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월 Aug 23. 2024

인문학의 구원

요아소비의 괴물과 함께

멋진 세계에 오늘도 건배.

마을에 난비하는 웃음소리도 보고도 못 본 척할 뿐인 가짜야.

미쳐버릴 것 같아.


*


이 세계에서 무엇이 가능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그 새까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바라는 미래에 몇 번이라도 계속 물어뜯어.

이 모순 투성이인 세상 속에서 너는 웃길 바라니까.

이제 누구도 상처 입지 않게 강해지고 싶은 거야.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도록.


*


멋진 세계는 오늘도 평화로워.

거리에 소용돌이치는 나쁜 이야기도 모르는 척하고 눈을 돌렸어.

제정신이 아니야.

진지하게 차려입고 행진.

울리는 발소리가 활기찬 행선지는 사라지지 않는 지워지지 않는 맛이 배어들어있어.

이면의 세계.

맑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

누구도 슬프게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벗어나지 않고 올곧게 살아가는 것.

그게 올바로 살아가는 것?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의인가.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것은 정의인가.

내가 존재해야 할 모습은 뭐야?

진정한 나는 누구인 거야?

알려줘.

오늘도 대답은 없는 세상 속에서 바라고 있어.

서툴지만 언제까지나 너와 그저 웃고 싶으니까.

뛰는 심장이 전율을 일게 해 외치고 있어.

지금이야말로 움직여.

약한 나를 몇 번이라도 계속 먹어치워.

이 모순 투성이 세상 속에서 네가 웃길 바라니까.

이제 누구도 울지않도록 강해지고 싶은 거야.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도록.

그저 너를 지키기 위해서 달리고 달리는 거야.

내 안의 나를 뛰어넘어.


요아소비, <괴물>



내가 인문학에서 진정 얻고자 했던 건 위안이라는 것을 왜 그동안 회피하고 있었을까. 아니, 회피한 것이 아니라 무지각했던 걸까. 따라하고,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게 나한테는 최고, 최상의 거짓말이었던 걸. 그건 모순이 아니야. 위선이나 가식 따위가 아니야. 자기 합리화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야. 이건… 좀 더 그것보다 초월적인 단계라는 것쯤은 감이 왔어. 인문학 중 자신의 철학이, 자신의 개성이 강한 문학이 나는 좋았던 거야. 단지 책이 나의 고독을 상징하는 소모품 따위로 생각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아도 됐던 거야. 시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뭐든 좋았으니 문학은 나를 구원해줬던 거니까. 이 모순 덩어리에 온갖 탐욕이 들끓어서 가뭄이 번진 이 어두운 세상에서 인문학에 내가 미쳐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야. 이런 지옥 같은, 슬픈 현실에 나는 회피하고 싶은 게 아니야. 이번에는 나의 보이지 않는 힘을 발산하고 자수성가를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야. 문학은 그 시대의 상을 비추기도 하지만,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나 기형도의 시나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안네 프랑크의 <안나의 일기>, 제인 오스틴의 소설, 괴테의 소설, 러시아 문학,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시가 나오야의 <암야행로>,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나 수필 등등… 나는 인문학에서 희망을 찾고자 했어. 그건 이유도 모르게 전생에 자신이 남자였다면 몽상가였다고 욕먹었을, 그런 백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거야. 우리는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만날 때마다 저 사람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캐묻고 싶어지는 이 호기심 또한 재능이겠지만, 그 덕분에 이 비릿한 속세에서 몇 번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할 수 있어.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분명 진정한 자아와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 이를 모르는 것이 무지일 수도 있어. 사람들의 자신만의 언어로 구원받아야 할 것을… 특히나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는 더욱이 필요한 일이거늘… 자신만의 언어는 결국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것.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날 알아주고 사랑해주리. 비록 나는 형편없는,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약한 멘탈로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도 받고, 그마저도 모자른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채찍질까지 하며 일찍 철이 들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어느 나그네가 말하길, 그럼에도 이런 자신을 자각하고 깨달아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 맞아. 내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줄까. 진정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랑과 정에 의심만 할 뿐이다. 나는… 나는… 이를 깨닫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는 것을… 그리고, 또, 다시 인문학에 구원을 받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흙탕물 진 곳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진심이다. 이런 일이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있다니! 이게 나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일이구나. 불안과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게 되어 좋지만, 역시 병적인 불안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여유를 부려도 될 텐데. 지금처럼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계속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이런 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이유는 잠시나마 이 불안과 살육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와 치유할 수 있기 때문. 나의 불안과 공황, 우울은 그치지 않는 비지만 인문학은 우산의 형태를 한 도서다. 


작가의 이전글 불행과 위안에 대한 모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