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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Sep 05. 2024

캐릭터 치유 스토리

고유성을 깨우는 사람들


새로운 자기를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과정은 다양한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들 중엔 특이점을 가지고 껍질을 벗어가는 유형들도 있다.

엠패스 초민감자와 에너지 민감자들도 그러한 유형에 포함될 수 있겠다.

나는 초민감자 엠패스로 태어났다.


엠패스 [에너지 초민감자]

단순한 감각이나 감정을 넘어서서 생체 에너지나 타인에 관한 직관적인 정보 등까지도 흡수하는 성향을 학계는 초민감자(Empath)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자기마다 상징적 몸의 원형을 동물의 이미지와 본성으로 깊은 무의식에 가지고 있다.

이 원형은 자신 몸의 생존적인 직관과 올바른 장소와 환경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나아가 자기 보호와 아군과 적군을  감지하는 포유류의 뇌간적인 본능의 힘과 지혜로

무의식의 파동을 삶으로, 끌어당김으로 작용을 한다.



이 생존의 지혜와 직관을 안내하는 자기 신체의 상징 동물이 자기 원형이 아니고

태아 시기나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한쪽 원형을 생체 복사해서 나의 정체성으로

입게 되면 나는 사라지고 그 부모의 삶과 공명하며 부모와 유사한 삶을 살게 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원형이 닭이고 나의 원형이 독수리인데 어떤 원인에 의해

엄마의 닭을 나의 원형으로 생체 복사해서 입게 되면

그때부터 독수리는 심층의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 힘을 쓰지 못하고

엄마 원형인 닭 두 마리가 되어 나 자신은 사라지고 내가 엄마의 복제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닭의 원형을 사는 엄마의 삶이 행복하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 본성이 독수리이기에 나는 풍요 속에서도  가슴의 외로움과 불안과

깊은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각고 끝에 어떤 순간부터 회복 사이클로 전환이 되면

깊은 무의식에서 한 번씩 드러나는 자기 본모습(독수리)과 조우를  경험하게 된다.


나의 경우  무의식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새벽에 잠이 깼을 때 잠깐 인식하거나

현실에선 그 상징 동물이 내 앞에 여러 환경으로 나타나 만나게 되는 경험으로 자신을 알려주었다.

자각하지 못하면 알 때까지 고생하는 시행착오의 루프를 돌며 자각이 된다.



자기 내면의 성장으로 사이클의 변이 과정과 맞물리면서

타인 생체 복사 경험의 옷을  하나씩 벗어내는 자각과 치유와 정화과정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본성이 되어가는 퍼센티지 다운로드가 단계적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렇게 말하면

어렵고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어서 나의 경험을 일부 표현해 본다면

생각의 체계에 변화가 와서 엄마의 원형이었던 닭의 마인드를 벗고

자신의 원형인 독수리의 본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유년기의 상처와 트라우마, 관념과 묶인 감정의 층들을 단계적으로 풀어가면

몸도, 정서도, 생활의 관계도 점차적으로 고요함과 평온한 일상으로 들어간다.


유년기 가족인 부모와 형제에 대한 큰 이해와 용서, 수용이 풀리면

내가  이 생에서 선택으로 창조한 배우자와 아이들과 얽힌

관계의 원인 고리들이 자각이 되므로

자기 패턴의 고집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밝은 쪽으로 적용할 수 있다.


그러함은 나의 슬기로운 관계의 처세가 가족의 변화와 치유를 이끌어내므로

가족들의 정서가 편안해져서 소통과 공감의 영역이 확장으로 이어진다.

미혼이라면 자신의 주파수가 변화했으므로 과거 버전의 남녀관계 패턴을 종료하고

지금 현재 나의 주파수로 끌어당겨지는 인연을 만나게 되니 레벨 업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아이 영혼 역시 현재의 부부 주파수와 연결되므로

지구 입장에서도 그런 레벨의 영혼 육화는 환영하고 축복할 일인 것이다.

