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편. IDP 비정형 단백질
나의 메인 연구 주제는 IDP, 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이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비정형 단백질이고, 한자로 풀어서 해석하면, 아닐 비, 고정될 정, 형태 형, 즉, 고정된 구조가 아닌 단백질을 의미한다.
아래 그림은 맷돌같은 구조의 단백질이다. 맷돌의 경우, 윗맷돌의 구멍에 콩을 넣고, 사람이 에너지를 가해서 윗맷돌을 돌린다. 윗맷돌과 아랫맷돌이 맞물리며 돌아가면서 콩이 갈리고, 그 콩물이 돌 사이로 빠져나온다. 에너지로 맷돌을 돌려서, 콩을 맷돌 아래로 흘려보낸다. 아래의 단백질, ATP 합성효소도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아래의 단백질은 수소이온(형광 초록)을 콩처럼 이용한다. 콩같은 수소이온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단백질이 회전한다. 여기서 맷돌과 살짝 다른 점은, 이 단백질이 회전하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즉, 수소이온(콩)을 단백질(맷돌) 아래로 흘려보내서, 단백질(맷돌)이 돌아가면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런 방식으로, 구조를 보면 대략적으로 단백질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유추할 수 있다.
단백질의 구조를 기준으로 해서, 단백질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어떤 단백질은 무슨 모양인지 확실히 정해져 있는 반면, 또 다른 단백질은 무슨 모양인지 알 수 없이, 흐물흐물하게 퍼져있기도 하다. 전자가 정형 단백질(Ordered Protein)이고, 후자가 바로 내가 연구하는 비정형 단백질, IDP(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 이다. 위 그림의 단백질은 정형 단백질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전 변화만 있을 뿐, 전반적인 구조 변화는 없다. 반면, 아래 그림의 단백질은 비정형 단백질(IDP)이고, 그 구조가 시시각각,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물건들에서도 모양이 정해져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 글을 쓰고있는 내 앞에는 스피커와 유선이어폰이 있다. 스피커 하단에는 바닥으로부터 지지하는 지지대가 있고, 중앙에는 2개의 동그란 버튼, 전원버튼과 음량버튼이 있다. 스피커는 전반적으로 네모난 모양이고, 그 네모난 판 중앙에는 음파가 진동할 수 있는 원형 구조가 있다. 반면, 유선이어폰의 한쪽 끝은 스피커에 연결하는 단자가 있고, 반대편 끝은 양쪽 귀에 꽂을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커널이 있다. 그 중간은 기다란 전선으로, 뭉쳐져있기도, 둘둘 감겨있기도, 주욱 펴져있기도 하다. 유선이어폰이 무슨 모양이냐고 물으면, 그냥 길고 흐물흐물하게 퍼져있는 모양이다. 주머니 속에 유선이어폰을 넣고 돌아다니면 이어폰이 스스로 헝클어진다. 월요일의 헝클어진 유선이어폰과 화요일의 헝클어진 유선이어폰은 다른 모양을 가진다. 즉, 유선 이어폰은 모양이 확실히 정해져있지 않는 구조이며, 이는 내가 연구하는 IDP와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어떤 단백질은 정형 단백질 (Ordered Protein)이 되고, 또 어떤 단백질은 비정형 단백질 (IDP)이 되는가? 이는 앞서 언급했던 단백질의 구성요소인 아미노산에 따라 달라진다. 아미노산은 20 가지가 있고, 이 중에서 9개(Serine, Threonine, Asparagine, Glutamine, Aspartate, Glutamate, Lysine, Arginine, Histidine)는 물을 좋아하는 특징을 가지고, 8개(Alanine, Valine, Leucine, Isoleucine, Methionine, Phenylalanine, Tyrosine, Trytophan)는 물을 싫어하는 특징을 가진다. 나머지 3개는 구조적으로 트릭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물을 싫어하는 아미노산이 많으면, 단백질이 물과 맞닿아있는 면적을 최소화하려고 하며, 단백질끼리 뭉치고, 접히려는 성질이 강하다. 반면, 물을 좋아하는 아미노산이 많으면, 단백질이 접히려는 성질보다는, 물과 많은 표면적으로 맞닿아있으려 한다. 즉, 정형 단백질은 물을 싫어하는 아미노산으로 많이 이뤄져 있고, 비정형 단백질은 물을 좋아하는 아미노산으로 많이 이뤄져 있다.
