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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시대

통수육과 파김치의 의미



  “oo도 돌봄교실(1)을 간다는 거지? 내가 돌봄교실이 어떤 시스템인지 아는데,,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니” 통화 중에 시어머니께서 울먹거리신다. 나는 의아하다.뭐가 불쌍하다고 울기까지 하시는 거지. 전화를 끊고 나니 나야말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내 아이는 부모의 사랑를 넘치게 받는 행복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일하는 엄마를 둔 죄로 순식간에 돌봄교실에 가야 하는 안쓰러운 아이가 됐다. 아이를 불쌍하게 만든 나쁜 엄마가 된 나는 한참 눈물을 흘리며 원망할 대상을 찾았다. (돌봄교실(1) : 학교 또는 국가가 지정한 민간단체에서 정규수업이 끝난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정시간 돌봄 및 추가 교육을 실시하는 교실)     


 시어머니께서 둘째를 봐주신다고 하여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는 조리원 퇴소 전날 이루어졌다. 남편과 시부모님께서 이사를 도맡아하고 나는 조리원 퇴소하는 동시에 쫓기듯 낯선 곳으로 왔다. 출산으로 인해 호르몬이 정상이 아닌데다가 태어나서 40년 넘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나는 새로운 곳이 무서웠다.  


 집에 도착해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는데 무거운 전기밥솥을 옮기라는 시어머니 말씀이 참으로 서러웠다.

‘우리 엄마라면 출산한지 2주 밖에 안된 산모에게 이걸옮기라고 했을까? 아니야. 이사까지 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당신도 이사하느라 힘드시니 내 상태를 헤아릴 수가 없으시겠지.’ 호르몬 탓이라고 치부해도 서럽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남편이 나름 신경 써주었음에도 동네 자체에 배척당하는 느낌이 강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는 엄마가 느꼈던 감정으로, 몇 번이고 서울로 가는 몇 안되는 버스에 몸을 싣고 도망가고 싶었다.      


 새로 이사 간 곳에서 회사까지는 왕복 4시간이었다.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야 여유 있게 출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은 많았다. 그 중 하루가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날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이 도시락을 12시는 되어야 먹을 텐데 다 식은 도시락을 쥔 아이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또 밤에 못 다한 집안일로 일어나야 하는 일들도 허다했다. 퇴근하면 아이들을 재워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새벽에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아이들이 깰 까봐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음소거 모드로 집안일을 하고 있노라면 자기연민에 빠지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물 한잔 마시지 못하고 출근하면서도 아이들과 남편이 아침에 먹을 것은 챙겼다. 금방 만들 수 있는 오뎅국, 유부초밥 같은 것들, 하다못해 빵 이라도.. 그 옆에 함께 마실 수 있는 티백차와 컵까지 세팅을 해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출근길에는 항상 먹방을 봤다. 내 최애 먹방 아이템은 두툼한 통삼겹살 수육에 각종 김치, 특히 잘 익은 파김치를 척척~ 감아서 먹는 것이었다. 한입을 크게 베어먹으면 통삼겹에서 줄줄 흐르는 육즙에 내 도파민이 팡팡터졌다.


내 삶에 내가 결핍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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