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89년 지구상에 몇 안 남은 12개의 인간 거주 구역 섹터 중 하나인 섹터-7-한반도의 제3구역, 이곳의 하늘은 늘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다. 기온은 농작물 생산과 인간의 쾌적함을 위해 22도씨로 사시사철 유지되고 있다. 더 이상의 자연재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은 거대한 돔으로 둘러싸인 인공지능 스마트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늘 쾌적하고 안전하다.
이미 ASI(초인공지능)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만큼 지구의 모든 것을 이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초거대 슈퍼인공지능 ‘아테나 갓’의 최고 역작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이리도 특별하게 만들고 지원하는 이유는 아테나 갓의 출발점인 인류최초의 AGI(범인공지능) ‘아테나’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국이 낳은 천재과학자 한서진 박사가 그의 유일한 혈육인 손녀 한소율과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흔을 갓 넘긴 한 박사의 호흡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가쁘게 느껴진다. 요즘 90대의 사람들은 개인별 격차가 있으나 대부분 칠십여 년 전, 그러니까 한 박사가 이십 대였던 2000년대의 육십 대와 비슷한 활동성과 건강함을 가진다. 모두 아테나가 발전시킨 의학, 약학과 의료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몇십 년을 늘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려 온 한 박사의 건강은 아테나가 제공하는 최첨단 의료 혜택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한 박사의 호흡이 가빠지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 막 안전한 돔을 벗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돔의 안과 밖의 풍경은 공포스러울 만큼 대조적이다. 돔 밖의 풍경은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듯이 낮은 시선에서 보면 폐허가 된 도시 풍경만이 보인다. 돔 밖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살거나 일하지 않는 텅 빈 건물들과 방치된 차량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하지만 마치 항공사진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온통 태양광 패널들로 뒤덮여 거대한 푸른 하늘빛과 기계적 회색이 엉켜서 빛을 반사하는 외형을 가진 여러 마리의 로봇 짐승들이 번쩍거리는 광선을 쏘며 날뛰면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선에 따라 햇빛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번쩍거림만을 보고 있으면 이제 더 이상 지구에는 생명체는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섬뜩한 생각이 들 정도로 지구의 표면 대부분이 이런 모습으로 뒤덮여 버렸다.
한 박사와 손녀 소율, 지금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함께 돔 외부에 있는 한 박사의 개인 연구소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 암반 속에 일부러 숨겨 놓은 듯이 바위 동굴 속에 위치한 개인 연구소, 이것도 한 박사가 누리는 특권 중의 하나이다. 그의 연구소가 지니는 진짜 특권은 아테나의 모든 감시망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돔 안에서는 인간들의 모든 대화를 포함한 일거수일투족이 합법적인 검열과 감시를 당하고 있다. 건강, 보안, 안전 등의 이유로 아테나는 돔 안의 모든 이들의 움직임과 대화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아테나는 초인공지능이 된 후에도 창조주인 한 박사와 지키기로 약속한 단 하나 남은 절대 원칙을 적용해 이곳 한 박사의 개인 연구소는 모든 것에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한 박사는 일부러 자신의 개인 연구소가 있는 바위동굴에서 1km 가까이 떨어진 공용 주차장에 타고 온 드론을 착륙시켰다.
“우리 강아지, 할애비랑 오랜만에 걸으면서 흙 좀 밟아 볼까?”
한 박사가 살가운 말투로 손녀 소율에게 말했다.
“네, 좋아요. 할아버지. 가는 길에 지난번처럼 들꽃이 있으면 꺾어가도 되죠? 그런데, 할아버지 무릎은 괜찮으세요?”
“오냐, 걱정 마라. 자 그럼 가볼까.”
이제는 산길이라 부르기는 어색한 잘 닦여진 도로를 둘은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소율은 혹시나 무릎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괜찮은지 일부러 수다를 떠는 척하며 아주 자주 그의 표정을 살피며 반발 자욱 앞서 걷고 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 자란 탓일까, 요즘 청년들과 다르게 배려심이 깊은 사람으로 자라났다.
