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히버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I Nov 03. 2024

한강... 흑백요리사...

RESTORATION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한강진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휴대폰 갤러리를 넘기다가 흑백요리사진을 발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요리학원을 다닐 때 사진이었다.


’참 추억이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걸 왜 흑백으로 찍었지?‘였다.


금방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휴대폰 제조사 CEO인 ‘한 쿡’이 최신 업데이트 노트를 설명한 영상을 보고나서 였다.


“이번 OS 19에서는 추억과 기억을 모티브로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갤러리에서 빛 바랜 추억들은 빛 바랜 사진으로 표시가 됩니다.


빛 바랜 추억을 발견했다면 길게 눌러보세요.


색이 다시 채워질 겁니다.“


영상을 멈추고, 갤러리에 있는 흑백요리사진을 길게 눌러보았다.


그러자 색깔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갤러리를 넘겨가며 빛 바랜 추억들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갔다.


수영장에서의 기억들,


놀이공원에서의 기억들 등등.


동물원에서의 기억은 그보다 조금 더 빛이 바래있어서 복구하는데 1~2초 더 길게 누르고 있어야만 했다.


여러 추억들이 다시 색깔을 되찾았다.


갤러리를 넘겨가다보니 새하얀 사진이 있었다.


‘얼마나 빛이 바랬으면, 검은색도 날라가버렸네.’


나는 사진을 꾹 눌러보았다.


20초 정도 누르고 있자 사진이 복구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사진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본가 가서 사진 같이 찍자고 해야겠어.‘


내가 생각했다.


일요일, 본가에 가니 아버지가 갤러리를 열중해서 넘겨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휴대폰 화면을 슬쩍 쳐다보았다.


화면이 그의 어린 시절 졸업 앨범 사진에서 멈추었다.


그가 화면을 길게 누르기 시작했다.


“아빠, 애초에 찍기를 흑백카메라로 찍었잖아. 그건 아무리 길게 눌러도 흑백사진이지.”


그러나 그 때, 그의 흑백사진에 색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야 AI 알고리즘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고?”


이제 그 사진이 보다 다채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빠는 사진을 여전히 꾹 누르고 있었다.


“네 동생이 이번 업데이트의 진수는 60초 뒤에 공개된다고 하더라.”


아빠가 말했다.


60초가 지나자, 이제 사진들 속 인물들이 생동감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할아버지,


나이가 든 아버지의 가족들이


젊은 그 때로,


작은 휴대폰 화면 안에서 웃으며 서로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알고리즘은 참 놀라워.”


내가 생각했다.



작가의 말


기억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가끔은 빛이 바랜 채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기술은 이제 기억에 색을 입히고, 심지어 움직임을 부여하며 그때 그 순간을 생생하게 다시 느끼게 합니다.


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기억들이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금 소중히 되새길 가치가 있는 삶의 조각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란후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