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움: 매우 만족할 만한 데가 있다.
개는 뒤통수도 귀엽다.
말도 못 하게 귀엽다.
귀엽다 못해 웃기다.
상대가 귀여워 보이면 끝이라던데, 큰일이다.
귀여운데 웃기기까지 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랬는데.
이거 안 되겠네, 꼭 붙어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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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이랑 산책하러 나가면 내가 보는 건 맨 뒤통수뿐이다.
동그란 뒤통수가 걷다가 뛰다가 멈췄다가 아주 난리다.
말도 안 듣고 제 멋대로.
탁월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장착되어 있는 꼼의 귀는 듣고 싶은 말만 통과시킨다.
신통방통도 하지.
그래도 꼭 들어야 하는 말(기다려, 안 돼, 건너자)은 들어서 다행이지만
그 밖의 말(가자, 그만, 이쪽이야)은 전혀 듣지 않아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참을 인’자를 새긴다.
오늘만 해도 몸에 사리가 쌓이는 줄 알았다.
미세먼지가 며칠째 기승이라 산책을 제대로 못 한 한을 오늘 다 풀기로 혼자 다짐이라도 했는지
무아지경이다 못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꼼을 기다리면서 아, 이대로 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제껏 냄새 맡는 개를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쩌면 내가 그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발부터 시작해 점점 돌이 되어가는 몸을 느끼면서 내가 이대로 돌이 되면 꼼은 날 두고 알아서 집까지 잘 찾아가겠지 싶다가도 아 저 녀석 횡단보도 무서워하는데 큰일이네 하는 말도 안 되는 헛생각을 하고 있으면 꼼은 그래도 나를 돌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듯 돌이 되기 일보 직전인 나를 끌고 나선다.
그리고 다시 참을 인이 하나.. 두울.. 세에엣..
번쩍 안고서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간헐적으로 한 번씩 나를 올려다보는 꼼의 얼굴을 보고선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냄새 맡는 게 뭐라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 꼼이 참으로 어이없게 귀여워서.
그래, 돌이 되면 뭐 어때.
네가 하루에 한 번씩은 냄새 맡으러 와주겠지.
누군가 내게 개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말하지 않고 ‘코’라고 대답할 것이다.
적어도 꼼은 그렇다.
꼼의 산책은 ‘냄새 맡기’가 주목적이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냄새를 맡고 또 맡는다.
잠깐 쉴 때조차도 코는 쉬는 법이 없다.
산책하다 간식을 먹는 참맛을 알아버린 꼼은 걷다가 벤치만 나왔다 하면 잠깐 쉬었다 가자며 은근슬쩍 그쪽으로 유도하는데
그렇게 앉아 간식을 먹는 와중에도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냄새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콧구멍이 이리 씰룩 저리 씰룩 열심이다.
이 정도 끈기면 뭘 해도 했겠다 싶다.
꼼은 무언가 딱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만 하는 엄청난 집념과 ‘저 냄새를 맡아야지’ 생각하자마자 실행에 옮기는 엄청난 추진력을 겸비하고 있다.
내가 이걸 다 어떻게 알고 있느냐면 이제는 그냥 보인다.
꼼의 뒤통수만 봐도 그냥 다 알겠다.
여기서 문제는, 집념과 추진력이 만나면 슈퍼 킹왕짱 직진모드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슈퍼 킹왕짱 직진모드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예를 들어 지금 나무 1 냄새를 맡고 있는데 저쪽에 있는 나무 2가 꼼의 레이더망에 걸렸다고 해보자.
그럼 그사이에 놓인 것들 -대체로 사람들- 은 안중에도 없어서 모르는 사람의 다리 사이를 가로지를 판이라 나는 줄을 부여잡고 기다려무새가 된다.
꼼을 알만한 사람이라면 기함하고도 남을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올 땐 기겁을 하면서 이럴 땐 마치 적장의 기지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장군의 기세가 따로 없어
같은 개가 맞나, 어디서 개가 바뀐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니.
혼잡한 나무 2를 뒤로 하고 그나마 한적한 나무 3으로 건너뛸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 순간만큼은 꼼의 세상엔 자기 자신과 나무 2, 오직 둘뿐이다.
줄을 잡고 안 놔주는 나는 그들 사이를 방해하는 못된 마녀겠지.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잠시도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동동거리는 탓에 꼼이 돌이 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면 줄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을 살짝 푸는데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쓔웅-이라는 단어밖에는 안 떠오른다.
(꼼은 장군이 되다 못해 화살이 되었다. 이래서 쏜살이라고 하는구나, 또 배웠다.)
한참을 부둥켜안고서 어떤 못된 마녀에 의해 떨어져 있어야 했던 약 2분 간의 애달픔을 다 풀고 나면
꼼의 레이더망에 나무 3이 포착되고, 나는 다시 기다려무새가 되어…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순환은 꼼도 나도 지쳐 집에 돌아갈 때쯤에 끝이 난다.
