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out of 3. +경험담 한 꼬집.
다시 돌아와서, 타이덜 베이슨(Tidal Basin)은 단연코 벚꽃철로 귀결된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3.5킬로 산책로가 몽땅 왕벚꽃나무로 둘러져 있다. 무거워서 가지가 쳐질 만큼 꽃 밀도가 높다. 100년이 훌쩍 넘는 굵은 고목들은 신박하게 굽어져 재미를 더한다. 부근엔 자목련과 백목련도 동시에 만개해 사진 남기기 좋다. 축제기간엔 꽃만큼이나 관광객도 많다.
타이덜 베이슨 동쪽으로 선착장(The Wharf)이 있다. 식당과 거리 연주 등 볼거리가 있다. 길거리 음식도 있고 Shake Shack부터 고든램지의 헬스키친 같은 고급음식점까지 다양한 식당이 즐비하다. Fish market에서 파는 짭조름하게 찐 게(blue crab)도 별미다. 여기서 유람선을 타고 벚꽃이 만개한 포토맥강을 달리면 장관이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내셔널 몰을 떠나 두 세 블록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포드 극장(Ford’s Theatre)이 있다. 링컨대통령이 총에 맞은 곳이다.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는 느낌이 드는데 사건 후 이 극장의 역사가 끝남과 동시에 역사적인 장소가 되어 모든 게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서다. 200년 된 극장 의자에 앉아 볼 수 있다. 직원은 질문을 받으면 기다린 듯 열정적으로 답해주는데 책에서는 읽어 보지 못한 뒷이야기로 재미를 준다.
포드 극장 길 건너에 피터슨 하우스(Petersen House)가 있다. 부상당한 링컨이 이곳에 옮겨졌고 며칠 후 이곳에서 운명했다. 개인 집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출구 쪽에 링컨을 주제로 한 책을 모아 쌓은 탑이 있다.
(무지 궁금한 게 있다. 링컨이 누웠던 방과 침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큰 키로도 유명한 링컨을 상상하면 침대가 상당히 작다. 보통 사람이어도 그렇다. 대체로 키가 큰 미국 남자 성인들은 저 작은 침대에서 어떻게 발을 뻗고 잤을까.)
유난히 더운 올(2024년) 여름. 내셔널 몰 주변에 줄지어 있는 각종 박물관 “도장 깨기”가 이번 여행 계획 중 하나다. 날씨 덕(?)에 상식이 풍부해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같은 역사 예술 까막눈이 연달아 박물관 미술관을 관람하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것들의 연속이라 지루하다. 순간 집중이 깨지고 다리가 아파 온다. 인파로 혼잡한 박물관에서 빨리 걸을 수는 없다. 천천히 말려 죽이는 것 같다 ㅎㅎ. 아무래도 예정된 미션임파서블.
박물관 중 다 볼 때까지 지루하지 않은 곳을 한 곳 픽한다면 나는 흑인 역사문화 국립박물관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이다. 영화 루트(Roots)에서 쿤타킨테의 역사를 통해 기본 상식을 쌓은 덕에 줄거리를 잡고 관람할 수 있다. 묘하게 집중하게 된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전체 3개 층을 다 보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다.
국회의사당은 내부를 관람하길 추천한다. 두 개 층에 걸쳐 웅장한 건물 내부와 조각상 벽화 등 건국 당시 역사적인 상징물들을 볼 수 있다. 실제 국회의원들의 회의장(House and Senate Galleries)은 포함되지 않는다.
입장하면 로비에 군집한 관광객을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나 많다니. 이제 기다림이다. 티켓을 받고 그룹으로 나뉘고 담당 가이드가 음성수신기를 준다. 질서 정연하게 컨트롤하고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을 것 같지만 키작녀는 보이는 게 앞사람 등짝일 때가 많다.
결국 가이드를 놓쳤다. 그나마 다행인 게 투어 막바지였다. 오고 가는 많은 그룹들 속에서 홀로 출구를 찾아다니다 보안요원의 벌게진 얼굴을 마주했다. 전후 사정을 듣기 전 무전기에 대고 경호팀을 부를지 말지 고민하던 눈빛이 선하다 ㅋ. 마침 출구가 지척이어서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보내면서도 무전기로 상황을 알린다. 히든룸에서 CCTV로 날 쏘아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ㅎㅎㅎ. 관광가이드들이 촌스런 깃발을 왜 들고 다니는지 단박에 이해됐다. 미국회의사당도 빨주노초 깃발 도입이 시급하다.
카페인 충전이 필요할 즈음 국회의사당에서 가까운 유니온스테이션(기차역)에 간다. 조각상으로 장식된 벽과 높은 천장이 멋진 곳이다. 빨간 구식 유니폼을 입은 포터들이 여행객 짐을 끄는 모습은 19세기 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올해 여름엔 빨간 티를 입었다ㅋ. 날씨는 이네들의 클래식 고집도 꺾었나 보다.
거기에 블루보틀이 있다. 역사 안 광장 한쪽 테이블에 커피잔을 놓고 앉는다. 들고나는 여행객의 스토리를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표정과 걷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꾸 상상이 이어진다.
커피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최애 커피다. 한국처럼 오밀조밀 이쁜 카페를 기대하진 말고.
매표소는 광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 종이던 모바일 형태이던 티켓을 소지하고 검사검사검사를 통과해야 플랫폼에 다다를 수 있다. (느리고 더딘데 실수까지 많은 미국의 일처리를 언제 한번 털게 될 것 같다. 할 말이 많다.)
유니온스테이션에서 암트랙 기차를 타면 뉴욕에 갈 수 있다. 일등석을 타면 식당칸에서 레트로 감성 유니폼을 입은 주방장이 서빙하는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KTX처럼 엄청 빠르지도 매끄럽지도 않고 게다가 좌석은 푹 꺼지고 낡았지만 러시아워 트래픽에 갇히지 않는다. 뉴욕행 기차요금은 그레이하운드 버스요금의 열 배였다. -.- 크리스마스 시즌 밑이어서 더욱 차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카페와 식당과 쇼핑은 역시 대학가다. 조지워싱턴 대학과 조지타운대학을 잇는 대학로가 있다. 백악관에서 북서쪽 펜실베니아 에비뉴에 있다. M 스트리트 조지타운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젊은이와 먹고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건물 분위기는 19세기다.
조지타운은 역사보호지구여서 건물 외관을 훼손할 수 없다. 1800년대와 19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거리에 빼곡하다. 카페나 음식점 테라스에 앉아 구식이 주는 편안한 이질감에 잠시 녹아보자.
대학가를 갔다면 거기서 끝내지 말고 M스트리트에서 한 블록만 내려가자. 운하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수심이 고르지 않은 포토맥강을 대신한 물류 공급용 수로로 300킬로에 달했었다. 다른 지역의 생산품을 디씨 지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다 철도에 밀리기 시작했고 1924년 대홍수로 유지보수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폐쇄됐다.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하이킹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명소가 되었다. 운하옆 건물들을 지탱하는 축벽의 200년 된 물때 흔적과 교량을 구경하며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이 멋지다.
또 한 블록 내려가면 포토맥강이 나오는데 탁 트인 뷰가 좋다. 강가에 서있는 캐네디센터(문화예술공연장)를 배경으로 분수와 버스킹을 볼 수도 있다. 시원한 강변 공원 벤치에 앉아 예술가에게 박수도 쳐주고 응원도 하며 여유를 즐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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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디씨를 누가 궁금해한다고. 그럼에도 미국 디씨 이야기는 more to c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