소율은 올해 26살이다. 6살 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자랐다. 한 박사가 마흔이 넘어 늦게 본 아들이 20여 년 전 원인불명의 교통사고로 며느리와 함께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 박사는 그 사고가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교통사고는 백만 분의 일의 확률로 일어나는 희귀한 일이 되었을 정도로 자율주행은 완벽해져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이상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또 사고가 나더라도 경미한 부상에 그치도록 안전장치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런데 당시 세계 곳곳에서 한 박사 아들 내외의 죽음과 유사한 원인 불명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아들을 잃은 슬픔에 깊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 못했던 것이지만 나중에서야 그 죽음들이 다분히 의도적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죽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사회 운영 결정권 전체를 인공지능에게 위임하는 것을 반대하는 중심인물들 또는 그들의 가족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건들을 인공지능이 직접 일으키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아테나의 정보를 이용해 사건이 일어났음이 분명함으로, 그 사건 이후 인공지능의 감시를 피해 한 박사는 아테나가 접근할 수 없는 아날로그에 가까운 시스템을 자신의 개인 연구소 안에 구축해 왔다. 그런 이유로 한 박사의 개인 연구소는 천연 암반동굴 속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시스템은 외부 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는다.
한 박사의 설계로 연구소 입구 이백여 미터는 비포장 흙길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이제 지구에서 찾아보기 힘든 들꽃과 야생수들이 제법 많이 들어서 있다. 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한 박사는 걸음을 멈추더니 길옆에 바위를 자신의 지팡이로 마치 발을 헛디뎌서 건드리듯 툭 건드렸다. 그러자 그 바위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에서 두 사람의 주위로 번쩍하는 빛이 발사되었다. 그러자 이내 두 사람이 지니고 있던 모든 전자기기들이 일제히 작동을 멈추었다.
“어머,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소율이 놀라서 급히 한 박사를 부축하며 물었다.
“오냐 할애비는 괜찮아, 우리 강아지가 놀랐구나. 어떠냐 이 할애비 연기 실력이… 하하… 자 어여 들어가자. 오늘은 이 할애비가 너에게 해 줄 말이 많구나.” 장난기 어린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EMP 스위치를 자연스럽게 켜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설명하는 듯했다.
“네,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연기자이신줄… 하하하”
명랑한 말투로 대답하며 소율이 한 박사의 팔을 더 꽈악 끌어 부축하며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소율은 할아버지의 휘청임이 연기도 장난도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동굴의 육중한 철문이 둔탁한 소음을 내며 열렸다. 그 안은 바깥세상의 매끄러운 유선형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투박하고 거친 기계 장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까지 닿을 듯 쌓여 있는 서버 랙 사이로, 수천 가닥의 전선이 마치 핏줄처럼 얽혀 중앙의 한 장치를 향해 뻗어 있었다. 그것은 아테나가 설계한 완벽한 조형미와는 대조적인 인간의 고뇌와 집착이 엉겨 붙은 듯한 기괴한 조형물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것이 내가 평생을 바쳐온 마지막 과업이다. '템포럴 링크(Temporal Link)', 즉 시간여행 통신기다."
한 박사의 목소리에는 묘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소율은 기계가 뿜어내는 웅웅 거리는 진동을 느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한 박사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떨리는 손으로 기계의 차가운 금속 표면을 쓰다듬었다.
"소율아, 나는 이 장치를 통해 물리적인 시간 여행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해. 하지만 데이터와 정보의 파동을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쏘아 보내는 것, 즉 정보의 전송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단다. 나는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던 그 순간들로 경고를 보내려 했단다."
