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대문을 열면 줄지어 있던 단칸방들에 살던 사람들과 곳곳에 보이던 거미줄과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던 똥 냄새를 기억한다
지금의 빨간 대문의 주택은 20년 전에 한 번의 리모델링을 거쳤는데, 리모델링 전의 모습은 방들이 줄지어 있는 하숙집 같은 구조의 1층짜리 주택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이 있고, 그 옆에 방, 그 옆에도 방, 또 방, 방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줄지어 있었다. 뒤로 돌아가면 공용 화장실 두 칸이 있고 공용 세면실이 있었다. 단칸방에 연탄아궁이와 수도가 있고, 가스레인지가 있어 요리는 가능한 나름 부엌이 있는, 미닫이문으로 된 있을 건 다 있는 단칸방이 줄지어 붙어있는 하숙집 같은 집이었다.
방 많은 주택.
하나의 대문에 여러 가족이 사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사글세 있습니다'라고 손으로 직접 쓴 종이를 대문에, 근처 전봇대에 붙여놓고 방을 찾아 빨간 대문 안을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어려서 사글세인지 월세인지 빌려 쓰는 건지 모르고 그냥 다 같이 사는 줄 알았다. 한 가족처럼.
빨간 대문의 주택에서 사글세를 거쳐 갔던 사람은 많다.
우리 자매가 "오빠야, 오빠야" 하며 쫓아다녔던 대학생 하숙생, 단칸방에서 사랑의 도피를 하던 신혼부부, 얼굴이 똑같이 생겨 구분이 안 되던 일란성 남자 쌍둥이네, 꼽추라 불리던 아버지와 말 못 하던 엄마를 둔 두 자매네, 옷 수선집을 하면서 딸린 방에 살던 동기네, 그 외에도 기억력 나쁜 나에게 잊히고 만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 그때는 몰랐는데, 우리 집은 단칸방이 줄지어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사글세 구합니다' 종이가 붙어 있는 빨간 대문의 주인집 딸이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잊히지 않는 단칸방 사람들과의 시간은 고스란히 나의 어릴 적 기억과 함께한다. 잠깐 살다 가는 사람들, 혹은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모를 만큼 늘 잠겨 있는 방이 한두 개 있긴 했지만, 몇몇의 가족은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같이 살았다.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에서의 악몽이 있다면, 내 똥을 포함한 빨간 대문 주택에 사는 모든 사람의 똥이 한데 뒤섞여 똥 무덤을 만들어 놓은 두 칸짜리 재래식 화장실의 기억이다.
화장실을 가려면 방들을 지나 왼쪽으로 꺾이는 통로를 거쳐 뒤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볼일 한 번 보려면 곳곳에 걸려 있는 거미줄에 붙은 거미들과 눈이 마주쳐야 했는데, 거미줄이 얼굴을 휘감기도 하고 작은 거미가 머리에 내려앉아 화장실을 같이 가기도 했다. 재래식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똥 냄새에 숨 참고 숫자를 세며, 내려 깐 엉덩이에 달라붙는 모기들에 공포를 느끼며 똥통에 빠질까 불안해하며 변기 밖으로 튀는 오줌에 발이 젖을까 피하며 재빠르게 볼일을 보며 뛰쳐나오곤 했다.
화장실의 공포가 있긴 하지만, 빨간 대문의 방 많은 주택은 사람 냄새나는 시끌벅적한 푸근한 집이었다.
사실 구구절절 빨간 대문의 주택을 설명하는 이유는, 잠깐 앉아 커피 한 모금할 때, 출퇴근길 버스 정류장 가는 길에 불현듯 떠올라 과거로 소환시키는 빨간 대문 안 단칸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 일 없었던 것만 같던 평범한 일상이 틈을 열고 돌아보니 가지각색의 일들의 드라마였다.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아픔과 기쁨이 있었다.
우선 빨간 대문 안에서 태어나 같은 시간을 보내며 자라왔던 봉칠이 와 종갑이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