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 전쟁터에 나오면 임금도 없다.
현장의 심각함을 아무리 설명해도 믿어 주지 않는다.
아니면 심각한 상황인 것은 알겠는데, 나만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진 않는다.
현업의 담당인 내 판단을 잘 믿어주지 않는다. 당장 무언가 조치를 해야 하는데, 나 혼자 몸이 달아 발만 동동 구른다. 이러다가 정말 상황이 심각해져 책임을 내게만 물을까봐 걱정과 분노가 치민다.
직장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있을 법한 경험일 것이다.
(만약 딱히 이런 상황이 없었다면, 충분히 복받은 직장인이다)
흔히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거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직의 보고 체계는 길고 복잡하게 설계 돼 있고, 의사결정권자는 현장의 급박함보다 대부분 한 박자 느리게 매듭을 지어주는 듯한 느낌이다. 조직이 커지고 정교화 될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의사결정권자가 현장에 관심이 없고 무능해서일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보다 대부분의 의사결정권자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많은 의사결정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아니고서는 그 많은 상황에 일일이 진위 여부를 판단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제 때에 하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유능한 의사결정권자일수록 더 많은 조직을 거느리게 되어 더 많은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초기 리더일 때 유능했던 사람이, 더 높고 더 많은 조직을 거느린 후 무능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장이나 의사결정권자 모두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의사결정권자가 현장 담당자를 믿고 본인의 권한과 지위를 쪼개어 나눠 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사실 대부분의 리더들도 이미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이다. 그저 그것을 잘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어려워도 필히 그렇게 해야 한다.
본인의 관리 역량을 넘어선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내가 아니면 안 돼’식으로 의사결정권을 놓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하다.
그렇다고 아랫 사람이 먼저 의사결정권에 대해 위임을 요구하는 게 쉽진 않다. 자칫 괘씸죄로 찍혀 눈 밖에 나거나, 위임을 받은 뒤에 실패하는 상황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를 들춰보면 의외로 현 시대보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유명한 손자병법에서 이르길, ‘장수가 전쟁터에서 나서면 임금의 명도 받지 않는다(군명유소불수, 君命有所不受)’고 한다.
한마디로 현장에 있는 사람이 현장 상황은 가장 잘 알고 잘 대처할 수 있으니, 멀리있는 의사결정권자의 지시가 잘못됐다고 판단될 경우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뜻이다. 무척 당돌하다.
중국의 손자병법과 <사기>에 언급된 말이지만, 가까이는 임진왜란 시절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이순신은, 임금인 선조가 부산포에 주둔한 가토 기요마사를 공격하라 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행하지 않았다. 멀리 피란처에 있던 선조와 달리 이순신은 본인 나름의 첩보 활동을 통해, 적의 교란 작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물론 일설에는 이순신도 공격하고자 했으나 풍랑 탓에 시기를 놓쳤다는 설, 실제로는 어느정도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는 설 등이 있다).
아무튼 그 사건으로 인해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고초를 겪는다. 후에 어렵사리 복직한 뒤에는 다시 수군을 폐하라는 선조의 지시에 반해 그 유명한 ‘상유십이(尙有十二, 아직 열 두 척의 전선을 갖고 있으니 수군으로서 전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 장계를 올린 바도 있다. 이미 명령에 불복했다가 치욕을 겪었음에도 계속 임금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명령에 마냥 ‘게긴 것’이 아니라, 뚜렷한 성과를 냈다는 데 있다.
감히 임금의 명을 어긴 데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빛나는 전공을 세웠으니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전쟁터에서 임금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 통신 수단의 미흡함 탓도 있다. 과거에야 실시간 통신에 의한 보고가 불가능하니 그보다 '선조치 후보고'하는 편이 전략적으로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요즘 같았다면, 이순신도 신속하고 정확한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군명유소불수'의 원작자는 제나라의 전략가 사마양저였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사기>에서 다시 살펴보면, 임금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마양저는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마음가짐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장수가 전쟁터에 나서면,
첫째, 자신의 집안일을 잊을 것. 둘째, 자신의 부모도 잊을 것. 셋째, 자신의 몸도 잊을 것.
즉, 지금 주어진 과제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정도로 결연한 각오를 다지라는 것이다.
어디 각오 뿐이랴.
위에 당당하게 책임과 권한 위임을 요구할 것이라면, 그만한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
바람직한 권한 위임의 전제 조건은 그것을 위임 받을 현장 담당자가 당연히 유능하다는 데 있다. 최전선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무작정 권한부터 넘겨 받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다시 리더는 현장 담당자에게 권한을 위임하기에 앞서 그의 유능함과 무능함을 냉정하게 가늠할 필요가 있다.
평소 여러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해왔던 실적을 데이터 삼아, 유능하다고 판단했다면 과감히 권한을 나눠주고 밀어줘야 한다. 물론 유능함을 검증하는 방법을 결정하거나, 혹은 미처 유능함을 검증할 기회가 없이 그저 성장 가능성을 보고 상황에 투입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선조의 경우도 이순신에게서 권한을 거두고 하옥해 고신(고문)을 가한 바도 있지만, 이순신의 능력 자체는 신뢰했었다. 임진왜란 발발 전, 사간원(조선 조정의 감찰기구)에서 이순신에 대한 승진 속도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과해 반대하는 것을 오히려 임금인 선조가 밀어 부쳤을 정도였다. 물론 더러 이순신의 진가를 알아본 이도 있었지만, 당시 이순신은 함경도에서 패배한 장수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선조는 그 패배의 결과 속에서 이순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만한 혜안이 있었던 것이다.
최전방의 장수를 선임하는 국가 중대사를, 아무런 근거나 자신감 없이 도박처럼 결정했을리 없다.
올바른 사람을 검증한 뒤에 발탁하고, 또 믿고 밀어주는 것이 리더로서도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훌륭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용인술이라지 않는가.
이쯤에서 삼성의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말씀이 떠오른다.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하지 마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그리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