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무더위에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서 직접 스무디를 만들고 계신 곱게 주름진 할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옆에 걸려있는 초라한 시골 감성의 메뉴판을 보고 망고 스무디 한 잔을 주문했다. 밖은 너무 더우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신 할머니의 인상은 참 인자스러웠다.
혼자 여행 와서 천등은 날렸냐고 할머니는 내게 말을 거셨는데, 아직 날리지 못했다고 말하니 위치를 알려주시면서 추천을 해주셨다. 잠시 자리에 앉아 어느 방향인지 확인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수박 스무디를 공짜로 주셨다. 나는 안된다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드리려고 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며 절대 안 받을 거라는 의지를 보이셨다. 감사한 마음에 정말 맛있다며 몸으로 표현했다. 할머니는 내가 손자 같으셔서 챙겨주신 걸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선심이 마음 한편 속에서 떠나지 않고 일렁였다. 그래서 구글맵으로 가게의 위치를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폐업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속상했다. 언젠가 다시 방문해서 그때, 더위에 지친 나를 위해 선의를 베풀어주셔서 고마웠다고 와락 안아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선선해진 오후. 나는 할머니가 추천해 주신 곳으로 향했다. 내가 머뭇거리기만 하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자 어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는 아저씨가 나오시더니 특유의 서비스직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그는 천등 날리러 왔냐고 물어보면서 한 손에 들고 있던 계산기를 들어 올려 탁탁 치더니 가격을 보여줬다. 나쁘지 않은 가격이어서 좋다고 대답했다. 그는 순식간에 천등을 흔들어 판자에 고정시킨 뒤, 내 손에 커다란 붓을 건네줬다. 나는 붓을 들어 몇 분간 무슨 소원을 적을지 고민했다.
‘수많은 나라로 떠나게 만드는 원동력을 얻게 해 주세요 ‘
천등 표면의 재질이 얇아 글씨가 잘 안 써져 삐뚤삐뚤한 글씨체가 되고 말았다. 멀리서 다른 관광객을 도와주고 있는 그에게 완성됐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어디선가 어떤 여성분이 오시더니 천등에 불을 붙이셨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주시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다. 어색했음에도 계속 미소를 지으라는 직원 덕분에 안면마비가 올 뻔했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저 끝없는 하늘 위로 올라간 나의 소원이 적힌 홍등으로 부디 내 모든 꿈이 이루어지길.
스펀역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 지하철 놓칠까 봐 허겁지겁 뛰어가면서도 예쁜 풍경을 마주치면 잠시 멈춰 서서 사진 찍기 바빴다. 붉게 피어오른 장미꽃, 낮은 주택들 위로 나보다 키가 큰 산들이 주변을 에워싸는 풍경에 매료되었다. 나는 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어쩌면 이 여행의 시발점인 허우통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