글의 초반에는 단백질의 구조가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 다음 문단에는 정형화된 구조가 없는 단백질(IDP)이 있다고 언급했다. 두 내용을 종합하면 정형화된 구조가 없는 단백질(IDP)은 기능이 없으리라고 유추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한동안은 생명과학자들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IDP 또한 생물학적으로 그 나름대로의 기능이 있다는 연구가 최근들어 대두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유선 이어폰 예시를 다시 들어보자. 유선 이어폰이 흐물흐물하다고, 유선 이어폰의 전선 부분이 아무런 기능이 없는 게 아니다. 전선 부분은 AUX 단자부터 귀까지 소리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이어폰의 길이가 닿는 한계 내에서, 커널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어폰을 낀 채 가만히 앉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어도, 신나는 음악과 함께 머리로 박자를 타고 있어도, 바깥 소리를 듣기 위해 잠깐 이어폰을 귀에서 빼내어도, 유선 이어폰의 움직임에는 제약이 없다. 왜냐하면 유선 이어폰의 전선 부분이 고정된 구조가 아니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Nup159는 기능이 있는 IDP의 한 예시이다. 세포 안에는 '핵(nuclear)'이라는, DNA가 담긴 중요한 소기관이 있다. 어떤 생체분자(RNA, 단백질, 탄수화물 등)가 '핵' 내부와 외부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핵공복합체(nuclear pore complex)' 라는 구멍 단백질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면 이동해야하는 그 생체분자는 '핵공복합체'를 어떻게 찾아가는가? 이 질문의 해결책이 바로 Nup159 이다. Nup159는 핵공복합체 바깥쪽에 위치한 단백질로, 1,460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IDP 이다. 단백질의 평균적으로 400개 아미노산으로 이뤄져있으니, Nup159는 평균 단백질보다 3배는 더 기다란 규모이다. 즉, 핵공복합체 바깥에는 기다란 끈같은 모양의 Nup159 단백질이 흐느적거리고 있다. 이 때, 이동해야하는 생체분자가 핵 바깥에서 핵공복합체의 위치를 못 찾고 있으면, Nup159가 왔다갔다하다가 그 생체분자를 채찍처럼 낚아챈다. Nup159라는 채찍에 달라붙은 그 생체분자는 채찍 끝부분에서부터 채찍 손잡이까지 이동하고, 생체분자는 마침내 채찍 손잡이에 위치한 핵공복합체에 도달한다. 만약에 Nup159의 구조가 고정되어 있었다면 위와 같은 채찍 메커니즘으로 생체분자를 핵공복합체까지 데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 즉, Nup159의 구조가 정해지지 않은 특징을 이용하여 Nup159는 생체분자를 핵공복합체까지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IDP는 고정된 구조없이, 시시각각으로 그 구조가 변한다. 이 특징으로 인해 정형 단백질은 못하지만 IDP는 할 수 있는 일 2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IDP는 다양한 파트너에 결합할 수 있다. 정형 단백질은 그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그와 결합할 수 있는 파트너가 정해져있다. 특정 형태를 지닌 열쇠는 알맞은 자물쇠에만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IDP는 구조적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어느 파트너든 대충 끼어들어가서 결합할 수 있다. 대충 결합하기 때문에 그 결합 세기는 강하지 않지만, 다른 파트너들에 범용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움직이는 IDP는 파란색 파트너에 결합할 때는 파란색에 걸맞는 모양이 되고, 보라색 파트너에 결합할 때는 보라색에 걸맞는 모양이 된다. 즉, IDP는 다양한 파트너에 결합하도록 유연하고 자유로운 형태 변환이 가능하다.
두번째로, IDP는 여러 개의 파트너와 결합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정형 단백질은 결합할 수 있는 파트너가 정해져있고, 파트너와 결합하는 부분이 정해져있다. 그 부분이 하나의 파트너에 결합하면 또다른 파트너는 정형 단백질에 결합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가면서 그 열쇠가 두 번째 자물쇠에도 들어갈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두 개의 자물쇠에 동시에 들어가려면 열쇠 형태가 앞뒤로 있어야 한다. 반면, IDP 는 한 번에 여러 개의 파트너에 결합할 수 있다. IDP에도 파트너와 결합하는 부분이 있긴하지만, 그 부분의 구조적 제약이 덜하다. 정형 단백질이라면 100 개의 아미노산을 사용해서 파트너 결합 부분을 만들지만, IDP는 5개 아미노산으로도 파트너 결합 부분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IDP는 100개 아미노산으로 20개의 결합 부분을 만들 수 있고, 20개의 파트너와 동시에 결합이 가능하다. 즉, IDP 는 자유도가 높아, 여러 개의 파트너에 결합할 수 있다.
어느 연구분야던지 마찬가지겠지만, IDP를 연구하는 일은 어렵다. IDP 가 어떠한 형태로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현미경 사진을 찍으면, 모든 현미경 사진마다 다른 형태를 보여서 도대체 IDP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아래 유머사진처럼, 사진 찍을 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강아지는 그 강아지의 원래 형태를 유추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일반적으로 구조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엑스선 회절법이나 초저온 전자 현미경으로는 IDP의 특징과 기능을 분석하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이 기법들은 모두 정형 단백질을 분석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어려운 IDP 를 연구하기 위해서 두 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첫 번째, 앞서 언급한 엑스선 회절법과 초저온 전자 현미경같은 구조생물학 기법을 더 공부한다. 돈에 대해서 알아야 가난을 이해할 수 있고, 발성에 대해서 알아야 음치를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단백질의 구조에 대해서 알아야 단백질의 구조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단백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을 잘 공부하다보면, 그 빈틈 사이로 IDP의 형태적인 특징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구조생물학 기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다만 문제는, 구조생물학 기법을 공부할수록 IDP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두 번째, 열역학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단백질의 형태적이고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정보 너머의 정보를 얻는다. 이 내용은 다음 P, Physical Chemistry, 물리화학 편으로 넘어가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오늘 글은 여기까지.
덧, 짧은 MBTI 이야기 - I
연구자는 I형 유형답게 혼자 일을 해야 한다. I는 내향형,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에 에너지를 얻는 유형이다. 즉, 연구자는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빠져 침잠하면서 연구를 해야 한다. 자연과학 연구자는 본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설을 수립한다던가, 여러 실험을 디자인 해본다던가, 실험 결과를 해석한다던가 하는 생각을 다양한 방향으로 발산한다. 그리고 각 방향으로 발산된 생각을 질문으로 끌어와서 이 가설과 실험과 결과가 질문에 어떠한 답을 내놓는지 생각을 수렴한다. 자연과학은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 논리 전개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호나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자연과학의 연구 생각들은 혼자서 교과서와 논문을 통해 공부하거나, 수식이나 다이어그램으로 논리 전개를 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향한다. 선배와 동료들과의 디스커션을 통해서 연구에 도움과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국에 혼자 숙고하는 시간을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