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무엇이든 하려면 앞치마를 입는 것이 좋다. 집에서든 TV에서든 늘 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연한 것을 실천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단계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주방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다. 1-2년 정도는 넘었고 지금은 생계 수준의 간단한 음식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필요한 도구들이 어디에 있는지 헛손질 없이 찾는 정도는 된다.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예컨대 찌개를 끓여도 처음에는 1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이제는 30-40분 정도면 가능하다. 1분 단축에 어느 정도 세월이 걸렸는지 따져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자주 하는 몇 가지는 시작부터 길을 알고 헤매는 법 없이 그럭저럭 마칠 수 있게 됐다는 얘기이다.
요리를 하는 일이 아주 조금 잦아지고 이것저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앞치마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그것이 공연히 멋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재료를 씻고 손질할 때 물이 튀는 것은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말랐다. 문제는 조리가 되는 과정에서 간이 옷에 튀는 것이다. 재료를 넣고 어느 정도 익고 있나 확인을 하려면 숟가락을 들고 맛을 보아야 한다. 요리가 익숙하지 않으니 이 작업을 자주 해야 한다. 냄비 뚜껑을 열고 젓고, 국물을 옮기고 하는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옷에 간방울이 튄다. 맑은 국물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붉은색에 기름까지 섞여 있는 국물이 튀면 심각해진다. 밝은 색 옷을 입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상황은 최악이 된다.
더 안 좋은 경우는 음식을 볶거나 뒤적이며 끓여야 할 때이다. 예를 들면 짜장이나 카레 또는 스파게티 양념을 만드는 과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물이 많지 않은 이 음식들은 재료를 섞거나 국물이 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걱으로 뒤적여 주어야 한다. 손놀림이 능숙하지 않은 나는 주걱에서 간이 튀는 바람에 종종 옷을 버렸다.
가장 어려운 것은 걸쭉한 국물이 보글보글 끓으며 거품이 터지듯 한 두 방울씩 튀어 오를 때이다. 죽이 끓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언제 어떻게 어떤 강도로 거품이 터질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튀어 오르면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이런 음식은 대체로 색깔도 강렬하고 기름과 흥건하게 배합된 것들이어서 옷에 묻는 순간 돌이키기 어려운 사고가 된다.
자주 하는 요리는 아니지만 기름을 어느 정도 붓고 튀김 비슷하게, 혹은 구이를 하게 될 때는 옷을 버리기로 아예 각오를 하게 된다. 기름이 끓으며 튀어 올라 사방으로 퍼지는 형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큰 방울이 손에 튀면 뜨거워서 알게 되는 정도이다. 프라이팬 주변 선반이 번들번들해지고 심지어 부엌 바닥까지 미끄러워지는데 입고 있는 옷이 성할 리가 없다.
입에 들어오는 것에 비해 요리 전후의 비용이 너무 큰 이런 작업은 그래서 여간해서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성가신 작업을 잊어버리고 어쩌다가 하게 되면 이미 중간부터 후회를 하게 된다. 되돌아갈 길이 없으니 그럭저럭 끝까지 가게 되지만 옷은 초반부터 갈아입기로 작정을 해야 한다.
주로 집안에서 입는 옷이 이런 일을 당하니까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외출을 할 때 입고 나갈 것도 아니고 대체로 오래 입은 옷이기 때문에 크게 안타까울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집안에서 입는 옷이라고 해도 용도가 있고 주기가 따로 있다. 음식 한번 했다고 그때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앞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이렇게 불편한데 그에 딱 맞는 용품이 없을 리가 없지.’
눈여겨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장식 정도로 생각했던 일상 용품이 이렇게 긴요한 역할을 하며 적당하고 알맞게 제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지경이었다. 사실 부엌에 있는 물건들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모두 알차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요소요소에서 제 몫을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면 앞치마를 입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앞치마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요리를 하기 전에 잠깐 주저하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대체로 이렇게 흐른다.
‘옷을 버리지 않을까. 앞치마를 입을까. 아니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그리고 그냥 시작을 한다.
간혹 운 좋게 옷이 멀쩡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간이 들어가는 음식을 할 때는 크든 작든 대체로 옷에 문제가 발생하고야 만다. 약간의 간이 튀면 옷을 지르잡는 정도로 해결한다. 많이 튀면 지르잡기를 해도 여러 차례 심각하게 해야 한다. 복잡한 일이 아닐지라도 음식을 하다가 이처럼 옷에 물을 묻히고 짜고 하는 것은 상황을 산만하게 만든다. 집중을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만약 요리 선생님이 있다면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빠르게 물로 희석시키지 않으면 간이 옷에 단단하게 배어 버리기 때문이다. 지르잡기라도 해서 흐리게 해 놔야 나중에 빨래를 해도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 음식을 하다가 말고 이렇게 옆으로 새는 것이 분명 초보자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자초하면서 왜 그동안 앞치마를 입지 않았을까? 귀찮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남자가 어떻게 치마를 입어.’ 이런 심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 꺼려지는 이유가 있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는다.
여하간 공연한 고집으로 옷을 번번이 버리면서 버티다가 어느 순간 돌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종의 깨달음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은 요리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앞치마를 입는다. 입다 보니 그쪽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욕심까지 생긴다. 두 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요즘은 어떤 무늬의 앞치마가 적당할까 고르고 있다.
앞치마도 모양별로 패션이 있고 화려한 것, 점잖은 것, 우아한 것 등등 무늬도 다양하다. 고르기가 쉽지 않다. 곧 하나 더 사야 할 텐데 고민이 깊어진다.
앞치마는 아주 편리한 도구이다. 요리를 시도하는 내 또래 초보자들이여 모두 앞치마를 입고 시작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