

  선제께서 천하를 평정하시고, 소하는 법령을 밝게 정했습니다. 그 둘보다 못한 폐하와 저는 지금을 지키면서 옛 법도를 따르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혜제도 조참으로 하여금 계속 승상부의 일을 맡겼다. 그리고 조참 역시 소하 다음으로 상국에까지 오른다.

둘다 상국을 맡지만, 소하는 본래 행정가였고 조참은 맹장이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변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현재 조직이 처한 대내외적인 상황과 조직 구성원들, 리더 본인의 기량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진시황의 통일전쟁과 그를 이은 2세 황제의 전횡으로 인한 진나라의 분열, 그리고 유방과 항우의 다툼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반 세기도 안되는 기간동안 겪어온 고초가 너무나 가혹했다. 한나라도 어렵사리 통일을 이룩했지만, 실상은 피폐했다. 그 강성했던 진나라가 통일 후 불과 15년만에 망해 버렸다는 것을 상기하면 한나라도 얼마든지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 어려운 와중에 유방과 소하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해 합리적이고 온건하게 법령을 정비하고 기틀을 세웠다. 그 당시 조참으로서는 이 제도에 다시 변화를 주기보다 일관성 있게 지켜가는 편이 옳다고 본 것 같다. 그리고 냉정히, 유방이나 소하를 뛰어 넘을만한 기량과 비전을 가진 인물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이는 한고조 유방의 책임도 없지 않다. 유방은 한나라를 건국한 뒤, 한신이나 팽월처럼 능력있는 공신들을 숙청했다. 그래서 관료들 사이에서 몸을 사리는 경향이 짙어져 장량 같은 유능한 참모도 낙향했다).


  그래서 자칫 의욕이 과하거나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할 만한 인물들보다 다소 고지식한 사람들로 행정관료들을 채워놓고, 본인 역시 ‘무위의 치(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다스린다는 노자의 정치 사상)’를 실현한 것이다.


  물론, 현대의 시점에서 보면 그럼에도 조참이 ‘논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조직의 리더로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가 본인의 기량에 대해 얼마나 냉정하게 ‘메타인지’했는지, 얼마나 과거에 대해 치열하게 선행학습 했는지, 그리고 황제의 오해까지 받아가며 얼마나 우직하게 결단한 바를 실천했는지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래도 무언가 했다’고 결과와 무관하게 변명하는 리더에게, 앞뒤 맥락없이 변화를 위한 변화만 강조하는 리더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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