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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퇴사 이야기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건만..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3월, 나도 조직개편이 되어 다른 팀으로 이동했다.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일 생각에 부담은 됐지만 설렘이 있었다.


 문제는 아이의 입학하는 시기와 맞물려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날들이었지만 한 섶만 들춰내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다행히 합이 맞는 돌보미 선생님을 만나 등하교, 식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를 정서적으로 제대로 보살피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다. 말수가 너무 없어 선생님의 관심 대상이 되고, 놀이터에 같은 반 친구가 있음에도 멀뚱히 지켜보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의문은 확신이 됐다. 4시간이라는 출퇴근 시간 때문에 새벽에 자는 아이를 보며 출근하고 밤 9시가 가까워져서 퇴근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돌보미 선생님이 아이를 등교시키며 “00가 아주 씩씩해요.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등교 잘했어요”라고 영상을 보내주셨다. 학기 초라 엄마들의 저마다 배웅하는 소리, 밝게 웃으며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다른 아이들 속에 내 아이는 몸집보다도 큰 가방을 메고 혼자 저벅저벅 들어가고 있었다.

배웅을 해줄 수도 없고, 응원의 미소도 보낼 수 없는 일하는 엄마는 미안함에 눈물을 쏟았다.

내 멘털에도 이상이 생겼다.      


 “내일부터 회사 안 간다고? 엄마 회사 끊었어? 왜?”

아이는 연속으로 질문을 해댔다.

이해가 되는 것이 아이가 인지할 수 없는 시절부터 일을 했던 사람이니 그럴 만도 했다. 회사에서 받는 성취 및 인정에 존재가치를 뒀던 나는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에 휴직을 하면 자연스레 퇴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아이, 회사(=나) 저울질할 수 없는 둘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갔다. 내 고뇌와 갈등은 엉망으로 얽혀 있었고 푸는 것을 포기할 즈음 휴직을 했다. 마음속에 굵은 철근으로 꽁꽁 묶여있던 ‘휴직’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용수철을 단 것처럼 튀어나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휴직에 이어 예상했던 수순대로 퇴사를 했다. 내 안에 여러 자아 중에 가장 덩치가 컸던 하나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한여름 초파리 필름에 온갖 잡스러운 것이 붙듯 내 일상에 불안함, 상실감, 허무함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떼어보려고 하면 그 마음조차 달라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결국 무기력해졌다.    

 

 “노니까 좋아?” 친구가 된 전 직장동료가 물었다.

“아우~ 노니까 좋죠?” 얼마 전까지 워킹맘 동지로서

고충을 나누던 아이 친구 엄마가 물었다.      

 

 나는... 지금 놀고 있는 것인가?     


 항상 숨 가쁘게 살아온 내게 놀고 있다는 주변의 인식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회사만 그만두면 나를 무겁게 하던 짐 하나는 마음 밖으로 내던지고 후련해질 것 같았지만 정작 내 하루는 분노, 공허함, 두려움, 아무것도 아닌 나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인생을 담은 책이 있다면 회사를 다니던 페이지는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고, 밑줄과 취소선도 잔뜩 있는 누가 봐도 열심히 채워져 있는 삶이었다. 반면 현재의 페이지는 아무것도 없다. 텅 비어 있는 공백이다.   

  

 이 공백 속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무섭다. 아니 정확하게는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한 가지 일만 계속하다 보니 아는 것,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순간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만 많은 사춘기 소녀가 되어 버렸다.


지금 나는 질풍노도의 한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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