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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감시.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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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준 Sep 22. 2024

4장: 익사자.

물에 빠져 죽은 사람.

폴은 물을 부었다. 그것들이 넘칠 수 있도록, 마치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물이 넘쳐흐르고, 터져 나왔다. 그는 그저 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언가를. "무엇을 원해 이곳으로 왔니?" 달님이 부드럽게 물었어요. 은빛 빛을 반짝이며,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꿈속에서 듣는 속삭임처럼 맑고 고요했어요. "그림." 폴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른나무 그림." 달님은 조용히 폴을 바라보며 대답했어요. "그게 네가 이곳을 해일에 휩쓸리게 한 이유니? 너는 이 그림을 위해 모든 것을 잃었단다." 달님의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슬픈 어조였어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존재처럼. "내가 로즈의 입술을 원했다고 한다면? 아니면 요정들에게 빌었던 소원을 원한다고 했다면? 혹은 그저 무엇인가를 증명하려 했다면?" 폴은 날카롭게 물었다. "네가 정녕, 그걸 들어줄 수는 있는 건가?" 고요한 물결 위로 번지는 달님의 빛은 마치 익사한 영혼들을 추모하는 듯 슬프게 흔들렸답니다. 달님은 천천히 입을 열었어요. "너는 그것들을 이루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믿는구나?" 달님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폴의 마음속 깊이 울렸어요. 달님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요. "다시 한번 대답해 보렴. 무엇을 원해, 이곳으로 온 거지?" "모르겠군." 폴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너는 누구지? 나는 누구고?" 달님은 차분히, 그러나 확고하게 대답했답니다. "그건 그 누구도 알 수 없단다. 너도, 나도." 달님의 빛은 멀어져 가는 듯했지요. 그러나 그 말은 여전히 폴의 마음에 회오리치며 맴돌고 있었다. "너도 결국 '모든 게 내 환상일 뿐'이라는 말을 하려는 거지? 다 위선자일 뿐이잖아. 그렇지?" 폴은 답답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우려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손은 헛되이 움직였고, 그가 바랐던 연기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달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넌 그저 내가 '그 모든 게 너의 환상'이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거잖니? 네가 원하는 건, 내가 단순한 위선자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순간일 테지.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렴. 네가 가득히 채운 저 물들을 말이야. 넌 이미 네가 본 게 환상인지 아닌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니?" 달님의 은빛 얼굴은 여전히 고요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요. "남이 깎아낸 나무로는 너만의 숲을 이룰 수 없단다. 다른 이의 바람에 실려 떠도는 배는 끝내 네 항구에 닿지 않을 거야." 달님의 목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같았어요. 달님은 한참을 침묵한 뒤 다시 말을 이었지요. "모두는 내면에 위선과 가면을 쓰고 있단다. 그걸 부정할 순 없어. 하지만 그 가면으로 하여금 널 일어서게 도울 사람만 오매불망 기다려선 안 돼. 결국은 네가 스스로를 일으켜야 해. 네가 기대는 것들은 그저 그 가면들의 그림자일 뿐이니까." 폴은 더 이상 담배를 찾지 않았다. 그마저도 이제는 무의미했다. 그는 더 이상 찰랑거리는 물결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것은 허상일 뿐이었으니까. 이곳에 달은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메아리처럼 반복될 뿐, 물결은 끝없이 같은 이야기를 속삭일 뿐이었다. 텅 빈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공허한 속삭임들. 폴의 앞에는 거대한 세상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세상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작 폴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했다. 그는 다시 한번 달을 부르기로 했다. "이봐." 그러나 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그를 향해 밀려드는 물결 소리뿐이었다. 그 물결은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지만, 폴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폴에게 이해할 가치조차도 없었다. 폴의 눈이 완전히 뜨였다. 마치 익사자의 시체에서 의료진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강제로 눈을 열어젖히듯, 그 눈은 차갑게, 무력하게 열렸다. 비가 내린다. 굵은 물줄기가 폴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그 혹은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차가운 흐름으로 번져간다. 주변을 지나치는 노란 택시들은 그저 평범한 도시의 일상을 반영하고 있지만, 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폴은 더 이상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다. 폴은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아..." 그 혹은 그녀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폴, 그 혹은 그녀는 그 순간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변화된 것을 느꼈다. 마치 한때 자신의 눈을 파내려 노력했던 자처럼, 그의 눈은, 혹은 그녀의 눈은 그렇게 강제로 떠졌다. "인상적이군!" 폴은 마치 자신이 심하게 한 대 맞고 말았다는 듯, 그 특유의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의 목소리엔 일말의 혼란과 기묘한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이건 정말… 흥미롭군, 그렇지 않아?" 그의 발걸음이 무겁게, 그러나 가볍게, 이 기이한 세상을 가로지르며 움직였다. 그 혹은 그녀가 이곳을 걸어갈 때, 주변에 흐르는 액체는 더 이상 단순히 '비'라고 부를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었다.

