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는 글
누군가의 못다 한 이야기까지 마무리 지으며 저의 인생 전체적인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물론 현재까지의 인생이지만 말이죠. 제 글을 통해 여러분이 무언가 얻어가신 것이 있을까요?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던 것은 의미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흘려보낼만한 일들도 의미를 찾아나가다 보면 분명 삶은 즐거운 일로 가득하고 성장할 일로 가득합니다. 저도 아직 모자란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계속 의미를 찾고 사색을 하며 삶에게 맞서다 보면 언젠가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만이 아닌 여러분도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글의 의도
글 썼을 때의 의도를 누군가의 이야기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잠자리는 왜 날지 못했는가에서는 어린아이도 무언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가벼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인생은 근육의 성장처럼을 쓸 때는 무언가 목표가 있는 분들께 들려드리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와 휴식의 중요성을 쓴 글이죠. 저의 경우엔 중간중간 휴식이 있으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휴식을 보며 나아갔습니다.
나만 왜 이렇게 바쁘지? 는 우리의 시각을 좀 더 넓혀보자는 의미로 썼습니다. 저는 정말 저만 바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누구나 웃음 뒤에 그들만의 고난이 숨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배우는 건 전술이 아니다를 썼을 때는 가족의 중요성과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실제로 저는 훈련소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정말 많이 배웠고 그중 하나를 쓴 글이죠. 저 이야기는 제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 서랍에 보관되어 있던 글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저런 문구가 들어가 있답니다.
내 반려동물 이야기 시리즈는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제가 키우던 반려 닭에 빗대어 쓴 글입니다. 우리에게 온 수많은 인연들에게 분명 의미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인연들을 떠나보내며 배운 것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인연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랐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과정 시리즈부터 세상은 우리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준다 까지는 저의 좌절과 극복을 담은 시리즈입니다.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법 그리고 불행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고 들려드린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 마지막은 여러분이 실패, 패배, 나쁜 일 같은 단어를 너무 두려워만 하지 말고 잘 이용해서 성장하는 거름으로 만들기 바라고 쓴 글입니다. 주저앉기보다는 추진력의 발판으로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제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제자를 아낀 선생님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고 후회를 했을 때,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기 바랐습니다. 그때의 선택을 다른 길로 했어도 분명 그 길에서도 배우는 것은 있었고 울고 웃고 얻고 잃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용접실에서 엿 본 세상은 중용에 대해 살짝 써봤습니다. 저 또한 중용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꼭 기억해 주세요. 세상과 우리 사이의 적당한 전류 강도를!
인생 첫 이별은 초등학생 때 제가 키우던 고양이의 이야기입니다. 고양이가 원했던 자유를 막을 뻔했던 제 이야기를 쓰며 육아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자식 걱정은 부모의 의무지만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세상의 수많은 길을 막는 것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막은 길이 자식에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떡집 알바는 우리가 타인을 볼 때 그 사람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봐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쓴 글입니다. 물론 사람을 볼 때 과거인 과정보단 현재의 결과가 더 잘 보이죠.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의 수많은 과정을 알아가야만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 진가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를 현명한 자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장갑차 조종수, 별을 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인 이유. 이 글은 묶어서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따져 올라가면 결국 모두 하나로 묶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갈등을 겪을 필요가 있을까요? 어쩌면 평화주의자로 보이는 이 글을 쓴 이유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자주 보는 것과 비슷한 내용만 계속 보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 세상이 있기에 지금 자신의 세상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곤충만 보는 농부 이야기는 장점에만 집중하는 많은 이들에게 단점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단점을 알고 그에 맞게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장점과 강점을 함께 가진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투자와 매매, 그 끝에서를 쓴 것은 욕심의 무서움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욕심이라는 녀석이 들어간다면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욕망에 사로잡힐지도 모릅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들은 그 때문에 불행해질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떠나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욕심을 항상 견제하세요!
마음 이사청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큰 메시지는 상대의 소중함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그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 이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것을 늘 상기시켜 주세요. 언젠가 마음 청소업체를 부르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마지막으로 새벽, 산 아래 공원에서는 사색의 중요성을 알리는 글입니다. 처음엔 지겨울지도 모르는 사색은 하면 할수록 중독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저는 사색을 통해 성장할수록 성장하기 전의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사색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겼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한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저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마무리되었으니, 이제는 한 가지의 일로 또다시 의미를 찾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투자와 매매에 대한 에세이, 친환경 텃밭 에세이, 입주청소 에세이 같은 걸로 연재 브런치북을 생각 중이지만 아직 확정 짓지는 않았습니다. 글이 그리워지면 분명 저런 것들로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지만요.
한동안은 책을 많이 읽을 예정입니다. 요즘은 특히 소설에 관심이 많이 가요. 저도 언젠가 깊은 내용을 담은 소설 한 편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소설책을 여러 권 주문했습니다. 사건을 보고 의미를 찾는 게 특기라서 그런지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힌트를 찾는 게 무언가를 배울 때 제일 편한 방법인 것 같더군요. 저는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살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그냥 흘려보내던 일들을 붙잡아 무언가 찾는 재미를 얻기 바랍니다. 새로운 의미를 찾으면 또 글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