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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gsungg labnote Sep 13. 2024

열정 넘치지 않더라도 그냥 하는 사람 <노인과 바다>

★★★★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라는 문장을 봤다. 그 친구는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얘기했다. 어떤 맥락으로 이 문장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노인과 바다>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15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단편이지만, 큰 재미가 없어서 10페이지, 20페이지씩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올여름에서야 책을 다 읽었다. 책에서 그 문장은 읽을 수 없었고, 전자책으로 ctrl + f 해도, 그 문구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노인과 바다>의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하고 지루했다.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가 온갖 고생을 하며 혼자 청새치를 잡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고기를 모두 뺏기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책을 덮은 후에는 도대체 이게 왜 걸작인지 잘 납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귀찮으니까 독후감까지 쓰지는 않고 한 달 동안 일상을 지냈다.


놀랍게도 <노인과 바다>의 탁월함은 일상을 지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노인과 바다>의 탁월함은 그 친구가 말했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른 문구를 떠오르게 했다. "열정 넘치지 않더라도 그냥 하는 사람"




한 바퀴 돌고는 미끼를 삼켜 버릴 테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뭔가 좋은 일은 입 밖에 내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배 아래에 맴돌고 있는 청새치가 미끼를 물기를 바라고 있는 장면이다. 최근에 노인과 비슷한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일의 진척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 정도 진척이면 좋은 쪽으로 기대해 봐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내 일의 진척에 대해서 말하기도 꺼려했었는데, 성공하고 싶은 이 일을 괜히 입 밖으로 말했다가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결과 첫 번째와 두 번째까지는 잘 됐는데, 세 번째 실험은 잘 되지 않았다. 괜히 입 밖으로 꺼내서 성공하지 않은 게 되어버렸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한 번에 성공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뭔가 방법을 다르게 해서 다시 진행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서 상심도 덜했고, 상심도 덜한 만큼 다시 시도할 수 있었다.



나는 끝없이 데이터를 수정하고, 실패의 반복인 실험을 하는 이런 일상 중에, 물고기를 낚으려 온갖 고생을 했지만 텅 비어버린 노인의 낚싯배가 떠올랐다. 이 소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했는데,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이 바로 소설 속 노인이었다.


실패해도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

열정 넘치지 않더라도 그냥 하는 사람.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나는 최근 1.5년간 연구라는 본업에 있어서, 그전만큼 열정을 가지지 않고 있다. 부정할 수 없이 맞는 말이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하고는 있다만, 이전에는 미친듯한 열정으로 연구를 수행했던 에너자이저였다. 하지만 지금은 불타는 에너지와 열정을 가질 수 없다. 아니, 일부러 그런 불타는 열정을 가지지 않는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만큼 성취, 보상, 실력, 이런 긍정적인 것들을 얻을 줄 알았다. 그리고 대학원 초반에는 실제로도 긍정적인 보상을 받았다. 대학원 1년 차에게는 모든 실험이 전부 처음 배우는 실험이었다. 실험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점점 실수 없이 깔끔히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선배 없이 개시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래서 낯선 프로젝트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새롭게 모델 시스템을 결정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 내가 실험하는 모든 실험 결과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실험 결과였다. 생명과학도였던 나에게는 처음 배우는 물리화학적인 강의를 주로 수강해서 학기 중에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겪은 후에는 그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양자역학의 시각을 얻었다. 그리고 연구실 자체도 처음 셋업하는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실험기구를 들여오고, 연구실의 규칙을 세우고, 많은 부분 나의 손길로 연구실을 채웠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만큼 깔끔하고 참신한 실험 결과, 지식, 보람을 얻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만큼 성취를 얻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이제는 실험도 많이 익숙해졌다. 100의 노력을 투자하면 80점의 깔끔한 결과가 나온다. 100 점 짜리 깔끔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150의 노력이 아니라 500의 노력이 필요하다. 80 점으로도 충분히 논리적으로 문제없고, 논문 퀄리티의 깔끔한 데이터를 낼 수 있다. 나는 실험 프로토콜 중 수행해야 할 것들을 다 수행하는 100의 노력을 하고 있고. 사소한 부분에 미친 듯이 다 집착하면서 실험하는 500의 노력까지는 하지 못한다.


내가 진행하는 한 프로젝트는 이미 2년 전에 데이터는 다 나왔다. 지금 이 프로젝트는 2년간 이미 나온 데이터를 여러 방식으로 디테일하게 수정할 뿐이다. 이런 수정 과정은 거시적인 논문의 큰 방향성과 논리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이다. 즉, 새롭고 의미 있는 참신한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이 과정도 당연히 중요하고 박사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다만, 이 작업이 과학 연구에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작업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시간과 성취의 관계는 y=sqrt(x) 그래프와 비슷하다. 초반에는 그 성취가 팍팍 오르다가, 후반에는 그 성취가 크게 오르지 않는다. 초반 0일째에는 100만큼의 열정과 노력을 부으면 10만큼의 성취가 돌아온다. 하지만 나중에 1000일째에는 100만큼 열정과 노력을 가하더라도 1만큼의 성취도 돌아오지 않는다. 긍정적으로 가정했을 때, 단조증가하는 y=sqrt(x) 그래프인거지. 실제로는 나중에 100만큼의 열정을 부어도 -5만큼의 성취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 1.5년 간 그전만큼 열정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성취라는 기름을 넣고 달리는 오토바이에 성취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인스타그램에 오늘의 성취를 적어 올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작은 성취라도 일부러 내가 의식하지 않으면 성취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초라해진다. 오늘 하루 보람차게 잘 살았다고, 오토바이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다고 확인하고자 함이다.


왜 그전처럼 열정을 가지지 않느냐고 교수님이 근래에 자주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서는 하하... 하고 웃어 넘어간다. 그전만큼의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일하면 번아웃이 온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연료가 바닥나버린다. 그리고 불타는 열정으로 전력질주를 하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크게 다치면 다시 일어서는데도 오랜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적당히 다치고 빠르게 회복해서 다시 일을 해야 한다.


아직도 작은 성취를 하나씩 달성해야만 마음이 편하기는 하지만, 성취가 없어도 그냥 하는 데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그 권태와 지루함과 반복과 디테일을 견디고 버티고 있다. 버티기 자체가 박사 과정이고, 인생이라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오늘을 쌓아야 새롭고 이상적인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성취에 상관없이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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