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by 톨스토이
벚꽃이 진 자리에 연두색 잎사귀들이 돋아나며 봄이 깊어감을 알리던 국민학교 6학년의 오월. 보람, 수미, 현정, 그리고 나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어린이날을 조금 특별하게 장식하기로 했다. 놀이동산의 솜사탕이나 선물 꾸러미 대신, 우리가 선택한 목적지는 부산 감만동 언덕 끝에 자리한 ‘소화영아재활원’이었다. 그곳은 성바오로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유서 깊은 장애 영유아 시설이었다.
우리는 학교 앞 정문에서 비장하게 만났다. 각자 돼지저금통을 털어 모은 금쪽같은 용돈과, 아이들에게 읽어줄 동화책 두세 권씩을 가방에 넣은 채였다.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내내 우리는 우리가 마치 세상을 구하러 가는 작은 천사라도 된 양 들떠 있었다. 덜덜거리는 낡은 버스 안에서 뭐가 그리도 즐거웠던지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가면 무슨 봉사를 할까?” “우리가 책 읽어주면 애들이 좋아하겠지?”
우리는 소외된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위 ‘우아한 봉사’의 환상에 젖어 기분 좋은 헛물을 켜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 속 네흘류도프가 안락한 거실을 벗어나 진흙탕 길을 걷기 전까지 자신의 위선을 몰랐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날 우리가 마주할 '진짜 세상'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친절한 버스 기사님의 배려로 내린 그곳은 우리가 알던 부산의 모습이 아니었다. 주거 밀집지역을 벗어나자 나타난 것은 생경하고도 위협적인 풍경이었다. 인도는커녕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황량한 도로 위로 거대한 컨테이너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부둣가를 오가는 그 트럭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어린 우리를 비웃듯 쌩쌩 지나갔고, 그때마다 일어나는 먼지와 매연에 우리는 코를 막으며 휘청거렸다. 우리는 종이쪽지에 적힌 주소 하나에 의지해, 그 위험한 길을 둘둘씩 짝을 지어 조심스레 걸어 올라갔다. 그것은 관념적인 친절을 버리고 타인의 고통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우리들만의 작은 고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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