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가방을 열어보던 며느리가 안내장을 들어 보이며 신기한 듯 말한다. 학교에서 핼러윈 행사를 한다고? 한국에서는 없던 일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도무지 핼러윈이 무슨 의미 있는 날이길래 학교에서 안내장까지 보내며 행사를 한다는 건지 궁금했다.
찾아보니 핼러윈은 캘트족의 축제였으며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미국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들은 10월 31일을 여름이 끝나는 날이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져 저승의 악령들이 이승으로 돌아오는 날로 여겼으며 이때 악령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귀신처럼 변장을 하고 음식을 바치며 불을 피우는 의식을 해 왔다.
보자기를 재활용한 핼러윈 장식
그 풍습이 지금에 와서 다양한 코스튬으로 변형이 되었고 중세 유럽의 ‘가난한 영혼의 날’에서 기원한 사탕 나누어주기 풍습이 더해져 아이들이 즐기는 사탕 받기 놀이 ‘trick or treat’(트릭 오어 트릿)이 되었다는 설이다.
그 후로 미국의 사탕산업이 어쩌고 상업주의가 저쩌고 하는 골치 아픈 부분까지는 내 알바 아닌데 아무튼 미국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을 생일, 핼러윈, 크리스마스로 꼽는 다니 미국에 살면서 모른 척 지나갈 수 없는 일. 우리도 핼러윈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기로 했다.
베트맨과 스파이더맨
우선 이삿집에 딸려온 커다란 흰 보자기를 재활용해 유령을 만들어 차고와 문에 걸고 가장 저렴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달러트리’(천 원 샵과 유사한 상점)와 ‘굿윌스토어’(한국과 같은 재활용 스토어)를 털어 코스튬 의상을 준비했다.
미국 사람들은 이날을 위해 큰돈을 들여 코스튬을 구입하거나 직접 독특한 의상을 만들어 입는다지만 우리는 한번 입고 말 의상에 큰돈을 쓰는 것에 당연히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학교 행사시간도 저녁 무렵이니 흉내만 내도 어둠에 묻힐 터.
아이들은 사탕을 받는 날이지만 어른들은 사탕을 줘야 하는 날이기도 하니 사탕과 초콜릿등 단 것들도 준비했다. 그리고 행사 당일 핼러윈 첫 경험 가족인 두 손주들과 아들 며느리 그리고 할머니까지 다섯 가족의 소심한(?) 외출이 시작됐다.
어색하지만 즐거워
손주는 스파이더맨, 손녀는 백설공주, 할머니는 마녀, 며느리는 고양이, 아들은 크리스마스의 유령으로 코스튬을 하고 보니 아이들은 귀엽고 예쁘지만 어른들의 모습은 기괴 그 자체라 서로의 모습이 어찌나 부끄럽고 웃긴지 배꼽을 잡고 한바탕을 웃었다. 핼러윈은 이렇게 가족이 한바탕 웃고 시작하는 것인 모양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저마다 무섭고 예쁘고 귀엽고 기괴한 차림을 자랑하며 사탕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도 집에서 서로를 볼 때는 부끄럽고 어색했는데 다들 코스튬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평상복차림으로 왔더라면 촌스러울 뻔했지 싶어 마음이 놓인다. 손주들은 신이 나서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며 어느새 그들 사이를 누비고 있다.
신이난 손주
‘제네 영어 못하는 애들 맞아?’
차량 트렁크에 사탕 박스를 준비한 부모들은 진심을 다해 차량을 꾸미고 사탕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을 환영하며 준비한 사탕을 나누어 준다.
사탕을 받는 아이들도 사탕을 주는 어른들도 이보다 즐거울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핼러윈을 즐긴다. 어느새 나 역시 동화 속이나 어린이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온 캐릭터가 된 듯 현실의 나를 잊고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즐기고 있다.
미니언스와 백설공주
다음날은 토요일. 우리 가족이 다니는 YMCA에서 핼러윈 행사를 가 열리는 날이다. 지난해에도 1000 가정이 넘게 참여해 핼러윈을 즐겼다더니 오픈 시간인 오후 5시 30분에 벌써 줄을 길게 서있다. 근처 장로교회와 함께 진행한 핼러윈 행사는 아기자기하고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이 반기독교적이라고 해서 교회에서는 기피하는 행사인데 미국에 오니 실제로 많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위한 핼러윈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교회 할머니가 사탕을 주신다
종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귀엽게 코스튬을 한 이웃의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나누어 주며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 번 더 보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코스튬을 하고 사탕을 나누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표정도 아이들처럼 밝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아이들 사랑은 못 말리는 모양이다.
Y의 핼러윈 파티에서 우리 아이들은 전혀 모르는 이웃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탕도 받고 초콜릿도 받고 장난감과 책들도 받았다. 물론 예쁘다, 멋지다, 사랑스럽다, 귀엽다는 칭찬도 너무 많이 받았다. 손주들은 누구도 아닌 그냥 아이라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핼러윈이 미국의 어린이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어른들이 아이들의 꿈과 환상, 장난과 놀이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함께 해주는 날이니 어린이날과 다르지 않을 듯도 싶다. 이렇게 핼러윈 놀이를 즐기며 자란 엄마 아빠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똑같은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 주며 동시에 자신들도 잠시 잊고 있던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손녀도 할머니도 즐거웠던 핼러윈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국 문화 핼러윈. 솔직히 한국에서는 핼러윈에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어린이날도 있고 우리 명절인 추석이나 단오나 정월대보름도 있는데 굳이 미국 귀신의 날에 왜 한국 아이들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나 싶어서 학원이나 영어유치원등에서 핼러윈을 한다고 하면 편치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이나 손주들도 한국에서 핼러윈을 즐겨 본 경험이 없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 아닌가. 더구나 이렇게 무해한 심지어 아이들에게 꿈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행사라면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을 듯하다. 그러니 모두 “해피 핼러윈~~”
이번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시애틀센터에서 멕시코 명절인 ‘망자의 날' 행사를 진행한단다. 영화 <코코>를 통해 알게 된 바로 그 ‘죽은 자의 날’이다. 미국 귀신의 날인 핼러윈을 보았으니 멕시코 귀신의 날도 궁금하다. 리멤버미~ 를 부르는 미구엘을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