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올 때 몇 가지 양보할 수 없는 나의 루틴에 대해 아들, 며느리에게 이야기했었다. 그 하나는 아침마다 바나나 블루베리 스무디를 마시기 위해 블렌더를 챙겨 가야 한다는 것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수영(혹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해 왔던 루틴이라 이게 무너지면 생활전반이 무너질 것 같아 웬만하면 지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미국에 오기 전부터 수영장을 찾아봤다. 다행히 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YMCA가 있었고 손주들이 등교를 하면서 나도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도 사회체육센터들이 많이 있지만 미국은 YMCA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학교 방과 후 체육활동을 YMCA가 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고 어른들의 경우도 젊은 층을 위한 킥복싱같이 힘든 운동부터 노인들을 위한 휠체어 요가 휠체어 수영까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저렴한 가격에 운동을 할 수 있다.
단디야댄스 홍보물
내가 수영을 하는 동안 며느리는 줌바나 유산소트레이닝을 하는데 발리우드피트니스 클래스가 있는데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며 슬며시 나를 꼬신다. 인도댄스? 발리우드? 말만 들어도 흥미가 진진하다. 인도 여행을 할 때 보았던 인도 여인들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떠오르며 발리우드 여배우처럼 춤을 추는 내 모습이 슬쩍 머릿속을 지나간다.
인도댄스 첫날. 준비 운동 전에 두 손을 모아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하니 깜짝 놀란다. 요가를 배울 때 늘 하던 인사고 인도 가서도 많이 쓰던 인사말인데 미국에서는 “나마스떼"라는 인사를 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다만 인도댄스에 음악은 인도 음악이 맞았다. 고전 인도음악부터 최신 드라마, 영화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다 보면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강사는 각 음악마다 가사에 담긴 스토리까지 이야기해 주는데 한 시간 동안 발리우드 영화 몇 편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위협적으로, 교태스럽게, 사랑스럽게 혹은 귀엽게, 전사처럼 강하게, 무희처럼 부드럽게… 손목과 발목, 손가락과 목의 꺾임이 예사롭지 않지만 마음은 발리우드이되 몸은 발연기라 거의 흉내만 내다가 끝나는 기분이다. 역시 나는 수영이 맞는 모양이다
발리우드 피트니스
수업을 마치니 선생님이 새로운 수강생인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나마스떼"라고 인사해 줘서 놀랍고 반가웠다고 한다.
짧은 영어로 인도에 여행을 다녀왔고 인도의 전통과 문화, 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무척 기뻐한다. 그리고 10월 15일에는 단디야댄스 특별 수업을 하니 꼭 참석하란다. 특별히 예쁜 옷을 입고 장신구도 달고 오라는데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살짝 걱정은 되지만 이 또한 자주 해 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일 것 같아 참석하겠다 약속을 했다.
“뭐 어려운 일이겠어? 그냥 놀다 오면 되겠지.”
단디야댄스 특별 수업날. 선생님은 평소와 달리 전통의상을 차려입었다. 두세 명의 회원도 의상을 준비한 듯 보이고 나와 며느리는 원피스를 입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원은 늘 입던 대로 운동복을 입고 왔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어색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즐거운 인도 댄스 수업
음악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이 단디야라고 하는 막대기를 나누어 주고 간단한 춤 동작을 알려준다. 강강술래의 인도버전인가? 소고 대신 단디야를 치면서 강강술래를 한다고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동작은 간단하지만 한 바퀴 두 바퀴 계속 한쪽으로 돌다 보니 어지럽다. 그렇게 20분, 30분 돌고 돌다 보니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 어지럽다고 하니 미치도록 돌아야 한단다. 박자는 점점 더 빨라지고 땀이 나기 시작한다.
마치 투르키에 전통춤 수피댄스처럼 접신이라도 할 듯 돌고 돌고 또 돌기를 한 시간 기절직전의 어지러움 속에 수업이 끝났다. 참가한 수강생들은 처음 느낀 이색적인 경험에 모두 즐겁고 신기한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인도에서는 이렇게 돌고 도는 단디야 댄스를 밤새도록 춘단다.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온몸에서 땀이 나는 걸 보니 운동량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즐겁고 이색적인 인도댄스. 한국에 돌아가는 즉시 잊어버리겠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이라도 열심히 즐겨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