오늘 맡은 냄새들이 만족스러웠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저 나무 54가 꼼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은 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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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도대체 뭔 냄새를 이토록 맡고 싶어 안달인가 궁금해 미치겠다.
개는 냄새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개의 세상은 좀 살만한지 알려줄 개 어디 없나?
그렇다고 개의 후각을 닮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개랑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나 좀 얻고 싶다.
저기요. 거기서는 무슨 냄새가 나나요?
…
…
개가 내 질문에 대답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개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바라야 하나.
뭐지. 나 왜 상처받을 것 같지?
그냥 궁금한 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꼼에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이것도 ‘코’와 관련된 이야기다.
(개에게 ‘후각’만큼 만족스러운 건 없을 테니 계속해 보겠다.)
내가 꼼의 ‘후각‘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자칭타칭 엄마바라기인 꼼이 정작 밖에 나가서는 엄마를 잘 찾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리고부터다.
아니 보통 개들은 냄새로 사람을 구분하는 거 아니었나?
근데 꼼은 엄마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꼼이 날 닮아 방향치에 길치인 것도 마음이 아픈데 길을 잃어도 태평인 나의 뻔뻔함까지 닮아서 골까지 욱신거린다.
어떻게 꼭 매번 항상 반대 방향을 고르는지.
근데 하필이면 이럴 때마다 슈퍼 킹왕짱 직진모드가 켜져서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과연 개가 맞나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꼼이 엄마를 찾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엄마가 꼼을 부르거나 내가 천고의 설득 끝에 방향을 틀어서 엄마가 눈에 보이는 곳까지 가거나.
이런 걸 보면 청각과 시각에 문제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후각.
이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 냄새를 너무 잘 맡아서 한꺼번에 많은 냄새가 코를 통과해 이를 구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2. 냄새를 잘 못 맡는다.
냄새를 잘 못 맡아서 다른 개들보다 냄새 맡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냄새를 맡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서 냄새를 맡는 데 시간을 더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냄새를 잘 못 맡는 거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집에 숨겨 놓은 군고구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꼼에
아니야, 얘는 개가 맞아 하다가도
길에서 파는 군고구마 냄새엔 별 반응을 안 하는 걸 보면 도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집에 있는 것(=다 내 것)과 집 밖에 있는 것(=내 것 아님)을 구분할 줄 아는 똑똑이여서 그런가.
밖에선 엄마를 잘 못 찾는 이유도 엄마가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못 찾는 거거나.
아잇 몰라. 누가 이것만 좀 몰래 알려줬으면 좋겠다.
귀여운 걸로 퉁치는 건 그만하고.
소파 밑으로 굴러간 간식은 찾아 먹으면서 카펫 위에 떨어진 간식은 못 찾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꼼의 정체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그때까지는 마냥 귀여워하련다.
뭐가 됐든 귀여운 건 마찬가지니까.
/
보통 나는 꼼이 잘 때 이 글을 써서 무척이나 꼼이 보고 싶은 상태다.
그리고 가끔은 꼼이 깨어있을 때도 꼼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그런 주책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
앞서 말했듯 산책길에 나서면 내가 보는 건 맨 뒤통수뿐이라서 산책하는 꼼의 정면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보고 싶다.
마주 오는 사람이 꼼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날엔 지금 대체 얼마나 귀엽길래 그러나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이로써 나는 꼼이 무슨 냄새를 그렇게 맡는 건가 한 번 궁금해 미치고
꼼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나 또 한 번 궁금해 미치는 [산책 중 미친 사람]이 되었다.
돌이 될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미친 사람이 될 걸 걱정해야 했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어쩔 땐 ‘내 개가 이렇게까지 귀엽다고?’할 만큼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내가 마음속으로나 할 법한 꼼에 대한 찬양을 입 밖으로 꺼내는 분을 만나는 날에는 마냥 감사하고 마냥 웃기다.
어쩜 이렇게 예쁘고 귀엽고 우아하고 멋지고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어머 발 좀 봐!
한바탕 칭찬 폭격이 휩쓸고 지나가면 한껏 의기양양해진 - 칭찬은 빠짐없이 다 알아듣는다- 꼼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씩 다시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꼼아, 어디 봐봐. 음 예쁘네.
꼼아, 다시 봐봐. 음 귀엽네.
칭찬받은 만큼 다시 칭찬해 주는 동안 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던 마이웨이 꼼은 어디로 가고
부르면 부르는 대로 나를 올려다보는, 자기가 귀엽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꼼이 와 있다.
꼼도 나도 매우 만족스러운 산책길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또 ‘꼼아, 봐봐’ 하게 꼼이 얼른 일어나면 좋겠다.
깨우러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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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개도 춤추게 한다.
덩실덩실 씰룩씰룩 엉덩이 재간부터가 다르다.
암만 생각해도 웃기는 녀석이다. 큰일이네, 큰일이야.
뒤통수까지만 귀여울 것이지.
왜 엉덩이도 귀엽고 그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