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USED DOOR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는 날이야.
내가 아무 힘을 들이지 않아도 나를 들어올려주는 기계가.’
내가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지하철 안에서 깜빡 잠에 들었다.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번역 : 신소울역‘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 바깥으로 나가 뒤를 돌아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다른 역 이름 위에 이번 역이라는 빨간 표시가 붙어있었다.
‘이번역 : 소울역’
다시 출입문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번역 : 신소울역’
나는 혼란스러웠다.
다시 한 번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이제는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이 곳은 신소울역인가, 소울역인가.
나는 이 곳에서 내려야하는가, 지하철에 다시 올라타야 하는가.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열차는 나를 싣고 미지의 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도착한 다음 역명은 ‘다음 역’이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다음 역’의 승강장에서 두리번거렸다.
나 이외에 내리고 타는 다른 승객은 없었다.
승강장에 있는 작은 문이 눈에 띄었다.
그 위에는 ‘사용되지 않는 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문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안에 들어가서 나는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그 안은 기계실과 같았다.
작업자 한 명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온겁니까?”
그가 말했다.
“여긴 뭐하는 곳이죠?”
내가 물었다.
“여기는 아직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것들을 조작하는 곳입니다.”
그가 한 화면을 가리켰다.
“예를 들어, 이 장치는 지하철만 타면 사람들의 기운을 쫙 빼는 기술을 운용합니다. 그 심리는 에어컨 바람에 실려 뿜어지고 있지요.”
그가 말했다.
“에어컨 바람에 그런게 섞여있다면, 공기질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텐데요?”
내가 말했다.
“이건 아직 과학적으로 구현되지 않은 기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간단합니다.
그저 장치 안에 그 기능을 말로 잘 써넣으면 되니까요.”
화면에는 ‘에어컨을 통해 분사되는 저기압 장치’라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이런 장치를 가동하는 이유가 뭐죠?”
내가 물었다.
“그건… 저희는 위에서 내려온 공문대로 할 뿐입니다.”
그가 내게 한 공문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매일 아침, 사람들 기운을 쫙 빼놓을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밑에는 ‘특히, 월요일 아침에는 최고 세기로 운용 바람.’이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그나저나, 당신은 제 말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 곳에 들어온 겁니까?
여기는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가동 중인데요,
게다가 이 곳이 위치한 역도 우연이 세 번 겹쳐야지만 올 수 있는 곳이란 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오늘 제가 한 일이라고는, 정차한 열차와 승강장 사이를 세 번 반복한게 다입니다.”
내가 말했다.
“흠.. 도저히 상식상 할 수 없는 짓을 저질러버렸군요.
당신을 태울 열차를 준비시키라고 하겠습니다.
평소에는 저희가 퇴근하는 용도지만 말이죠.
그리고 당신은 철도법에 따라 이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부에 진지하게 알릴 수 없습니다.”
그가 엄격히 말했다.
“그렇다면 소설로는요?”
내가 물었다.
“소설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곳이 위치한 역 두 개 이름은 가명을 쓰도록 하세요.”
그가 말했다.
작은 문 밖으로 나가, 조금 기다리니 열차가 도착했다.
열차 안에는 손님들이 타고 있었지만, 열차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했다.
나를 태운 열차는 조용히 역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 가끔씩 열차 안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사용되지 않는 문’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말
일상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세 번의 우연이 겹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그곳처럼,
상상은 우리가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