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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늘 Aug 08. 2024

내 앞에 놓인 숙명들을 뒤로 하고 비행길에 오르다

프롤로그

 










 대학생활 3년을 간신히 버텨내고 남은 1년을 두고 돌연 휴학을 결정했다. 논스톱으로 4년 달리고 졸업 유예를 하거나 칼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바로 뛰어드는 추세에 참으로 용기 없이 내리긴 힘든 결정이었다. 말이 잘 포장돼 용기지, 실은 객기에 더 가깝다. 휴학 결정을 내리고 내게 남은 일은 학과장 교수님과 필히 면담 후 사인을 받는 것이었다. 당분간 학교 갈 일이 없다 생각하니 집을 나서기 전부터 뭔가 헛헛한 마음이었다. 1시간쯤 통조림 속 정어리처럼 빽빽한 사람들 사이서 치열하게 내 자리를 지키며 달려와 학과장 교수실 문을 세 번 똑똑똑 두들겼다. 저 왔어요, 교수님은 나를 편히 앉으라 인도해 주셨고, 나는 소파에 허리를 곧게 펴고 가만히 앉아 교수님이 물꼬를 틔어 주시길 기다렸다. 교수님은 메밀차를 내어 주시며 내게 휴학 사유를 물으셨다. 이미 전화상으로 대강 설명드린 후 약속을 잡은 것이기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와 같은 인사치레는 암묵적으로 생략. 그래서 나는 그냥 ‘음, 때가 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휴학계를 내밀었다. 이어 교수님은 설명이 필요하단 눈빛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셨는데, 그 따끔한 눈빛에 갇힌 나는 당돌한 토마토처럼 부연 설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예전만큼 열심히 뭘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이대로 말하는 감자로 졸업하는 게 싫어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걸 한번 찾아보려고요. 못 찾더라도 꾸역꾸역 졸업은 하러 오겠습니다.”


 그래, 그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중요해, 하시며 흔쾌히 사인을 하셨는데, 이것저것 물어보실 줄로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 돌리고 온 터라 은근한 당혹감이 있었다. 몸 건강히 지내세요, 돌아와서 수업에서 뵙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뒤돌아 나왔다. 뭐… 이게 되네, 그렇게 나는 그리 타당치 못한 이유로 합법적으로 일시적 자유인이 되었다. 수강신청 기간만 되면 최고치를 찍는 배움의 욕구, 일명 ‘빌넣’하며 테트리스하며 열심히 짜 놓은 시간표, 그러니 그 일정을 성실히 수행해 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은 당분간 서랍에 처박아 둬도 될 것.







 자유란 이 얼마나 근사한 것인가. 고작 스물 언저리에 이런 말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줄은 몰랐다. 그때 자유로움을 만끽하기보다는 교수동을 나와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 널려 있는 나무들 중 한 그루라도 두드릴 걸 그랬다. 나무속 혼령에게 내 행운을 빌어 달라 해야 했는데. 그 길이 그렇게 길고도 길었는데. 나무가 그렇게 많았는데. 바람의 콧김에 추추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를 보면서도 난 애석하게도 그 생각을 못 했다.









 자유엔 통렬한 고독이 수반한다는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한 달이 흘렀다. 눈을 뜨니 어젯밤 반쯤 걷어둔 커튼 사이로 선연한 햇살 두 줄기가 내려 방 안쪽을 비추고 있었다. 베개 자국이 선명히 그려진 오른쪽 뺨을 긁으며 자꾸만 가라앉으려 하는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불현듯 무언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건 없는 일상에 신물이 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뭘 하면 좋을까. 남들 다 한다는 토익 공부나 자격증 공부를 조금 해 볼까. 구미가 그리 당기지는 않아. 영어를 또 해야 해? 10년이 넘는 의무교육과정 내 배운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내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이 이상 했는데도 이렇게 본새 안 나고 구릴 거면 다른 길을 찾아보자, 하고 시선을 돌렸을 때 그곳에 프랑스어가 있었다. 일 년 전에 모 드라마에 빠져 재미로 시작했던 언어였다. 그때 그 배우가 덜 예쁘기만 했어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을 텐데. 드라마에 대한 흥미는 배우에 대한 흥미로 옮겨져 갔고, 그러다가 그녀가 프랑스어로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어떤 개별자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요새 자동 번역 같은 것이나 동시통역 같은 것이 잘돼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어떤 것도 거치지 않고 내가 가진 이 비루하지만 때로 적시에 빛을 발하는 신체적 매체로만 그녀가 다듬어내는 문장의 온기를 그녀와 같은 시간에서 살며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한 걸까,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럼 내가 배우면 그만이네, 하며 프랑스어 학원 왕초보반에 무작정 등록했다. 매일매일 강남으로 가는 빨간 버스에, 환승역 사당에 데려다 줄 4호선에 몸을 실었다.






 매미가 맴맴 울던 때였나. 기력이 쇠해 매미가 정말 울었는지 어쨌는지, 아까 전 중급불문법 선생님의 프랑스어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린 것은 아닌지. 이제는 가물가물한 그때에 학원을 마치고 잔뜩 지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언어란 정말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되는 영역의 것이구나. 하긴, 우린 한 언어의 모든 단어를 다 알고 죽지는 못 한다는데. 단기간에 되는 거였으면 그토록 수많은 비유나 은유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겠구나, 하는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한 20분을 기다렸나. 나보다 먼저 와 기다리던 사람, 나보다 늦게 와 기다리던 사람 할 것 없이 제 버스에 올라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는데,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오지 않았다. 눌어붙은 피로함과 습함을 얼른 찬물로 씻어내고 침대에 널브러지고 싶은데, 꼭 이럴 때 내 버스만 안 온다. 푸우, 한숨을 내쉬는 그 잠깐의 부지불식간의 순간에 머릿속에 불이 번쩍 들어왔다. 뭔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랑스인처럼 말하는 것을 원하면서도 프랑스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게 뭔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프랑스에 가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재미로, 취미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매력적인 음성을 가지고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그 여배우 때문에 시작한 공부가 진심이 돼 가는 것을 그때 눈치챘다. 나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다. 그게 있으면 뭐를 할 수 있고, 뭐에 좋고와 같은 이차적인 것은 후에 생각해도 문제가 없다.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한 순수한 열정이 저 밑에서 뻐끔거리며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프랑스에 가자. 프랑스에 가 보자. 그렇게 취업, 졸업 등 대학 4년 다닌 사람에게 숙명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뒤로한 채, 겁 없이 비행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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