그러함에  결혼 전의 나를 찾는 여정과 전환의 과정,  통찰 글쓰기 등 자기 방식의

자기 민감도와 감각 깨우는 일상의 일은 삶의 관계를 맺고 조율하는 방식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닭으로 살아오며 맺던 인간관계와 섹슈얼리티 이슈, 돈 이슈 등의 어려운 난제들에

현실적인 변화가 함께 찾아와 환경과 인연들의 물갈이가 대거 일어난다.

소리와 빛, 감촉의 예민함 등이 견딜만하고 수용돼 심리와 멘털, 몸의 면역성이 점차 올라간다.





자기 고유성에 대한 욕구가 올라감으로 하여 세상에 자신을 하나씩 드러내며

과거와는 다른 교류와 소통을 하러 새로운 모험의 장으로 들어가는데

마인드가 전환이 되어 같은 것을 경험해도 그것에 대한 감정의 반응이 과거 패턴과 다르게 수용된다.


나답게 살고 싶은 창조의 변화를 상상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구조화를 하는데

그것이 목적보단 방향성과 유희처럼 가볍고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닭으로 살던 구간에서 배운 모든 것을 불식시키며

이해불가 영역에서 일어나고 변형되므로 안다고 생각되는 나가  많을수록

엄청 센  빌드 업을 시키며 옥수수 껍질 까듯 마구 벗겨내는 구간을 지나간다.


그때는 머리와 지식, 그동안 모아 온 모든 좌뇌적 앎을 포기해야 하고  바보가 되어

인간이 살아가는 제한되고 불안정한 영역의 애씀을 가슴에 맡겨야 한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이때 깊은 묵상으로 기도의 힘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타나는 이 현상과 느낌들을 그냥 받아들이고 경험해 간다.

자기가 누구인지 밖으로 찾아다니는 것을 최대 멈추어야  자기 통찰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새롭고 역동적인 감각들, 직관들이 가슴의 공간 안에서부터 시작되어

심장 중심에서 밖으로 물들이며 채워져 간다.

기쁨을 넘어선 환희 심 같은 것들과 함께 존재의 기억이 작지만 하나씩 돌아온다.

자신의 무능과 존재의 혐오를 벗어내며 자기 존재의 여기 있음에 용서의 강둑이 터져

자기 사랑의 강물이 되어 흘러넘친다.

그런 순간들이 채워지고 시간의 층이 쌓이면서 내면의 자유와 야성과

권위의 회복으로 자신이 변이 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해 간다.



홀로였던 시간을 벗고 나와  높은 창공과 바다와 숲을 향해

비상하고 싶은 욕구가 충동이 안에서부터 힘으로 주어지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게 내게서 일어나고 가능해진 것일까?



우리가 모름을 인정할 때, 몰라도 인간이 살 수 있음을 가슴으로 수용할 때

자신의 과거가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가능테의 영역이 한 번 더 열려가는 듯하다.

이러한 흐름으로 자기 권위를 회복하는 물갈이 변이가 대거 일어나는데

사람마다 흐름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지구가 매년 더 뜨거워지며 이상고온 현상을 전 세계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기후의 온도 상승은 생태계의 모든 생명군의 변화를 끌어와 유전자를 변형시키며

생존하기 위한 진화를 가속화시킨다. 유전자의 본능이다.

이상 고온의 높은 온도는 인간의 생체 지도를

에너지 민감자들로 점진적으로 열어가고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서  감정의 정서 역시 변화무쌍 해지게 된다.

지구는 이미 지구촌 마을로 글로벌 네트워크로 집단화되어 공생과 공존 또는

공멸로 움직여 가는 시대에 태어나 우리는 살고 있다.

자본이 풍요로워 넘치는 그만큼

정서와 마인드는 가슴으로부터 멀어져 숏츠 한 자극과 중독이 없으면 심심해진다.



나의 감정을 살피고, 나의 몸의 리듬을 살피며 나의 행복함과 평안을 이끌어 내는 일은 중요하다.


개인의 파동이 뿜어내는 한 생각과 작은 느낌의 파동들이 주변으로, 동네로

나와 에너지 필드로 연결된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인식하면.,

나는 어제보다 내 삶에 나다운 책임을 부여하고,  

한결 평온해질  라이프를 숙고해 볼 것이며 어느새 그런 방향으로

미소 지으며 노력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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