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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13. 2024

60대 중반에 숨 멎는 에로티시즘과 마주하다

뼈 마른 에로티시즘 에곤 실레를 추앙하며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에서 에곤실레까지>

젊은 시절에는 클림트를 좋아했었다.  그의 연인이며 뮤즈인 에밀리 플뢰게에게 바치는 사랑과 찬사, 탄식과 열망의 붓질은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세기를 건너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 마저 사로잡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30, 40대 나의 온라인 프로필에 주로 사용되었던 이미지는 클림트였다. 특별히 풍만한 에로티시즘의 ‘다나에’와 여성의 일생을 한 화폭에 그려낸 ‘여인의 세 단계’(The tree age of women)를 좋아했는데 ‘여인의 세 단계’중 딸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 부분을 잘라 지금까지 개인블로그의 프로필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여인의 세 단계 -구스타프클림트 작

클림트를 말할 때 에곤실레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미 거장이었던 클림트는 자신보다 24살 어린 에곤을 제자로 받아주기보다는 동료로 인정했다. 가르치는 대신 예술적 동지이자 친구로 동행했던 것이다. 클림트의 임종 자리에도 에곤이 있었다.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몽상적인 클림트와는 달리 에곤실레의 작품은 다소 기괴하고 비틀어졌으며 직설적이고 통렬하다. 턱을  살짝 눈을 깔아 다소 거만한 듯 려보는 그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관객들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이다.


에곤실레 자화상

어쩐지 다소 불편한 에곤실레를 사랑하게 된 건 40대가 지나서였다. 우연히 TV에 소개된 <이온플럭스>라는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작법과 스토리 그리고 대담한 표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전사 이온플럭스는 깡마른 체형에 가늘고 긴팔다리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마치 에곤실레가 그린 여성들이 시대를 넘어와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듯 환상적이었다. 이온플럭스 작가 피터정은 그의 인터뷰에서  에곤실레의 그림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의 내 심적인 상황이 그래서였을까. 황금으로 빛나는 클림트보다 마치 각혈할 듯 뼈 마른 에곤실레의 그림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린 예수그리스도처럼 보리수나무 아래서 열반에 들던 고타마시타르타처럼 인간의 가장 추하고 처절한 모습 그대로를 숨기지 않는 그의 예술세계를 사랑하게 되었고 짧고 불우했던 스물여덟 해 그의 삶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속의 연인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보는 이 - 에곤실레

7년 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오스트리아 빈을 지날 기회가 있었다. 어쩌면 레오폴트 미술관을 들러 에곤실레와 클림트를 영접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내심 설렜지만 안타깝게도 일정이 허락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몰래 사랑하고 지켜보던 그 남자를 만날 기회였지만 쉽게 이어지지 않아 더욱 애절했다. 만 날듯 만나 지지 않는 한 남자의 뒷모습만 바라보기를 얼마였는지…


드디어 마침내 나에게도 그를 만날 기회가 왔다. 용산국립중앙박물관에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에서 에곤실레까지>이라는 주제의 틀별전을 연다는 것이다. 얼리버드 예매는 이미 마감되었고 일반예매를 통해 티켓을 구매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속도전으로 표를 예매했다. 예매만 했는데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이 몽골몽골 해진다. 짝사랑하는 남자를 몰래 만나러 가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자화상- 에곤실레

비로소 연예인 특히 가수들을 따라다니며 응원하는 중장년 팬클럽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에곤실레가 이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나도 그의 전시회를 따라다니고 그의 강연에 줄을 설 것이며 그의 캐릭터로 만든 굿즈들로 온몸을 치장했을 것 같다. 그렇게 그를 찬양하고 그를 열망하며 그를 추앙했을 것이다.  


세종시에서 2시간 반을 달려가 드디어 그 남자를 만났다. 수많은 다른 작품들을 지나 드디어 그 앞에 서니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주변에 아무도 없고 나와 그 단둘만 마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하지만 그는 도무지 곁을 주지 않는다. 특유의 차갑고 냉소적인 눈으로 가만히 나를, 내 속을 응시할 뿐이다. 깊고 서늘한 눈은 가혹한 현실과 핍절한 내면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다그쳐 묻는 듯하다.


파란스타킹을 신고 몸을 앞으로 숙인 누드- 에곤실레

 코트 속에 감추어진 비만한 살들과 늘어진 신경들이 부끄러워 숨는 듯하다. 기름진 내 볼에 그의 거칠고 긴 손가락이 스치니 머릿 끝부터 발끝까지 얼음이 흘러내리는 듯한 소름이 돋는다. 확신에 차고 간결한 연필과 잉크 드로잉들은 여전히 살아서 그 길고 예리한 팬 끝으로 나의 심장을 찌른다.


어쩌면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60 중반의 고개를 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 잠시 시간이 멈추었을까. 밀려오는 관람객들의 어깨가 얼음 땡을 해준다. 밀려드는 관객들의 동선을 따라 스르르 전시실을 빠져나오니 얼음처럼 차가운 겨울 공기가 코끝에 쨍하다.    


누워있는 여성 - 에곤실레

나의 뼈 마른 젊은 연인, 얼음처럼 차가운 에로티시즘, 중년의 나도 장년의 나도 노년의 나 역시도 사랑하게 될 스물여덟 아름다운 청년화가 에곤실레. 사랑하는 그를 두고 돌아선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내 젊은 사랑과 예술과 환상과 그리움들도 그에게 맡기고 돌아선다.


 박절했던 그의 운명과 신산했던 그의 삶에 작은 꽃 한 송이를 바치며 추앙하고 또 추앙하며 돌아선다. 그의 스승 클림트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고대하며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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