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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Sep 17. 2024

이쯤 되면 우당탕탕 좌충우돌 둘레길

북한산 갈 때마다 사고(?) 하나씩



지난 북한산 둘레길 글에 계단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해댔는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입방정을 조심했어야 했다. 결국 계단이 없는 바위에서 미끄러졌기 때문이다.

불평 냅다 한 글: <하늘로 가는 계단이 있는 길>




이번 출국이 임박해 여유롭게 짐을 싸려고 통으로 비워 둔 날이었다. 계획은 그랬는데 웬걸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짧게라도 걸어 볼 새로운 장소를 찾아보고 있다. 오전에 다녀와서 가방 싸면 되지… 요즘 단단히 북한산에 빠졌다. 한동안은 이럴 듯하다. 무릇 초보의 특권일 거다.


날이 더워 지칠 텐데, 짐을 급히 싸다 빠뜨리는 게 있을 텐데… 에이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거 하자. 계획을 세워 놓고 하는 편인 내가 걷기에 재미를 붙이고는 이런 즉흥적인 무모함이 좋아지고 이럴 때 뭐랄까 고지식하고 답답한 나로부터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다.


요즘 작은 딸은 엄마와 함께 사는 죄로 엄마를 위해 있는 힘껏 시간을 짜내고 있다. 오늘도 동행이다(아싸!)


거리가 짧은 은평구 진관사를 택했다. 북한산의 서쪽면이다. 거기 사찰에 찻집이 있다니 쉬다 올 생각이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우당탕탕 일을 친다.

진관사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는데… 아차 얼음물병 캐리어를 두고 내렸다. 이 더운 날 그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데… 이미 문이 닫힌 버스를 두들겨 보았으나 팔힘이 약해 통통 수준이었고 버스는 그냥 출발했다. 떠나가는 버스를 향해 방방 뛰며 양팔을 있는 힘껏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도로에 진입하며 오는 차를 신경 쓰느라 내쪽으론 기사님의 시선이 닿지 않을게 뻔했다.

포기해야 하나 싶던 그때 버스가 정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차들에게 길을 내주며 도로 아래 흙길로 비켜서 말이다. 50미터 정도 거리였다. 부리나케 뛰어갔다.


하차용 문 안쪽에 내 물병 캐리어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옆좌석에 앉아 계시던 노년의 여인이었다. 잠깐 보아도 인상이 참 좋았었다. 그분이 하차문 기둥을 꽉 잡고 움직이는 버스에서 나를 향해 물병을 흔들고 서 있는데 흰머리에 흰옷을 입은 그 모습이 마치 여신 같았다. 그분이 버스를 세웠음이 분명했다.

문이 열리고 물병을 받아 들고 여신께 감사를 드렸다. 뛰어 올라가 껴안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다시 노선에 올라가야 하는 버스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어서 기사님과 승객들을 향해 모두 듣고도 넘칠 만큼 큰 소리로 감사와 죄송함을 전했다. 그 여신과 함께 승객들도 괜찮다고, 이 더운 날 ‘얼음물’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미소 짓고 있을 것 같았다. 보이진 않았지만.




큰길 입구에서 은평한옥마을을 지나 진관사까지는 1킬로가 채 안된다. 경사도 완만하고 포장된 길이다. 진관사 경내로 들어섰다. 사찰 앞에는 계곡물이 흘러 내려와 개울을 이루었고 한 두 가족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찻집을 지나쳐 계속 걷기로 했다. 계곡 물소리에 이끌려 저절로 계속 갔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진관사 대웅전 입구를 지나 뒤편 숲으로 계곡이 이어졌다. 계곡물이 여러 층의 낮은 폭포를 이루고 그 폭포들이 깊거나 얕은 소를 만들며 중독성 있는 패턴의 소리를 냈다.

“골골 또록또록 졸졸”

소가 깊으면 제법 큰소리가 난다.

“우릉우릉 쏴아아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식는다.


아쉬운 건 계곡은 전면 출입금지로 두 줄의 굵은 로프로 된 펜스로 막혀 있다. 로프의 상태나 빛바램 없는 출입금지 팻말로 보아 최근에 금지됐음을 짐작케 했다. 전년에 물놀이를 했던 경험으로 다시 찾은 이들에겐 큰 실망일 듯하다. 금지된 구역 안 넓적한 바위에 간이 텐트를 친 등산객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는 매년 거기에서 쉬어 갔었을 것이다. (2023년부터 금지되었다 함.)


조금 더 올라갔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다. 계곡이 아래로 멀어지는가 하더니 곧이어 바위를 급히 태우고 철제 계단을 가파르게 올렸다. 잠깐사이 산의 중턱에 올라와 있고 경사진 바위 끝 낭떠러지 밑엔 아까 본 계곡이 멀다 못해 검게 보였다.


