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히버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I Nov 05. 2024

악마봉인술

DEMON SEALING - 단편집 미히버스(MIHVERSE) 수록작

“세상은 지옥입니다.


악마들 천지입니다.


회사의 상사는 마치 발톱을 세운 채, 나를 짓밟고 올라서려 합니다.


지하철 속,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는 할머니들은 공중도덕 따위 잊은 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나이프처럼 귀를 후벼 팝니다.


사람이 많은 퇴근길에 굳이 그 부피가 큰 여행 가방을 지하철에 들고 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들은 오래된 먼지와 습기가 섞인 냄새를 풍기며, 음침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핍니다.


그들의 헛기침은 어둠 속에서 뻗어 나와 제 마음을 긁어내립니다.


버스로 갈아타면, 운전기사들은 교통 체증 속에서 거칠게 욕을 뱉으며,


가속과 감속을 반복해, 내 머리를 흔들어댑니다.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립니다.


시끄럽고 무례한 소리들이 제 정신을 잠식해 옵니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음악을 틀어봐도,


제 귀를 가득 채우는 건 어설픈 자랑과 천박한 선율뿐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들떠서 나를 졸라댑니다.


아내와의 대화는 바람에 날린 먼지처럼 흩어진 지 오래입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래서, 원하는게 뭡니까?“


“악마 같은 인간이 사회에서 싸그리 사라지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내 앞에 나타났던 모든 자들이 사라진다면,


이곳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질 겁니다.”


“소원을 들어드리지요.”


검은 방에는 오직 나와 그가 있었다.


그는 전설로만 전해지던 악마 봉인술사.


어둠의 속삭임을 들을 줄 아는 자였다.


벽에서 검은 밧줄이 뻗어 나와, 나를 칭칭 휘감아 묶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겁게 울려 퍼졌다.


“상사가 당신보다 더 큰 짐을 짊어졌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린 소녀처럼 들뜬 할머니들의 기쁨이 보이지 않는다면,


평생을 헌신한 일터에서 잊혀져, 조심스럽게 사회에 나오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싣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막힌 도로 위에서 책임을 다하려 애쓰는 운전기사의 땀이 보이지 않는다면,


음악가들이 밤을 새우며 담아낸 영혼의 진동이 당신에게 닿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무한한 호기심과 그 설렘이 보이지 않는다면,


아내가 당신에게 건네고 싶었던 그 작은 말들의 무게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당신이 악마입니다.”



작가의 말


우리는 일상 속에서 때때로 세상이 잔인하고 무정하다고 느끼며 모든 것이 나를 향해 적대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도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들의 삶에도 고충과 소망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어둠 속에 잠긴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눈을 돌려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에 깃든 어두운 편견과 오해를 다시금 성찰하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 흑백요리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