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내가 일년반 남짓 중국행을 거쳐 한국에 온지도 어느덧 십년을 넘겼다.
강산이 변한다는 그 긴 세월과 시간이 돌이켜보면 나에겐 어쩐지 금방 지나간듯 짧게만 느껴진다.
한 민족이라 언어만 같을뿐 풍습도,환경도,문화도 다른 이 땅,
타임머신을 타고 갑작스레 미래에 홀로 던져지듯 내린 이곳에서 지난 십년동안 너무도 많은 변화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도 안해본 일이 거의 없을정도로 해봤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금방 나왔을때는 하루에 네가지일을 했다.
새벽에 전단지를 붙히고 들어와 씯고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컬러박스 제조회사에 다녔고 오후 다섯시반에 퇴근해서는 바로 집 근처 주유소 알바를 했었고 끝나면 또 밤 열시까지 건설기숙교육원에서 용접을 배웠다.
그렇게 3년을 일하고 모은돈으로 개인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번엔 반대로 3년만에 돈을 다 잃고 빚만지게 되였다.
의욕만으로는 성공할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잃어버린 시간과 돈을 되찾기위해 별의별 일을 다해봤다.
1톤트럭을 사서 택배도 해보았고. 일용직과 용접, 대리기사를 병행하면서도 해봤다.
그것도 안되서 아찔하게 높은 고층건물에 바줄하나에 매달려 목숨걸고 페인트 칠도 하봤고 중장비 자격증을 따고 쓰레기 소각장에서 중장비도 운전해 보았다.
그러면서 또 투잡으로 퇴근후 배달도 했었다.
중소기업에서 설계와 기술영업도 해보고 뜨거운 고열을 견디며 발전소 보온도 해봤다.
보험도 해보고 자격증을 따서 법인 컨설팅도 해봤다.
북한에서 30년 세월 오직 예술계통에만 종사해온 나에게 있어서 모든것이 처음이기에 도전이고 시련이였지만 어느것 하나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없이 열심히 잘 해냈지만 한번 꽃히기 시작한 내리막길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고 내가 스스로 정한 기준을 만족시키지도 못했다.
그래서 또 빚을내여 중고트럭을 사서 화물운송을 시작했다.
이 역시 처음이라 일년이 지난 지금도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다.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까지 오는길에 숨진 그네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 꼭 성공해야된다는 각오와 집념으로 십년세월 앞만보고 달려왔지만 아직도 그 성공이란 정점은 내가 달려가고 있는 길의 지평선 너머에나 있는듯 보이지조차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 앉아 있을수는없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추운 겨울날 피를 토하며 내 무릎에서 죽은 어린 준영이를 비롯한 일행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헐벗고 굶주렸던 그세월속에서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그시절이 어제인듯 생생히 떠오르고 태국의 이민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디딜때의 초심을 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은 커녕 친척,친구,지인 한명도 없이 온통 처음이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스스로 깨우치고 알아가야 하기에 외롭고 힘들고 지치지만 그때마다 십여년전 그날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백두원시림에서의 사선의 고비들과 지옥같이 살아온 북한에서의 삶의 나날들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