"하나." 액체는 흐르라. 무언가 묘하게 익숙한 듯, 그러나 전혀 이 세상 것이 아닌 그것들.

"둘." 그것들과 함께 익사하라. 그 혹은 그녀의 발밑에서 넘실대는 그 흐름, 마치 무언가 그 혹은 그녀를 끌어당기는 듯한 기운.

"셋." 춤춰라.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폴은 그 속에서 춤추는 자신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이미 그 속에 빠져들었을까?

"나는…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그 혹은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희미하게 들렸다. '그것들 알레르기'를 말하는 거지? 그 말은 마치 그 혹은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목소리였다. "참 잘했어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어리석은 칭찬, 그 끝없는 세계의 메아리, 폴은 그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폴의 얼굴을 돌려라. 그 혹은 그녀는 웃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호하다. 다시 그 얼굴을 꺾어라. 이제 그 얼굴은 울고 있다.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그 슬픔은 그저 표면에 드리워져 있다. 그는 감시한다, 아니, 관찰한다. 그 혹은 그녀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본다. 눈앞의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그 모든 왜곡된 조각들을 맞춰가기 위해. "날 죽이기라도 하게? 해봐! 해보라고, 이 개새끼야! 시발년아. 좆같은 개새끼야." 그 말은 허공에 울린다. 폴은 그 외침을 들었는지, 아니면 그 혹은 그녀가 직접 외쳤는지조차 모른다. 그 경계는 흐려지고, 분명했던 선들은 이제 사라졌다. 폴을 지탱하던 그 어떤 것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제 그 혹은 그녀는 부서졌고, 대체될 시간이 왔다. "짜장면을 더 먹는 건 어때?" 폴은 물었다. 아니, 털보 선장이 물었다. 요정 여왕님도 물었다. 달님이 물었단다. 로즈가 물었다. 감시관도 물었다. 텔레비전 속 흑백의 남성 역시 물었다. 그들은 차례로 물었다. 그 혹은 그녀가 물었다. 그는 물었다. "그 말은 정말..." 짜장면, 혹은 자장면은 볶은 춘장과 야채, 고기 등의 재료를 다시 식용유에 볶아 면에 비벼 먹는 한국식 중화요리이다. 중국 요리 중 하나인 작장면(자장몐)이 한국에 유입된 뒤 변형되고, 현지화된 요리다. 현지화되는 과정에서 원본과는 많이 달라진 음식이다. "짜장면을 더 먹는 건 어때?" 그림을 본다. 그림도 ■을 본다. 우리도 그것들을 본다. 우리는 그것을 느낀다. 보지 못해도, 우리는 그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욕망한다. 폴과 ■과 그 혹은 그녀의 욕망처럼. 욕정 한다. 사랑한다. 증오한다. 마른나무 그림. 그것은 세상을 바라본다. 지켜본다. 그리고 천천히 죽어간다. 그것들도 간다. 무엇인가가 고장 나고 있었다. 그 고장 난 부분은 전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은 생각했다. ■■■을 더 먹는 건 어때? ■는 칠흑같이 짙은 밤하늘을 느낀다. ■는 그것이 무거운 장막처럼 내려앉아 ■를 짓누르고,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감시자처럼 ■을 조여 오는 것을 감지한다. ■는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뇌를 갉아먹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 ■■■■. 이 날 밤. ■는 ■■■가 될 기회를 얻었다. ■는 지나가면서 본 한 젊은 여인의 집, 그 집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는 주저하지 않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얼마 후, ■는 빗속에서 점점 커지는 구두 소리로 ■의 존재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는 자신의 몸을 억지로 장롱 속에 구겨 넣으며, 한 줄기 희미한 틈 사이로 ■의 모습을 엿본다. 검은 블라우스와 재킷을 걸친 ■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완벽하다. ■의 금발 머리카락은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고, 푸른 눈은 바다보다 깊어 ■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새하얀 피부는 ■에게 ■가 처녀의 순수함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 ■, ■. 15, 16, 17. 폴은 자신의 집 중앙에 서서 양복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그는 마치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손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전에 보였던 욕설은 사과드릴게요." 그의 미소는 어딘가 불편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빈 공간을 향해,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의자들을 향해 그는 감사의 인사를 던졌다. "감사드려요, 머그잔 위 의자 여러분들." 폴은 여전히 혼자였지만, 그 어떤 관객보다도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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