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잠 못 이루는

by 정유철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자주 서점에 갔다. 엄마는 항상 유명한 자기 계발서를 들고 나에게 오셨고,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으려면 빨리 다른 책을 골라야 했다. 처음에는 만화책을 선택했지만, 만화는 금방 읽어버려서 다음 권까지 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 이상 사지 않게 됐다. 책을 내키는 대로 다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좋아하게 된 후에는 서점을 혼자서도 종종 가게 됐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베스트셀러 소설 코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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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단편소설집을 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표지를 입은 내 장편소설을 자주 상상해 왔던 것 같다.

장편 소설을 쓰는 날이 언젠가는 오게 될까? 어떻게 텍스트로만 이렇게 길고도 긴 이야기의 여정을 완성할 수 있을지 동경하게 됐다. 단편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장편도 쓸 수 있게 되겠지 하고는, 단편은 장편으로 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생각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은 후로 바뀌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아내의 시각 장애인 친구인 ‘대성당’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인 아내의 친구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그와의 만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시각 장애인인 친구에게 대성당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펜을 잡고 대성당을 그리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대학생 때 과제를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처음 읽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늦은 밤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 이 짧은 이야기의 여운 때문에 그날밤은 거의 잠을 못 잤다.

주인공은 앞을 볼 수 없는 자가 느껴온 세상을 함께 느끼게 된다. 그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걸 보게 되는 것과도 같고, 볼 수 없는 자의 마음을 헤아려볼 기회를 얻게 된 것과도 같다.

나 또한 그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려보느라, 또 그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그날 밤을 새웠다.


직접 써보니 단편 소설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짧은 분량 안에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니, 매번 고민 방지턱에서 글이 덜컹거린다. 글을 쓸 때 덜어내는 작업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이 내용을 덜어내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를 적자니, 내가 너무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망설이게 된다.

완벽한 완급 조절의 절제선은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정해진 답은 없고 쓰면 쓸수록 더 잘하 수 있다지만, 당장 해답을 갈구하는 내 조급함은 자꾸 한숨만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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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잘 따르던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데, 제가 그쪽으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각자의 타고난 자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가 없으면 어떡하죠?

/그건 기도하면서 노력해 보면 알게 되겠지. 그리고 하나님한테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갈고닦지 않으면 쓸모없게 돼.


계속해서 갈고 닦는다는 말의 의미가 어릴 적 내 생각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나를 닦을 생각만 했다. 깨끗하게 닦아놓고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필력을 만들어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닦기 전에 갈아야 한다. 나를 갈아 넣어야 비로소 글이 나온다. 그 과정은 괴롭지만 즐겁고, 아프고 슬프지만 동시에 행복하다.


이제는 그 갈고닦는 과정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 언젠가는 모두를 잠 못 이루게 할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멋진 표지를 입은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안방 침대 맡이나 책상 위에 올려져 있기를 소망한다.

즐거운 이야기로 당신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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