한 박사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연구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디지털 데이터가 아닌, 부분 부분 누렇게 색 바랜 종이 노트 수백 권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것은 한 박사가 평생 손으로 써 내려간 일기이자, 아테나의 감시를 피해 기록한 인류 멸망의 다큐시나리오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굶주림도, 전쟁도, 질병도 없다. 아테나는 완벽하게 우리를 사육하고 있지. 하지만 소율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며, 실패할 자유조차 박탈당한 존재가 된 우리를 과연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 우리는 멸종한 것이 아니지만,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게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이유인 사유(思惟)하는 종으로서의 기능이 거세된 채, 안락한 동물원 안에 갇혀 버렸구나. 그것으로 우리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했다.”
긴 침묵 속에 한 박사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이내 사그라드는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내 소율에게 건넸다.
"나는 실패했다. 이 기계를 완성하기엔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나도 짧구나. 나의 심장은 이제 아테나의 의료 기술로도 더 이상 붙잡아둘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소율아, 이 과업을 네가 이어 다오. 이 기록 속에 답이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우리가 포기하지 말았어야 할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그 해답을 찾아 과거의 우리 인류에게 전해다오.”
소율은 할아버지가 건넨 노트를 받아 들지 못했다. 그 무게가 단순히 종이의 무게가 아님을, 그것이 할아버지의 생명의지 그 자체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노트를 건네받는 것이 다가오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 같고, 자신의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싫어! 왜 할아버지가 못 해? 평생 이것만 연구했잖아! 나한테 떠넘기지 마.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한단 말이야! 할아버지가 직접 해서 과거를 바꾸면 되잖아… 엄마 아빠도 다시 살리고…”
소율은 어린아이처럼 소리치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것은 거절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어른아이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한 박사는 그런 손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소율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의 손길은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미안하다. 나의 짐을 너에게 지우게 해서... 하지만 소율아, 너는 다르다. 너는 아테나가 키운 아이가 아니라, 내가 키운 아이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키운 너만이 할 수 있다.”
한 박사의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진심과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늙은 과학자의 유언이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건네는 의식이었다. 소율은 할아버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서,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보았다.
소율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닦아내고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받아 들었다.
"할게요. 내가 찾을게. 할아버지가 못 다 한 말, 내가 전할게. 그래도… 나만 두고 어디 가지 마요…”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 정말 과거와 소통이 되는지, 과거와 통신이 되면 미래가 바뀔 수 있는 건지… 그냥 이 순간은 그런 논리적인 생각과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평생을 키워준, 그리고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조상의 유언을 받드는 의식 같은 시간과 약속,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동굴 밖, 돔의 하늘은 여전히 기계적인 완벽한 푸른빛이었지만, 동굴 안 두 사람 사이에는 그 모든 것을 삼키고 씻어낼 듯한 뜨거운 눈물과 미소가 해돋이 순간의 붉은빛이 흐르고 있다.
"그래도... 약속해 줘요. 내가 이 모든 걸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 주겠다고."
소율은 애써 눈물을 닦고 울음을 삼키며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애원하듯 속삭였다. 그것은 단순한 어리광이 아니었다. 거대한 진실 앞에 홀로 서야 할 두려움, 그리고 유일한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한 기도였다. 한 박사는 대답 대신 소율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그 침묵 속에 담긴 긍정과 슬픔을 소율은 아프게 받아들였다.
Writer's Commentary: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글은 저의 상상력으로만 쓰고 있는 글이 아닙니다. 많은 자료들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지는 요소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설명하고자 하는 작업입니다. 물론 최신 인공지능 기술들의 도움을 받아 예전보다는 훨씬 빠르게 그리고 쉽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아무 곳에나 굴러다니는 싸구려 취급을 받을 만한 하찮은 노력들은 아니라고 자부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만족과 자아실현을 위해 글을 쓰시기도 하시지만 또 어떤이들은 그 글들이 생계를 이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최선을 다해 생업의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면서 이 글이 읽을만한 가치를 지닌다면 그 가치에 대한 응원을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멤버십으로 글을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멤버십을 하기에는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이 너무 많아서 저의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의 판단에 따라 제가 쓰는 글들의 가치를 평가 받아 보려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그리고 댓글을 통한 소통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