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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씨 Sep 20. 2024

북악하늘길

손만두집 콩국수


터줏대감 거북이만 바위에서 광합성 중인 더운 날씨. 오리들도 왜가리도 백로도 해오라기도 그늘에 다 숨어 들어간 늦은 아침이다. 햇볕은 따가운데 새도 보이질 않으니 하천변을 걷기가 지루하다.


문득 북악하늘길이 궁금하다던 걷기 버디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궁금했었다. 답사를 가보자. 하천을 빠져나가 버스를 타고 성북구민회관 앞에서 내렸다. 북악하늘길의 동쪽 시작점인 하늘마당이 이곳에서 가까웠다.  

지도를 보니 낯설지 않은 길이다. 이 길은 북악스카이웨이로 잘 알려져 있다. 오래전 북악팔각정까지 드라이브 삼아 몇 번 왔었다. 그때 팔각정에서 분명 주변 경치를 봤었을 텐데 보고 있던 것이 삼각산인지도 몰랐었다.


북악하늘길은 북악스카이웨이 옆 숲 속 트레일을 말한다. 도로 가까이와 숲을 들락날락하며 북악스카이웨이 전 구간을 따라간다. 팔각정은 중간 쯤에 위치한다. 하늘마당에서 팔각정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해가 뜨거웠다. 도로 가까운 곳에선 양산을 폈다가 숲으로 들어가면 접었다를 반복했다. 더운 날씨 탓인지 산책하는 이가 거의 없는 중에 반갑게도 백 미터 앞에 비슷한 속도로 혼자 걷는 여인이 있었다. 가방이 단출한 모습이 늘 오는 동네주민 포스다. 걸음이 빨라지면 놓치지 않으려 나도 속도를 냈다. 이 한적한 길에 같이 걷는 이가 있어 안심이 됐다. 상대방이 나를 인지했는지는 모르지만 나 같은 키작녀가 계속 비슷한 속도로 따라 걷는다 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아 마음 편히 뒤를 따른다.


한 시간쯤 걸었다. 팔각정을 1킬로 남긴 곳에 쉼터가 나타났다. 앞서가던 여인이 벤치에 앉아 목을 축인다. 잠시 후 다가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

“초행입니다. 의도치 않으셨겠지만 길잡이가 되어 주셔서 든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쩍어하던 여인도 곧 인사를 해 온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좀 나누고 주변의 좋은 길도 소개받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 길이 뒷동산인 그 여인은 조금 후 집을 향해 되돌아갔다.


북악팔각정에 다달았다. 오늘 걷기는 예정된 게 아니어서 가져온 물은 이미 바닥이 났다. 매점에 들어가 물부터 샀다. 휴 살겠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또 다른 모습이다. 우뚝 서있는 형제봉을 바라본다. 난간에 서서 보니 북한산 둘레길 5, 6 구간이 내려다 보였다. 3구간을 2번 연속 실패한 지 며칠 안된 때였다. 조만간 걸어야 할 길인데 난이도가 있어 보여 주눅이 든다 ㅎㅎ.



산 위를 지나는 바람이 시원하다. 땀이 다 식을 때까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북한산을 바라보았다. 계획 없이 지금 이곳에 와있다는 것이 좋다. 앞뒤 재지 않고 생활 반경을 벗어나는 작은 모험이 반갑다.


하산하는 길. 하늘마당으로 회귀하지 않고 부암동 방향을 택했다. 길을 완주해서 좋고 더 짧다. 그리고! 길 끝에는 수십 년째 찾아가는 손만두 집이 있다. 조건이 완벽하다. 하하


이 손만두 집을 걸어서 가 보기는 처음이다. 오래도록 찾는 곳이지만 뜨문뜨문 가는지라 갈 때마다 처음 보는 구석이 보인다. 대기만 한 시간 이상인 가게인데 웬일로 오늘은 자리가 넉넉했다. 만두와 조랭이떡국 전문집으로 언제부턴가 여름엔 콩국수도 낸다. 늘 먹었던 만두와 떡국 말고 처음으로 콩국수를 맛보기로.

오~ 의외로 콩국수가 더 좋다. 울 엄마가 맷돌에 갈아 해 주던 맛과 닮았다.

그 맷돌을 돌리는 건 내 담당이었는데…


이 쪽 길로 내려오길 잘했다. 윤동주 문학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경복궁 부근을 지난다. 어릴 때 학교 다니며 익숙한 장소여서 이곳만 오면 소녀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거울만 안 보면 된다 ㅎㅎ


(*콩국수가 불러온 옛 추억은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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