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집, 그곳에 엄마의 미소가 있었다.
이사
전혀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다. 동년배에 비해 너무 이른 이별이었기에 가족들은 그저 망연자실했다. 장례를 마치고 자식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비교적 빠르게 복귀했지만, 혼자 남은 엄마는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모두 타지에 살았기에, 그 쓸쓸함은 더 깊고 길었을 것이다.
그렇게 7년을 아버지가 떠나신 그 집에서 홀로 버티시다가 엄마는 최근에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동생네 근처로 이사하셨다. 며칠 전, 새 집에 이사하신 엄마 댁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다. 그곳에서 나는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바다를 품은 집
창문을 열자,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수평선이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듯했다. 밤이 되면 바다 건너 산업단지의 불빛이 오색찬란하게 반짝였다. 도시의 야경이 파도 위로 일렁이며, 이상할 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엄마가 무기력하게 보였던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밝아진 모습이었다.
이사 후 엄마의 하루는 규칙적이다. 아침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오후엔 조카의 간식을 챙겨주신 뒤 근처 헬스장이나 공원으로 산책 겸 운동을 나가신다. 그 일정하고 단정한 하루의 리듬이 엄마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어주었다. 식사도 거르지 않고 제때 챙기시며, 얼굴빛이 한결 밝아지고 웃음도 많아졌다. 몸도 마음도 함께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집 안에는 원목 특유의 따스한 향이 감돌았다. 월넛과 체리색 가구가 은은한 파스텔톤 벽지, 중간 톤의 원목 마루와 어우러져 한결 포근한 분위기를 냈다. 친정의 익숙한 살림살이들이 새 공간 속에서도 제 자리를 찾은 듯했다.
나는 주부의 본능으로 주방부터 둘러보았다. 설거지를 하며 바다를 볼 수 있는 구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 엄마의 설거지는 조금 더 가벼워지겠구나.’
그런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났다.
엄마의 갈비찜과 아이들의 웃음
엄마는 서울에서 오는 손주들을 위해 며칠 전부터 바삐 손을 놀리셨음이 분명하다. 핏물을 빼고 기름을 제거한 갈비를 양념에 은행, 고구마 그리고 각종 야채와 함께 재워 압력솥에서 푹 익혀내신 갈비찜. 그 느끼한 고기에 어울리는 오이를 곁들여 고춧가루 팍팍 뿌린 배추 겉절이와 새콤달콤 오이지 무침이 아침부터 한 상 가득이었다. 외할머니의 정성이 가득담긴 따뜻한 냄새가 집 안 구석구석을 감쌌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평소보다 밥을 더 잘 먹고, 내 말도 유난히 잘 들었다.
이른 새벽부터 짐을 싸고 KTX 안에서 곯아떨어졌던 몸이 친정에 도착하자마자 스르르 풀렸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온도, 익숙한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나를 단숨에 내려놓게 했다.
내 마음이 쉬어가는 곳
돌이켜보면, 20대 때는 세상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던 시절이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서울살이는 외롭고 고단했다. 학점, 시험, 졸업과 취업. 그 끝없는 경쟁의 바다를 헤엄치며 버티는 게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그 후로도 직장생활, 결혼, 두 아이의 육아까지 이어진 삶 속에서 나는 늘 마음속으로 되뇌곤 했다.
“이럴 때 엄마가 가까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열한 삶 속에서 도움이 절실했던 적이 있었지만 멀리 살아서 나는 친정찬스를 누리지 못했다.
비록 직접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내게 친정은 늘 ‘마음의 안식처’였다. 대학 시절 시험이 끝나면 짧게라도 내려가 며칠을 푹 쉬고 돌아오곤 했다. 그곳에만 가면 긴장이 풀리고, 밥이 꿀맛이었다. 엄마의 요리 솜씨가 특별하지 않아도 그 밥은 언제나 제일 맛있었다.
한 번은 임용시험을 마치고 고향집에 내려와 15시간을 내리 잔 적도 있다. 그만큼 친정은 나를 온전히 내려놓게 하는 곳이었다.
바다와 함께 자란 기억
나는 어릴 적부터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자랐다. 그래서 내게 **‘친정 = 바닷가’**라는 공식이 있다. 이번 나들이에서도 엄마, 아이들과 함께 해변을 걸었다. 철썩, 철썩— 파도가 모래사장에 부서지고, 다시 검푸른 바다로 빨려가듯 멀어진다. 그 일정한 리듬이 마음을 다독였다.
“준이엄마야, 너 준이보다 어릴 때 ○○해수욕장에서 없어졌던 거 기억나니? 그 바람에 내가 수영복 바람으로 널 찾으러 집까지 뛰어갔었지.”
엄마의 말에 웃음이 났다. 나도 같은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해프닝은 결국 해수욕장 전용 '미아보호소'의 친절한 안내방송을 듣고 아빠가 나를 찾으러 오며 일단락 되었다.
예전 친정집은 해수욕장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눈만 뜨면 바다가 보였고, 가까이 있는 바다는 나의 놀이터이자 쉼터였다.엄마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바다에서 자란 아이들은 감성이 특별하단다. 평생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거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만약 내가 바다를 품지 않고 자랐다면,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을까 싶다.
내 마음의 바다, 친정
내게 친정은 바다와 같다. 치열한 일상 속에서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곳,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주는 곳. 거센 파도든 잔잔한 파도든 모든 것을 데리고 망망대해로 품고, 데리고 들어가는 넓디넓은 바다.
엄마의 집은 이미 내 마음의 바다가 되었다. 여자에게 친정이란, 결국 그런 곳이다. 날마다 해외여행 가자고 조르는 첫째가 말했다.
“엄마, 해외여행보다 외할머니 집이 더 좋아요. 다음에 또 오자!”
엄마의 새 집은 터가 좋은가 보다. 모두가 이렇게 행복해하니 말이다.
친정은 내 마음의 바다입니다.
고단한 일상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위로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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