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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고르다, 나를 고르다

종로 주얼리시티에서 마주한 '호모 에스테티쿠스'

by Rani Ko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어제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종로 주얼리시티를 찾았다. 작년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발걸음이다. 즐비한 매장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조명, 그 아래서 각자의 광채를 뽐내는 금붙이와 보석들을 마주하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도 마음에 꼭 맞는 아이템 하나를 '겟'했다. 손목 혹은 손가락 위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그 작은 존재는 정서적인 위안인 동시에, 요동치는 자산 시장 속에서 든든한 '금테크'가 되어주는 실리적인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 매장 쇼윈도 앞에서 한참이나 나를 가장 돋보이게 해줄 물건을 고르느라 시간을 할애했다. 로즈 골드, 베이지 골드, 화이트 골드까지 색깔별로 귀와 손목, 목에 걸어보고 손가락에도 일일이 끼워 보았다. 금 중량은 어떻게 되는지, 어떤 디자인이 나의 분위기에 가장 멋지게 어우러지는지 조목조목 따져보는 과정은 사뭇 진지했다. 매장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몇 군데를 더 돌아다니며 비교하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고르는 시간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 그 이상이었다.




​쇼케이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해 본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부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듯한 앳된 연인들까지, 그들의 눈빛은 모두 하나의 지점을 향해 있었다. 바로 '반짝이는 무언가'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세대를 막론하고 명품을 좇고 귀금속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 행위는, 어쩌면 자본주의적 허영을 넘어 인간의 아주 깊숙한 본성과 맞닿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 즉 미적 인간이라 부른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 속에 그려진 정교한 무늬나, 흙을 빚어 만든 조각상에 새겨진 장식들은 생존에 직결되는 도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굳이 시간을 들여 사물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인간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명품 가방에 열광하고 주얼리 상가를 찾는 행위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반짝이는 금과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은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수단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질서한 세상 속에서 완벽한 '대칭'과 '조화'를 찾아내려는 인간 인지의 즐거움이며, 척박한 일상에 '아름다움'이라는 방점을 찍어 스스로를 특별하게 대접하려는 의식이다. 특히 금(金)은 변치 않는 속성 덕분에 고대부터 영원함의 상징이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영원히 변치 않는 광채를 소유함으로써 얻는 정서적 안도감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주얼리시티의 복잡한 인파 속에서 나는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 더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해 내 삶의 궤적을 반짝이게 닦고 싶어 하는 본능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그리고 더 나은 가치를 꿈꾸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다.



​친구들과의 수다 끝에 손에 넣은 작은 금붙이를 바라본다. 이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오늘 하루 내가 느낀 정서적 힐링의 증표이자, 내일을 대비하는 영리한 선택이며, 무엇보다 내 안의 '미적 본능'이 살아있다는 짧은 기록이다. 종로의 그 눈부신 조명 아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광채를 찾아 헤매는 아름다운 추구자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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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현직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의 성장을 꿈꿉니다. 교육대학교 졸업 및 동 대학원 수료. 2025 브런치 "작가의 꿈 1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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