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 시대이자, 우주 경쟁 시대이다. 아폴로 1호 발사 실패를 비롯해 우주 예산 삭감같은 어려움을 겪는 NASA는 맨해튼의 마케터 켈리(스칼렛 요한슨)를 영입한다. 켈리는 NASA의 유인 달탐사 계획인 아폴로 11호 프로젝트를 미국 전역에 홍보하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아폴로 11호 발사 책임자 콜(채닝 테이텀)은 켈리가 탐탁치 않았지만, 서서히 좋은 결과를 일으키는 그녀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켈리는 미 행정부의 은밀한 플랜 B, 즉, 달 착륙 실패에 대비한 달 착륙 조작 영상을 준비하게 된다.
이 영화가 바로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과학 그 자체를 다루기보다 과학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지에 관한 영화다. 오펜하이머 시대에는 2차 대전을 이기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학자들에게 전폭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폴로 시대, 지구 반대편에는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것보다 당장 눈 앞의 사람을 구하는 게 먼저라고 하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달에 사람을 보내려 노력했다.
달에 사람을 보내는 초대형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1) 엔지니어의 기술, 2) 투자자와 국회의 지원 3)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 엔지니어는 프로젝트가 재미있어 보이고, 본인의 꿈에 맞닿아있다면 저절로 모일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과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고, 여론이 윤리적인 문제 등으로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2) 3)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에서 NASA는 마케터 켈리가 필요했고, 현대에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하다.
"달에 사람이 간다."
이 얼마나 천문학적이면서 낭만적인 캐치프레이즈인가. 이 캐치프레이즈를 이용하여 켈리의 아폴로11호 프로젝트는 여러 상품과 협업하여 광고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에게 아폴로11호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었다는 점이다.
낭만적인 캐치프레이즈 이외의 여러 수법으로 켈리와 콜은 아폴로11호에 대한 국회의 예산 지원을 따낸다. 대중과 국회를 상대로 광고하는 이 모든 과정이 영화에서 재미나게 그려지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영화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켈리는 달에 사람이 착륙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송출하자고 의견을 낸다. 콜은 카메라 기술이나 무게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어찌저찌 한바탕 소동을 거쳐 우주선에 카메라를 싣기는 한다.
이와 비슷한 예시가 바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태양계를 탐사하기 위한 인공위성 보이저 1호가 명왕성을 향해 날아간다. 보이저 1호가 날아가던 중에 칼 세이건이 제안을 하나 한다. "보이저 1호를 뒤집어, 지구를 향해서 사진을 찍어보자." 하지만 이 제안은 현업 과학자들에게 반박당했다. "움직이던 우주선을 지구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구, 그러니까 태양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다가 태양빛 때문에 카메라가 망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거 돌려서 사진 찍으면 무슨 과학적인 의미가 있느냐." 칼 세이건은 그에 다시 답한다.
"지구를 향한 사진이 위험하고 과학적인 의미가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위해 세금을 낸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리는 일 또한 우리의 의무다."
결국 칼 세이건의 의견대로 보이저 1호를 뒤집어서 지구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진에는 한 픽셀짜리 작은 점, 지구가 하나 보인다.
"저 점을 다시 보세요. 저것이 바로 이곳입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
켈리는 조작 달 착륙 영상을 만드려고 감독을 섭외했다. 감독은 화를 내며 물어본다. "달 표면의 모래는 어떤 느낌인데?" "햇빛이 어느 방향에서 어느 각도로 비치는 건데?" "카메라는 어디에 둬야 하는데?" "비행선은 어떻게 생겼어?" "이 사람들은 뭘 입어야 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것들도 모르면서 어떻게 촬영을 하라는 거야! 얼른 가서 알아와!" 그래서 켈리는 달 착륙에 관련해서 열심히 염탐하며 공부하기 시작한다.
대화, 소통, 스피치, 마케팅 이런 것들만 잘해서는 절대로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없고, 절대로 브랜딩이 잘 될 수 없다. 그 본질을 잘 숙지하고 꿰뚫고 있어야 한다. 대화를 하다보면,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티가 난다. 그러면 전문성이 떨어져보이고, 신뢰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게 바로 내가 이공계 박사로 진로를 정했던 이유다. 우선 내가 과학에 대해, 깊숙히 알고 있어야 한다.
나야... 그럼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콜은 진심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고 싶어한다. 진심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장비를 체크한다. 진심을 담은 콜의 말로 공학을 싫어하는 의원을 설득하기도 했다. 켈리도 진심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고 싶어한다. 같이 일했던 동료 엔지니어들의 그 진심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우주 마케팅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감정들을 봤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대중들을 외면할 수 없어, 그녀도 진심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고 싶어했다.
달에 사람을 보내기 위해서는 설렁설렁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면 안 된다. 온 열정을 다해야 겨우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다. 유인 달 착륙이라는 진실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진심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
콜을 향한 켈리의 마음이 가벼워 보이기도 했고, 거짓이 있는 것 같다고도 느꼈다. 왜냐하면 켈리의 직업이 마케터였고, 콜은 켈리를 거짓말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콜은 켈리의 마케팅에서 진심을 알아보았고, 결국 그녀의 콜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까지 확인한다.
상대에게 설득을 하거나 과학적인 내용을 전달할 때 조금의 과장이나 축소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부의 왜곡은 전체적인 진심과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결국 상대방에게 그 진심이 닿는 게 중요하다.
덧. 제니가 멋있고 고양이가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