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에 대한 감상
이것은 과거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가 남긴 마지막 문자 메시지다.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다. 그것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그리고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순간, 한 가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바로 위와 같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향한 진심이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공중전화’라는 중심 소재 역시 바로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만약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려 삶에서 밀려난 이들이 최후의 진심을 남긴다면,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소중한 이에게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심리부검센터>의 운영자 지안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특별한 공중전화로 세상을 떠난 자들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죽음’이란 이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그 메시지를 통해 비로소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이 비단 <심리부검센터>의 고객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운영자인 지안 역시 때가 되면 공중전화 부스에 서서 이제는 실재하지 않는 전화번호를 누른 후, 아버지가 남긴 목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곤 한다. 이 장면은 지안 역시 트라우마― 즉,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껏 흠 하나 없이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의 작가도, 주인공 지안도 들여다보면 모두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 지내는 이들이다. 나 역시 <심리부검센터>의 고객들처럼 자살 유가족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아 왔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가을이었을 거다. 나 역시 지안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아버지와 기존에 살던 집보다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덕분에 상실감과 우울함을 평생 끌어안고 사는 존재로 자랐다.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아버지께서는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탓인지 환갑도 되시기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중증 언어장애를 얻으셨다. 결국 의사소통능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지금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고 계신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지안이 고객들에게 안내하는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은……. 지금은 어린 시절처럼 나를 안아주시기엔 너무나 기력이 쇠하여버린 내 아버지. 그래서 더욱 칠흑과도 같은 수렁에 빠져가는 나. 만약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 나를 안아주시며 해주셨던 그 말을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통해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걱정하지 마, 아빠 아직 젊잖아.”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하다. 말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건강했던 시절, 내게 건네는 위로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 이처럼 이 책은 특별한 소재를 사용하여 독자의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상처까지도 한 번 더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지안은 <심리부검센터>를 운영하며 나와 같은 독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고객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자살 유가족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직원 상우와 아픔을 공유하며 자신의 괴로움도 치유해 가는 모습은 ‘성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리스트컷으로 사망했던 딸 아영의 엄마 정유화 편이었다. 나 역시 과거 20대 초반, 아영과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관점이 ‘심리부검’에 있는 만큼 정유화 편에서 유가족의 입장을 주로 다루었지만, 나는 아영과 유사한 인물이었기에 죽기보다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냈을 첫째 딸의 고통에 더욱 공감했다. 물론 자해의 이유는 달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 비밀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진심을 생전에 털어놓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유화, 다영과 마찬가지로 내가 미처 마음 쓰지 못했던 내 주위의 인물들― 그러니까 남편, 아이, 친구들과 같은 이들이 나를 배려하고 사랑해 주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와 같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과 함께함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고마워요, 모두.
이 책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공중전화’라는 신비로운 소재에 주인공이 계속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지안은 공중전화와의 결별을 다짐한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남긴 목소리를 들으러 가지 않고, 아버지의 죽음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리라 마음먹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지닌 트라우마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어머니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성장’을 뛰어넘어 ‘화해’의 단계에 이르는 부분이다. 긴 세월, 지훈․지안 남매를 찾지 않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은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으리라.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야만 내면의 깊숙한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음을,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신과의 화해임을 지안은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날 버리고 떠난 어머니와 소식이 닿지 않는다. 아니, 소식이 닿는다고 해도 과연 지안처럼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을지― 사실 의문이다. 언어를 잃어버린 아버지를 연민하고, 여전히 어머니를 외면한 채 살아가는 나도 지안처럼 언젠가 모든 트라우마에서 훌훌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상처를 직시하고, 애도하고, 어루만지고, 이를 통해 성장하고, 화해하는 삶. 안타깝지만 그날이 오려면 나에겐 아직 공중전화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매일 책을 읽고, 사색하며, 진심을 담아 글을 쓴다. 지안처럼 나의 공중전화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