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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남 Nov 20. 2024

시장 고양이 / 한수남


내가 세상을 읽느라 여기 산다고 하면

넌 아마 피식 웃을 지도 몰라.

우아하고 안락한 네게 난 단지 거북한 추억일지도 몰라.


어둑어둑, 어디선가 꼭 한 명은 울고 있을 것 같은 파장무렵

나의 산책은 시작되고

썰물 지는 바닷가 같은 시장바닥을 

온몸으로 온몸으로 밀고 나아간다네


하루 동안 수많은 살들이 떠나갔다네.

닭의 살, 소의 살, 돼지의 살, 배추의 살, 감자의 살, 조개의 살,

곳곳에서 모인 것들이 곳곳으로 흩어져 갈때

아, 짧게 내지르는 마지막 탄식을 너는 아니?


랩으로 씌우지 않은, 바코드를 붙이지 않은 날것들이

제 가진 냄새를 정직하게 피우다가 기꺼이 짧은 이별 노래를 부르지

마지막 목소리는 내 귀 속으로 파고 들어와

부르르 잠시 몸을 떨기도 하지


물론 내 몸은 깨끗지는 않아.

트럭 밑이든 리어카 밑이든 비를 피하며 

왼갖 잡냄새를 묻히고 사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이지만

행여 새끼를 낳거들랑 내 얘기 좀 전해 주시게


가장 속된 이 장바닥이 가장 성스런 곳이라 믿으며

샛노란 눈 부릅뜨고 한껏 귀를 열어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선 한마리 늙은 애비가 있었더라고.



고양이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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