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착에게

집착 때문에 오는 두려움

by 정유철

글을 쓰는 게 참 좋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은 가득 찰 만큼 기쁘다.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문득 두려움이 머릿속을 뒤덮기도 한다.


우연히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유명한 거장들도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스필버그 감독 같은 사람도 우리가 보기엔 영화의 신에 근접한 사람인데, 아침에 차에서 내리기 싫은 거죠. 엑스트라 500명이 대기하고 있는 촬영장으로 가면서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한 뒤 차에서 내려서 토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분인 신입감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오스카 외국어상까지 받고 산전수전 다 겼은 후에도 그런 중압감을 느끼신 거죠.

집착이 있는 거예요. 공포의 근원이 ‘집착’이다. 집착이 있기 때문에 공포가 생긴 거예요. 그게 해소되지 않을까 봐.


소설을 쓰다 보면 집착이 스노볼처럼 금방 거대해지곤 한다. 그럴 때면 현기증이 난다.

‘내가 상상한 건 이런 느낌이 아닌데.’

어디가 잘못된 걸까 고민하다 보면 모든 단어와 문장 배열이 일그러져 이상하게 보인다. 매일 쓰는 단어들인데도 낯설게 느껴져서, 내가 아는 뜻이 맞는지 일일이 검색해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지금은 못 쓰겠구나 깨닫고 노트북을 닫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지금 떠오른 감정과 느낌을 바로 글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이 순간이 지나가면 감정은 다른 모양으로 변해 이 장면을 쓸 수 없게 된다.

매번 떠오르는 감정이 다르기에 예민해진다. 그래서 카페에 가서 쓸 때는 항상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챙긴다. 카페 속 다른 변수들에게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봉준호 감독은 다른 거장들의 부담감과 집착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는 본인의 고백도 있다. 집착과 두려움이 있는 감독의 고백이 내 등을 다독여준다.

영화를 찍든, 글을 쓰든, 어떤 작업을 하든 두려움은 존재한다. 완벽한 글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짊어져야 한다.



내 글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내 동생이다. "칭찬만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줘"라며 몇 번이고 읽어보라고 동생을 들들 볶았다. 다른 사람에게 서툰 글로 보일까 노심초사하며 몇 번이고 퇴고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이 지옥의 굴레는 내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언젠가 유명한 이야기를 쓴 작가가 되면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왠지 알 것 같다.

매일 글을 쓰고, 글경력이 몇 년이 되더라도 이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글이 되기 위한 내 집착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다가, 예전 또 다른 인터뷰 내용도 보게 되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려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좋아했던 영화는 왜 좋아했는지, 내가 싫어했던 장면은 왜 싫었는지.

계속 듣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계속 보는 영화가 있잖아요.

그 이유를 스스로 파헤쳐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저절로 답이 나올 것 같아요.


명쾌한 답을 만난 것 같다.

완벽한 글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써온 소설들은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들을 닮았다. 이거 하나면 된다.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집착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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