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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gsungg labnote Sep 23. 2024

소설에 쓰여진 내 못생긴 마음 <나주에 대하여>

★★★★


나는 김화진 작가를 김화진 편집자로 처음 알았다. 도서나 출판사 관련 유튜브를 자주 보던 나는 김화진 편집자가 일하는 민음사 유튜브 채널에서, 전자책을 추천하던 밀리의 서재 채널에서, 작가로서 등장하는 문학동네 채널에서 그의 얼굴과 말투를 먼저 익혔다.


작가의 겉모습을 인지한 채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작가가 곧, 작품 속 화자가 된 것만 같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대사가 작가 특유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들린다. 그리고 이는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작가의 말에도 소설이 그때의 작가 본인이라는 언급을 한다.


소설 속 감정들은 못생기고 찌질하다. 작가의 못생긴 마음 소설로 표현됐다. 그 못생긴 마음은 비단 작가의 것만이 아니다. 나의 못생긴 마음도 작가의 문장을 통해서 드러다. 내가 충분히 형용하지 못하는 나의 찌질한 마음이 내 앞에 적혀있어서 깜짝깜짝 놀다. 내가 책을 읽고서 더 추가할 내 생각이랄 건 없다. 내 마음은 이미 소설 속 문장으로 쓰여있다.




쉬운 마음

선배, 저는요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촌스럽고 의존적이고 속이 빈 것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가끔 이렇게 털어놓고 싶어 져요.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가 저를 좋아하는 일이, 몹시 중요해요. 한없이 쪽으로 몰두하면 좋지 않을 걸 알아서 계속 경계하고 그 외의 것들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도 제가 하는 그 모든 일의 밑바닥에는 끈질기게 그 생각이 들러붙어 있어요. 본령처럼요.


자꾸만 사람에게 붙들리는 자신이 싫다고 울었던 이 있다. 혼자 잘 서있고 싶어. 아무에게도 영향받기 싫은데, 자꾸 끌려가기 싫은데 그게 잘 안 돼. 나는 그 사람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은 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서러운 마음. 그런 것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



나주에 대하여

내 애인과 너는 삼 년 전 헤어졌다. 나는 애인과 삼 년 전에 만났다. 내 애인은 나와 만나기 위해 너와 헤어졌을 것이다.


자기 공간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 오롯한 논리를 내버려 둬야 하고 스스로가 세운 원칙을 존중받아 야 해서 섣불리 노크하거나 노크조차 않고 불쑥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소개하며, 절대 먼저 뭔가를 제안하지 않는 사람들. 같이 저녁 먹을래요? 시간 되면 볼래요? 하는 말을 주로 듣는 쪽인 사람들. ... 나는 생애 전반에 걸쳐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원망했다.


나만 너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네가 아무리 가까이 와도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더 깊이 너를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너는 이미 선이 있고 항상 단호하고 나는 이 있던 적이 없으니까. 늘 한쪽만 맡는 일이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블로그식 말하기구나. 나는 너의 화두를 들으며 그런 것을 감별한다. 너는 점심시간에 네댓 명이 모였을 때 나누는 스몰토크로는 인스타그램식 말하기, 외근 나가는 길에 두 셋이서 대화를 나눌 땐 트위터식 말하기, 그리고 예외적으로 아주 가끔 생기는 이런 둘의 시간에는 블로그식 말하기를 한다.



근육의 모양

은영은 자신이 언제나 느린 편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훌쩍훌쩍 넘어가는 시기에 혼자 찐득하게 머물러 있다고. 불량 액체괴물 같다고. 손에 묻지 않고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게 액체괴물의 특징인데, 나는 자꾸 손에 묻는 거지. 모양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결국엔 내 마음이 거기에 잘 붙어있지 못할 거야. 마음이 포스트잇이야. 나는 관계를 지속하는 데 목적이 없는 사람이야.


#불량 액체괴물 같은 은영, 포스트잇 같은 재인


정체기

천마총이요. 들어가면 잠깐 경이로운데 돌이 나오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과거를 아껴두려는 현재의 손길이 덕지덕지, 결국 현재만 남아있어서. 저는 그게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결국 지금이라는 것이, 그 얄팍한 게.


러나 이상하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실어서 노력하다 보면 아무도 모르는 마음 한구석에는 타인에게 내보이기 못생긴 찌꺼기들이 남는다. 그런 내가 갖추고 싶은 나를 향한 솔직한 말들이다. … 울고 싶지, 외롭지, 나 좀 좋아해 달라고 말하고 싶지, 하는 말들.



작가의 말

나는 을 드러내면서도 흠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나의 가장 별로인 점이라는 것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현실에서도 은근슬쩍 티를 내는데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 소설로도 쓴다. 비뚤어지고 이상한 속마음,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마음, 치고받고 싸워도 용서받고 싶은 마음을 쓴다.


못생긴 마음들을 쓸 때 나는 이상하게 행복하다. 그것을 솔직하게 쓸 수 있어서, 회피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대체로 확신과 용기가 없는 채로 살아가는데, 소설을 쓸 때만은 용기가 생긴다. 이런 마음을 써도 돼. 확신도 생긴다.


내가 쓴 소설들은 언제나 그때의 나다. 지금의 나는 퍽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때는 분명히 그런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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