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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좀 다녀봤니?


 회사 재직 시절에 동료와 수도 없이 했던 말이 있다.

"아~ 나도 남편돈으로 편하게 문화센터 다니면서 살고 싶다"


 동네 행정복지 센터에서 운영하는 생활문화강좌에 신청하여 당첨이 됐다. 사실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사람이 포기하는 바람에 운좋게 된 케이스다.


 강좌명은 '원예소품만들기'로 나만의 가드닝을 가꾸는수업이다. 요새 식물가꾸기 열풍에 실외 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나무, 꽃을 심고 가꾸는 분들이 많아져서 덩달아 관심을 끌고 있는 분야이다. 가드닝은 단순히 키우는 것이 아닌 식물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배치하고

관리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심리적인 안정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오늘 수업은 특이하게도 원예치료가 동반된 수업이었다. 강사의 말에 따라 나의 감정에 맞는 카드를 선택해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집어든 것은 "불안한" 카드였다.  지난밤 계엄령 선언이라는 초미의 사건,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대다수 국민을 생각하며 선택했다.

불안한 오늘 나의 심리


 강사는 해당 카드를 선택한 이유와 요새 내 마음의 계절이 어디쯤 와있는지 발표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10명 정도의 수강생이 돌아가면서 발표를 시작했다.


 기쁨,슬픔 카드를 동시에 뽑은 분은 얼마전 남편이 사고가 나서 걱정이 컸는데 지난주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너무 기쁜 동시에 쌍둥이 형제로 인해 육아가 힘들어 슬프다고 했다. 자신의 계절은 현재 겨울이지만곧 봄을 향해 갈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감사카드는 선택한 분은 밝은 미소가 인상적인 포근한이미지의 여성이었다. 이분도 남편이 얼마전에 큰병을 얻었는데 다행히 회사에서 충분한 휴직을 부여해 몸조리를 할 수 있어 감사하고 남편의 직장때문에 이지역 저지역을 옮겨다녀야 했지만 지금은 한 군데 정착해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감사를 말하는 이 분은 긍정적인 삶의 향기가 났다. 몸에서 행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본인의 계절은 봄과 여름동안 충분히 준비해서 이제야 결실을 맺는 가을이라 했는데 박수를 쳐드리고 싶을 만큼 멋졌다. 가을이란 풍요는 그간 열심히 살아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여유카드를 선택하신 분은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여 삶을 잘 꾸리고 있고 남편도 알아서(?) 잘 살고 있어 하루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하는 시간으로 쓰고 있다고 하셨다. 음식은 내가 먹고싶은 것만 준비하면 되고 여행, 낮잠, 산행, 배움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는 100% 백수로 여름의 계절을 활기차게 살고 있다고 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미안해 카드를 선택하신 분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생일이 지나자마자 돌변하여 심리상담도 받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한 결과 아이가 엄마의 통제에 숨막혀 하고, 엄마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은 눈물로 말을 이어 가지 못하고 카드를 만지작 거렸다.

울먹임 속에 겨우 뱉어낸 '미안해' 란 말에 수많은 감정과 사랑, 자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겨울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지만 역시 봄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내 차례가 왔을때, 현재 나의 계절은  겨울과 봄의 어느사이라고 답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겨울이란 계절을 선택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내가 숱하게 말해왔던 '문화센터나 다녔으면 좋겠다.' 란 말은 얼마나 오만하고 실례가 되는 말인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계절을 만들어가며 혹은 지나길기다리고 있는데  나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글에서는 어쩌면 한뼘 만큼은 자란 줄 알았는데 난 여전히 그 제자리에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 나는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니까.

 

 

나의 작은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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