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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Nov 01. 2024

여행을 좋아해서 참으로 다행이야.

호스텔에 도착해 카운터 직원이 배정한 방으로 들어갔다. 2층 침대 위로 올라가 끙끙 앓으며 캐리어를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오른쪽 옆 침대에서 어느 모르는 일본인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맞이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타카히로의 첫인상은 장난꾸러기 같았다. 웃는 모습이 순박하고 짧은 머리, 거뭇거뭇 자라난 턱수염, 파란색 반바지에 헐렁한 검은색 티셔츠, 초등학생이 멜 것 같은 책가방 안에 있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마음이 잘 맞아 금세 친해진 우리는 서로 모국어는 다르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기에, 번역기를 사용하면서 이 좁디좁은 방에 목소리로 온기를 채웠다.


”너 지금까지 어느 나라 가봤어? “

“나 미국에서 친구와 함께 자동차로 멕시코 국경을 넘었어 “


“너 에반게리온 좋아해? “

”당연하지! 내가 다니는 회사가 가락국수 체인점인데 에반게리온 주인공이랑 콜라보도 했는걸? “


“내 이름은 진구야 도라에몽 노진구 할 때 진구! 너는? “

난 오가와 타카히로야. 와 너 이름 신기하네! “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나이가 몇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서로의 여행에 대한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니 한 시간이 흘렀을까. 막힘없이 오가는 대화 덕분에 우리는 로비로 나와 새벽이 저물 때까지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나 민감한 정치적 이야기, 북한과 한국의 관계 등 서로 궁금한 것을 거침없이 꺼냈다.


“나는 대만에서 걸으면서 여행하고 있어. 내일은 지우펀 근처 숙소로 이동할 것 같아. 오늘이 너와 마지막 대화라는 게 아쉽다 “

타카히로가 떠나는 당일 아침,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나는 한국에 오면 꼭 만나자고, 타카히로는 일본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작별하기 전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우리는 활짝 웃고 있었다.

에어팟 케이스를 떨어트린 그 장소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스펀이라는 천등 마을로 향했다. 타이베이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 철로에서 천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릴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스크린 도어가 없는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에어팟을 꺼내다가 그만 케이스가 선로 밑으로 떨어졌다. 당황을 금치 못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는데, 옆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대만인 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역무원께 말씀드리면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애써 괜찮은 척 웃음을 띠며 괜찮다고, 신경 써줘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먼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기 쉽지 않았을 텐데 도움을 건네주셔서 고마웠다.


스펀역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푹푹 찌는 더위, 한국어로 쓰여있는 안내 문구, 정신없이 호객 행위 하는 노점상 주인들, 쩌렁쩌렁 멈출 줄 모르는 메미 울음소리, 그리고 8월 여름,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럭 적재함에 혼자 누워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한 대만의 시골 풍경.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누군가의 희망이 적힌 홍등들이 자유를 향해 하늘 위로 날아가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사 먹은 오징어 튀김
사랑에 빠진 어느 모를 거리

쫄깃한 오징어 튀김을 우걱우걱 씹으며 이름 모를 거리를 걷는데 순간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연거푸 움직이고 있는 구름 밑에 물을 묻히지 않고 초록색 물감을 부어버린 듯한 진한 나무, 잎사귀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는 자연 소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지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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