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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나에게 커피 음료 쿠폰을 자주 선물해 준다. “줄까?” 하는 질문에 나는 굳이 굳이 달라고 한다. 아마 오늘이 세 번째 일 것이다. 첫 번째는 내가 H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고, 두 번째는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세 번째로 커피 쿠폰을 받은 날인데, H의 일정 주변의 스타벅스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H가 사주는 커피가 맛있다. 왜 그런지를 생각해 보면, H와의 상호작용이 좋은 것 같다. 그냥 내가 사 먹어도 되지만, 굳이 H에게 쿠폰을 받아서 사 먹는 것이 좋다. 물론 받은 것 이상의 무언가를 돌려줘야 내 마음이 편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커피를 받고 케이크를 주었다. 케이크를 주는 것에도 어느 정도 내 사심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옷을 고를 때에도, 안경을 고를 때에도 H의 조언을 듣는다. H가 예쁘다고 한 아이템을 착용한다. H가 사준 옷을 입을 때, H를 생각하며 입는다. H가 만들어준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 나의 삶에 H가 끼어드는 이 기분이 좋다. 커피 쿠폰을 자주 주는 H가 좋다. 하지만 인과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커피 쿠폰을 주기 때문에 H가 좋은 것이 아니다. H가 좋기 때문에 H가 주는 쿠폰도 좋은 것이다. 다른 이성이 나에게 아무 이유 없이 커피쿠폰을 주었다면 약간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H이기에 기꺼이, 마음 놓고, 즐겁게 받을 수 있다.
H는 가방을 들어주는 내가 좋다고 말한다. 새우 껍질을 까주는 내가 좋다고 말한다. H의 내면에서의 인과 관계는 잘 모르지만, 나의 속 마음은 이렇다.
내가 가방을 들어줘서 좋아한다기보다, 내가 좋기 때문에 가방을 들어주는 나도 좋아해 주는 것이길 바란다.
내가 새우를 까주어서 좋아한다기보다, 내가 좋기 때문에 새우를 까주는 나도 좋아해 주는 것이길 바란다.
이러한 인과관계에는 숨어있는 한 가지 가정이 끼어들어갈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에게 커피 쿠폰을 준다면?’
아무리 커피 쿠폰을 나에게 준다고 해도 H를 이길 순 없다. 비단 커피 쿠폰뿐 아니라 다른 것들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커피 쿠폰을 주기 때문에 H가 좋은 것이 아니다. H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다 깊은, 어떤 근원적인 부분에 있다. 아마도 그것은 ‘다정함’에 있지 않을까?
적어놓고 보니 꽤 복잡하다.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H가 나의 어떤 한 가지 모습만이 아니라 다양한, 입체적인 모습을 보고 좋아해 주길 바란다는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하듯.
오늘 집에 데려다주면서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