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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Nov 14. 2024

새로운 만남과 마지막 날의 추억.

이제 크레모나로 가야지.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자, 현진 씨와 나는 조금 더 로컬 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매일 빵, 파니니, 피자... 만먹다 보니 맛있어도 한국 음식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이 그리워졌다. 아니 뜨근한 국물에 김치 한 점 올려서 먹고 싶을걸 보니 한식이 그리운 게 분명하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싶은데 한인 민박은 취사가 안되니 크레모나에서 집만 구하면 바로 끓여 먹은 생각이다.

밖에서 외식을 하면 비용도 부담이고... 해서

우리가 결정한 곳은 로마 시내에 있는 까르푸 마트. 로마 현지의 마트에서 다양한 음료수와 간식, 그리고 여러 가지 술을 살 수 있겠다는 기대에, 현진 씨와 함께 마트를 향해 걸었다.




    와...




마트에 들어서니 다양한 신선한 과일과 치즈, 각종 주류들이 가득했다. 이곳의 분위기와 향기는 한국 마트와는 또 달라서 낯설면서도 새로웠다. 특히 야채가 눈에 띄었다. 가지가 우리나라 가지의 3배? 정도의 크기여서 깜짝 놀랐다. 뭘 먹고 컸길래...

한국에서 못 보던 야채들도 많고 샐러드도 정말이지 무슨 립 컬랙션처럼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민박집주인분 말이 떠올라 요구르트 코너로 갔는데 정말이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진짜로 이탈리아 와서 최대의 고민거리였다. 가격이 너무 저렴하니 막 담고 싶은데 우리는 다음날 로마를 떠나니 진정을 하고 5개를 담았다.(진정되어서 담은 게 이 정도;) 앞으로 이탈리아에 살면서 부담 없이 요구르트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기뻤다. 요구르트 옆에 쿰쿰한 냄새가 나서 보니 이탈리아의 생햄인 살라미와 프로슈토 그 외 다른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겉으로 볼 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 냄새가... 나에게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여서 그런지 거부감이 들었다. 치즈도 마찬가지였다. 맛보고 싶은데 냄새가... 눈은 먹고 싶다 하고 코는 먹으면 안 될 거 같다고 하고... 아.... 고민 끝에 가장 무난해 보이는 걸로 하나씩 골랐다.






그다음에 음료수와 간식을 하나씩 카트에 담기 시작했다. 특히 와인 코너에 가서 로마 현지 와인도 구경했는데, 진열대에 놓인 수많은 병들 중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진짜 어려웠다. 그렇지만 너무 신났다.  사실 나는 진정한 애주가다. 술을 취하려고 마시기보다는 맛을 즐긴다. 와인은 맛있는 술 중에 하나니 여기 살면서 하나씩 다 마셔볼 생각이다.  고심 끝에 로제와 피노 그리지오 한 병을 골라 카트에 넣고는 저녁에 민박집 사람들과 신나게 놀 생각에 현진 씨와 웃었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멋지게 보내기 위한 준비가 끝난 느낌이었다.






마트에서 돌아와 숙소에서 저녁 준비를 마친 후, 우리는 한인 민박에 머무르고 있던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저녁 파티를 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순간에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일상이나 여행 중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우리는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이기도 하면서 한층 더 가깝게 느껴졌다.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여행의 낭만을 만끽하니, 이탈리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맥주와 와인을 마신 탓인지 밤이 깊어질수록 알딸딸한 기분에 더욱 자유롭게 웃고 떠들었고, 나는 계속 술을 들이켰다. 얼마나 마신건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마셨다. 잠은 언제 들었는지도...; 하하.







다음 날 아침, 현진 씨가 다급하게 나를 깨우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다. 전날 마신 술 덕분에 꽤나 고생스러운 아침이었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 오바이트가 나오는데 크레모나로 가는 기차시간을 맞춰야 해서 오바이트를 하면서 머리를 감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로마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정리했다. 짐을 챙기고 준비를 마친 뒤, 현진 씨와 함께 크레모나로 향하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해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불편했지만, 그 역시 여행의 일부라며 현진 씨와 웃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어제  정말 오랜만에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대가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기차에 올라서 창가에 앉자, 로마의 풍경이 서서히 뒤로 물러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속에는 다양한 추억들이 가득했다. 콜로세움, 바티칸, 현지의 카페와 까르푸 마트, 그리고 낯선 이들과의 저녁 파티까지—로마는 그 어느 곳보다도 나에게 다채롭고 깊이 있는 추억을 안겨주었다. 이제 크레모나로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앞으로의 여정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크레모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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