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될뻔한 내 동생
어제저녁에 부모님, 동생과 넷이 식당에 갔다. 저녁을 먹는 동안 고3인 동생과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축구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은 걷기도 전부터 축구를 좋아했다. 태어났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녀석이 하도 울어서 관심을 끌 만한 게 필요했다. 신기한 걸 보면 그만 울까 싶어 공을 요리조리 차는 모습을 보여줬더니 울음을 그쳤다. 그때부터 동생은 항상 공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동생이 어렸을 때 아침부터 운동장에 가서 공을 차면 저녁이 되도록 집에 가지 않고 공만 찼다. 저녁밥 먹으러 집에 가자고 하면 싫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울음을 터뜨려서 고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축구팀 코치가 자기 팀이 있는 학교로 유현이를 보내라고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그러지 못했다. 유현이는 자기가 이강인이 됐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이강인이 됐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어릴 적 꿈이 뭐였나 생각해 봤다. 초등학생 때 몇 년간 서예를 배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삼촌 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에 다녔고, 붓으로 글씨 쓰는 것에 깊이 빠져 있었다. 잘 쓴 종이는 잘 말려서 집으로 가져와 엄마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 나이에만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서른두 살 먹고 갑자기 축구 선수가 되겠다며 축구 학원에 가는 건 어려울 테니까. 유현이도 나도, 그때 끝까지 도전했더라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도 어느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특정한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을 담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특정 시기도 존재하는 것 같다. 이십 대에 어느 작사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각자 그 나이대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으니, 모든 나이대에 작품을 남겨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이십 대에 느낀 감정들은 그 시기에 써야 가장 강렬하고, 삼십 대, 사십 대를 지나면서 하는 이야기들은 그 나이에 써야만 잘 익은 열매가 나오게 된다고.
나의 이십 대를 되돌아보면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꽤 많았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이 되면 아르바이트에 가야 했다. 과제나 시험공부는 밤이나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에 했다.
나도 이십 대에만 할 수 있는, 정유철의 이십 대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내 이야기를 적을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다. 알바가 끝난 후에는 너무 피곤해서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몇 시간 동안 고기를 굽다가 왔는데, 피로와 고기 냄새에 찌든 채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곧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서 신문을 돌려야 하니 잠이나 자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에 맞는 글을 쓴다는 건 가장 진심을 쓴다는 의미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원고를 쓸 때 편집장님이 조언해 주셨던 게 있다. 좋은 작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읽어보면, 그것들은 꾸밈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철 씨는 나이가 어린 편이니 그에 맞는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으면 좋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제출했던 원고는 어른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글인 것 같다고 하셨다. 크게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모두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글을 써왔으니까.
쓰면 쓸수록 내 글 속에는 진심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 솔직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가 힘들다. 지어낸 말이나 감정에는 힘이 없다. 그럴싸한 조언 같은 걸 적기에는 내 노력이 아깝게 느껴진다. 겨우겨우 짬을 내서 쓰는 글인데, 남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싶진 않다. 마음속을 뒤져서 진솔한 속내를 긁어모은다. 그렇게 모은 것들을 정리해 보면 글이 나온다. 가장 솔직한 내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글을 고쳐 나간다.
옛날에 썼던 일기를 다시 꺼내 읽어보는 이유가 뭘까? 예전에 있었던 일이 자세히 기억이 안 나서 일까? 그런 경우는 드물 것 같다. 난 지금도 예전에 썼던 블로그를 한 번씩 들어가 보곤 하는데, 예전 내 글 속에는 당시의 내가 있다. 고등학생이던 유철이. 녀석의 글을 읽으면 함께 나란히 걷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작가가 될 먼 훗날을 기다리던 10대 시절의 내가 묻는다. ‘삼십 대가 되면 얼마큼 달라져 있을까?’ 정말 많이 변했다. 가족들도, 세상도, 나 자신도.
이십 대에 더 많은 글을 쓸 걸 후회하지만, 과거보다는 현재에 감사하는 것이 낫다. 삼십 대가 된 지금도 죽어라 바쁘게 지내지만, 바쁜 일과를 보내고 저녁에 글을 쓸 힘이 생겼다.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 글을 써 내려간다.
완성하지 못한 지난날의 작품을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는다. 묵묵히 키보드를 두들길 뿐,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