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비로소 방황을 알았다
청양 어귀 가난한 시골집마다
배고픈 개구쟁이가 늘 그러하듯
할아버지 몰래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사랑한다고, 장대비 속
조신하게 걸어온 앳된 엄마의 삶에
가난한 반지 하나 해주며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텅 빈 살구맛 피크닉과
단칸방 곰팡내로 배부른
아내의 만삭 된 배 어루만지며
꼴딱꼴딱 애잔히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구내식당 점심값 이천오백 원
슈퍼마켓 과자상자도 이천오백 원
결국 아들 한 입 와삭와삭 소리에
종일 곯고 곯은 배에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아내 영정사진의 한 맺힌 눈초리에
어린 자식들의 원망 어린 눈초리에
괴롭도록 서글프게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구멍 난 양말과 주부 습진,
작은 방 닫힌 문과 잠긴 마음도
모두 못난 아비의 억울한 죗값이듯
베란다 창살 아래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그렇게 의사아들, 목사아들
보란 듯이 잘 키워 놓고는
닳고 닳아 운명한 아비노릇을
말없이 슬퍼하며 기울였던
아빠 잔은 한 잔, 내 잔은 빈 잔.
아내의 빈자리 여전한 밤
이젠 자식들도 먼 길 떠나보내고
익숙하게 적적한 외로운 밤에
아무리 기울여도 차지 않는
아빠 잔은 반 잔,
내 잔은 여전히 빈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