진관사에서 겨우 삼사십 분 올라온 것 같은데 깊고도 높은 산속이다. 계획 없이 오른지라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몰랐다. 깎아지른 산세와 품이 북한산 동쪽과 확연히 다르다. 산신령이 산다면 여기에 살 것 같다. (해발 520미터 비봉능선 가는 길이었다.)


더 올라가는 건 무리다. 그런데 거기까지조차도 무리였나 보다. 내려오려고 방향을 튼 순간 앞서가던 딸이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눈 깜박할 새였다. 다행히 펜스 아랫단 로프에 몸이 걸렸다. 내 걸음에 집중하느라 딸이 미끄러지는  순간을 보질 못했다. 미끄러지는 소리를 듣고 눈을 들어보니 딸의 두 팔꿈치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위에 랜딩하는 게 보였다. 그게 먼저 가슴을 찢었다. 전신이 울렸으니 오늘밤 몸살을 앓겠구나…

딸은 10도가량 기운 바위 위에 완전히 누운 형국이다. 로프가 가슴에 닿아 있었고 그 로프를 힘껏 움켜잡고 있었다. 발이 향한 곳은 낭떠러지 끝이 1미터가량 남아 있었다. 입으로는 괜찮다면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대수롭지 않은 듯 천천히 수습해 일어났으나 상황을 되짚어보니 오싹한 순간이었다. 몸이 조금만 작았어도 로프 아래를 그대로 통과했을 거였다.

“엄마가 아니길 얼마나 다행이야.”

나보단 체구가 큰 딸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나는 신발 탓을 해본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화를 신은 나는 미끄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등산화 사러 가자.”

속상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해 본다.

 

바위를 이리저리 내려오다 바위 단차 때문에 “영차”하고 발을 디뎠다. 그 반동에 가방에 대충 꽂혀있던 손풍기가 튕겨 나갔다. 전원이 켜져 있는 상태로 로프 밖 바위틈 풀 위에 떨어졌다. 왼팔 오른팔 손을 힘껏 뻗었으나 단 10센티가 모자란다. 다리를 써볼까 망설이는 내게,

“엄마 그냥 산에게 줘.” 딸이 툭 한마디 한다.

그렇다. 뭔가는 잃어야 하는 거면 이 정도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어서 볼썽사나웠다. 두고 오자니 산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여 마음은 영 불편했다. 웽웽 돌고 있는 손풍기… 10년 가까이 정들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손풍기 안녕… 초기제품으로 모터가 짱이었다. 이쯤 되니 북한산만 가면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는 느낌이다.




여기서 귀가하면 딸이 몸살을 앓을게 뻔했다. 쉬는 것보단 지금 긴장을 놓지 않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짧은 나들이였던 계획을 바꿔 더 걷기로 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뷰맛집으로 소문난 유명 카페가 있어 길을 잡았다. 진관사 일주문을 나서면 작은 공원과 숲길이 나오는데 북한산 둘레길 9구간 마실길 중간에 해당된다. 이 길을 북쪽으로 걷고 이어지는 10구간인 내시묘역길을 중간쯤 가니 멀지 않은 곳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 2층, 뷰를 보는 1열에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했다. 북한산 모양으로 구운 시그니처 빵과 커피를 주문해 받고 용케 차례가 왔다.


커피를 앞에 놓고 산멍에 젖어들었다. 커다란 통창에 북한산이 그득 들어 있었다. 노곤한 심신을 내려놓고 북한산 뷰에 한참을 빠졌다. 자칫 되돌이킬 수 없을 큰 사고가 될 뻔했던 바위에서의 긴장감도, 10년을 함께 했던 손풍기를 두고 온 섭섭함도, 걸으며 흘린 땀도 모두 내려놓고 가슴이 후련해졌다.


에어컨 바람으로 추워졌을 때쯤 3층 루프탑으로 나갔다. 북한산의 서쪽 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우와!


(좌:2층 내부 뷰 /우:3층 외부 뷰)


겹겹이 솟은 봉우리들의 이름을 정확히 몰라 너무나 아쉽다. 갈 때마다 아직까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일으키는 곳이지만 그래도 더 많이 알고 싶어진 북한산이다.




돌아오는 길에 동대문에 들렀다. 딸이 꼭 맘에 들어하는 등산화를 두 켤레나 발견해서 통 크게 선물했다.

다행히도 딸은 몸살을 앓지 않았고 바위에 내다 박힌 팔꿈치도 멀쩡하다. 등산화를 신고 다시 가보자는 것 보니 다른 상처도 없어 보인다.


비록 미끄러져 넘어졌지만 바위에 계단이 더 설치되길 원하지 않는다. 등산화를 꼭 챙기면서 더 조심할 테니 그대로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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