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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월 Oct 23. 2024

나의 문장에서 인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따스했던가

오랜만에 수필(일기)

오랜만에 일기를 써보네. 여름방학 때부터 2학기가 되고 나서 부쩍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 기분이 들더라. 왜 그런지 몰라도 연애가 무르익어갈수록 감정 소모가 많이 돼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이게 나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그리 믿고 싶다. 나는 나를 아직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른다. 그렇기에 남을 사랑하는 법도 모르지만 그는 참고 또 참고 기다려줬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그랬다. 이렇게 보니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아니, 이미 나쁜 인간이 되었다.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신경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세울 게 없어졌다. 이번 중간고사도 망했고(아직 시험을 안 친 과목이 세 개나 있지만) 운수가 풀리지 않는, 그런 나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늘 슬펐다. 아아, 푸시킨이 그리 말하던가. 현재는 늘 괴로운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했던 수많은 걱정, 근심, 우려는 거의 현실이 되지 않았다. 나름 다 괜찮았고, 받아들일 만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성장해간다. 지나간 걱정, 근심, 우려는 이제는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데도 중요한 것을 잊게 되는 건 왜인지 이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기억해내, 생각해내. 이 말이 그토록 간절히 말해지더라. 급급한 상황일수록 머릿속은 새하얘지니까.

요근래 바쁘니까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답답하고 서러운 일들이 많았다. 할 말은 많은데 어디에 가서 이걸 말해야 될지. 아마 처음으로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 절실함을 느꼈다. 입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문학이라는 것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일기마저 안 쓰니 내 내면을 지키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는 바쁘더라도 꼭 글은 써야지. 내가 심란할 때마다 소설이든 시든 수필이든 여러 글을 써냈던 것처럼.

그럼, 이번에는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시는 너무 함축적이고 나의 말을 온전히 전달 못하는 감이 있으니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을 쓰기엔 무슨 소재로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역시, 나는 수필이 맞다. 생각이 많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게 바로 수필인 것 같다. 자고로 나는 그렇다.

누군가의 말과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나의 ‘인간’이라는 말이 이토록 따스했던가. 나의 ‘인간’이라는 말은 늘 부정적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그 단어가 왜인지 모르게 따스하게 느껴진다. 나의 이 문장에서 인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따스했던가.

나의 생각을 쓰는 데에는 역시 수필밖에 없는가보다. 이렇게도 많이 썼다. 내일 시험은 잘 칠 수 있을 것이라는 명일의 희망이 붉게 타오른다. 작가 김유정이 그랬듯이.

나의 명일도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가서 푹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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